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하LeeHa Oct 24. 2019

여전히 청춘인 이유

아버지의 메모장을 보다가 새로운 시인 한 명을 알게 되었다. 사무엘 울만. 그가 78세에 쓴 <청춘>이라는 시도 처음 접했다. 아버지가 옮겨 적은 "청춘은 결코 인생의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일 뿐"이라는 구절 앞에 서성였다.  꼭 아버지가 중년의 나를 위해 준비해 놓은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야, 나이 쉰 즈음에는 사무엘 울만의 <청춘>을 읽어보렴.’

아버지가 남기고 간 메모가 나에게 그렇게 말을 거는 것만 같았다.


사무엘 울만의 시 <청춘>은 그가 78세에 쓴 시라고 한다. 78세 노인이 <청춘>을 이야기하다니 뜻밖이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78세의 그는 연령에 구애받지 않고 <청춘>을 노래했다. 마음의 상태가 청춘이라면 인생의 어느 시기든 다 청춘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의 시는 한참이 지나서야 유명해지는데 맥아더 장군 덕분이었다. 태평양 전쟁이 끝나 갈 즈음 종군기자였던 프레데릭 팔머가 총사령관으로 필리핀에 주둔하고 있던 맥아더 장군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맥아더 장군이 <청춘>이라는 시를 줄줄 외울 만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프레데릭 팔머는 그 모습에 감명을 받아서 기사로 소개하기에 이른다. 그 후 <청춘>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사랑받은 만큼 지대한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당시 이 시를 읽고 큰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한 명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조지 도슨으로 98세의 노인이었다. 가난한 흑인 가정에서 자라느라 학교를 다니지 못했고 그런 까닭에 글을 읽을 수조차 없었던 그는 간신히 얻은 일자리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불철주야 애썼다. 그는 일과 관련된 내용을 전부 암기해 버림으로써 자신이 문맹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감출 수 있었다.


줄곧 노동을 하며 살아온 조지 도슨은 <청춘> 시를 접한 98세의 나이에 처음으로 알파벳 26자를 배우기 위해 평생교육 과정에 참여했다. 그리고 101세가 되던 해에 자신의 책 <인생은 아름다워>를 출간했다고 한다.


조지 도슨과 비슷한 또 한 명의 멋진 청춘이 있는데 바로 <취미로 직업을 삼다>를 쓴 김욱 작가다. 그는 1930년 생으로 일제 강점기를 거쳐 6.25 사변을 겪고 고생 끝에 신문기자로 30년간 일을 했다. 퇴직 후 편하게 살 날 만을 기다리던 그는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전 재산을 하루아침에 날리게 되었다. 연로한 그가 돈 벌 수 있는 길은 어디에도 없어 보였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 암담한 순간에 모든 것을 포기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욱은 달랐다. 그는 언제나 청춘이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이것이냐, 저것이냐, 라는 선택의 갈림길이 왜 생기는 걸까. 왜 한 길로 가지 못하고 방황하게 되는 걸까. 그 일을 했다가는 먹고 살 길이 막막해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원치 않는 길을, 직업을, 생활을 선택한다. 일정 기간의 안정된 생활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먹고사는 문제만을 고민하는 존재였다면 이렇듯 방황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방황한다. 그 길은 분명 위험하다. 그런데 가고 싶다. 정말 가고 싶은 길이다. 그렇다면 가는 수밖에 없다.


김욱 <취미로 직업을 삼다> 중에서


당찬 청춘 김욱은 누가 일을 주지 않으면 자신이 만들어 내서라도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어릴 적부터 동전 몇 개라도 생기면 동대문 헌책방을 달려가던 소년이었던 까닭이다. 그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책 읽기에서 답을 찾았다. 작가 사후 70년이 지나면 저작권이 만료된다는 사실을 알고 그런 일본 원서만을 찾아서 번역을 하여 출판사에 출간 의사를 타진한다. 그렇게 스스로 일감을 구한 김욱은 무려 200권이 넘는 책을 번역한 전문 번역가가 되었다. 그가 번역한 책 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책 <약간의 거리를 둔다>도 있다. 그가 번역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니 그 책이 다시 한번 읽고 싶어졌다.


지금 나이가 많아서 무엇인가를 하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이렇게 물어봐야 한다. 78세에 <청춘> 시를 쓴 사무엘 울만을 들어 본 적 있나? 98세에 알파벳을 배우기 시작한 조지 도슨보다 늙었나? 85세 번역가 김욱의 이야기에 가슴이 두근거리지 않는가?


사무엘 울만은 <청춘>의 제일 마지막 문장에서 이렇게 말한다.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라고 말이다.

예순이 갓 넘어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는 그때도 청춘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내 마음속의 청춘이다. 그러니 청춘의 딸인 내가 어찌 늙음을 말할 수 있을까. 아버지를 닮은 내 청춘도 늘 푸르를 것이라 믿고 산다.



청춘 

- 사무엘 울만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세월은 피부의 주름을 늘리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진 못하지.

근심과 두려움, 자신감을 잃는 것이

우리 기백을 죽이고 마음을 시들게 하네.

그대가 젊어 있는 한

예순이건 열여섯이건 가슴속에는

경이로움을 향한 동경과 아이처럼 왕성한 탐구심과

인생에서 기쁨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


그대와 나의 가슴속에는 이심전심의 안테나가 있어

사람들과 신으로부터 아름다움과 희망,

기쁨,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언제까지나 청춘일 수 있네.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냉소의 눈[雪]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氷]에 갇힐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

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이전 13화 함부로 인연 맺지 마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