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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하LeeHa Nov 18. 2019

인생은 늘 지그재그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번갈아 오며 겸손을 가르친다


요즘 많은 분들이 에세이를 읽으시죠. 저도 꽤 여러 권의 에세이를 읽었습니다. 에세이는 전문적이고 심각한 내용을 파고들어 기억하면서 읽어야 하는 것이 아니에요.  남녀노소 누구라도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접근이 용이한 에세이가 좋은 에세이라고 하더군요. 


에세이에는 작가 특유의 색깔과 향기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작가의 사적인 이야기에 재미나게 끌려 들어갔다가 작은 감동이든 깨달음이든 얻고 나올 수 있다면 '괜찮은 에세이 한 권 읽었구나' 하는 느낌이 옵니다. 시간이 지나도 계속 떠오르는 내용이 있다면 '멋진 작품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고요. 


제게는 장영희 교수님의 에세이들이 그렇습니다. 쉬운 말로 쓰여 있으면서도 읽고 난 후의 잔잔한 울림이 지속되거든요. 게다가 삶을 바라보는 긍정적이며 따뜻한 시선은 감동을 주기에도 충분합니다. 


마음 시린 어느 날, 어느 누구도 믿지 못하겠고 어디로도 발걸음이 향하지 않는 날이라면 장영희 교수님의 에세이를 펼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어느 페이지를 펼치셔도 상관없고요. 한두 페이지 읽으시다가 덮어 놓으셔도 좋습니다. 에세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이 연결된 소설이 아니기 때문에요. 완독을 목표로 순서대로 읽으실 필요가 없으니까요. 


책을 탁 펼친 순간, 이런 페이지를 만나면 여러 가지 느낌이 들게 됩니다. <내가 살아보니까>예요. 





남과 비교하는 것은 내 인생을 잘게 조각내어 조금씩 도랑에 집어넣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시죠. 인생을 '나 자신'보다 오래, 현명하게 살아오신 분들의 촌철살인 같은 한마디가 우리의 자존감을 조금 높여주는 것 같지 않으신가요?


그 인생의 선배님께서 '살아보니까 남의 말만 믿고 주식이고 부동산 투자한 것은 다 망했지만, 누군가에게 전한 작은 선행은 늘 고마움으로 기억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높아진 자존감에서 끝나버리는 게 아니라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지혜를 들려주시며 끝맺음을 하시죠. 


제가 21층 계단 오르기를 60일 넘게 매일같이 할 때마다 떠오르는 에세이가 있는데요. 장영희 교수님의 <운명의 장난으로>입니다. 


교수님께서 유학시절 만났던 루시 할머니는 30년 넘게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세요. 젊은 시절 엘리베이터 속에 갇힌 공포로 인해서 그렇습니다. 연로하신 할머니가 계단을 오르내리며 외출했던 그 30년은 참 고역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루시 할머니가 말씀하십니다. 엘리베이터를 못 타는 그 '운명의 장난으로 인해'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고 그것이 바로 삶의 가장 큰 축복이었다고 말이죠. 


"그런데 영희. '운명의 장난'은 항상 양면적이야. 늘 지그재그로 가는 것 같아. 나쁜 쪽으로 간다 하면 금방 '아, 그것이 그렇게 나쁜 건 아니었군'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일이 생기거든." 


<그러나 내겐 당신이 있습니다> 중에서 



장영희 교수님께서 쓰신 에세이를 읽지 않았다면 제가 미국의 한 아파트에 사시던 루시 할머니 이야기를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할 만큼 고통스러운 폐쇄의 공포도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거고요. 불행이 늘 불행이 아니고 행운이 늘 행운이 아니라는 진리도 멀게만 느껴졌을 거예요


그런데 오랜 세월 살아오신 인생 선배님들이 말씀하시잖아요. 운명은 지그재그라고. 좋았다가 나빴다가 다시 좋았다가 나빠지는 게 인생이라고 말입니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 엘리베이터 걸 대신 남편' 아주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우리 손에 쥐여주시네요. 


그러니 지그재그 사이에서 너무 실망하지도 말고 너무 기뻐 교만에 빠지지도 않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면서 살아가는 것. 운명에 맞서기도 하지만 순응하면서도 살아가는 것. 이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날마다 21층 계단을 오르는 저는 간간이 루시 할머니를 떠올려요. '폐쇄공포를 피할 수는 있으셨겠지만 오르내리는 힘겨움은 감당하셔야 했겠구나.' 하고 말이죠. 인생, 항상 좋기만 할 수도 없지만  아프고 힘들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깨우치고 있어요.  


계단 오르며 몰아쉬고 내쉬는 거친 숨 속에 루시 할머니의 인생과 장영희 교수님의 인생을 같이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제 인생도 떠올려 봐요. 좋은 에세이는 제 안에 오래도록 남아 저를 토닥여 주며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킨다고 믿습니다. 


이러니 어떻게 에세이를 안 읽을 수 있겠어요?! 저는 앞으로도 에세이를 펼치며 저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으로 풍덩 들어가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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