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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의 육아 우울증

다시 걷는 육아의 길

by 연글연글




자기는 결혼 안 한다던 큰딸이
어느 날, 좋아하는 직장 선배가 생겼다고 인사를 시켰다.

그렇게 결혼을 한 딸은

자기는 아이는 안 낳을 거라더니
17개월 후에 똑 닮은 복사판이 태어났다.

​산후 조리원에서 바로 우리 집으로 와
지금까지 우리는 '그 지독한 사랑'을 하는 중이다.

​아기들을 좋아하고
내 자식도 둘이나 키웠는데
내 손녀 돌보는 것쯤은 '누워서 떡 먹기' 겠지 했다.

더군다나 아기 좋아하는 작은 딸도 함께 있으니
신이 날 정도였다.


그렇게 설 익은 판단으로 우리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나보다 잘난 내 딸의 앞길을 열어주려고,

딸의 버거움을 내게로 덜어왔다.

​역시나 아기는 '환희' 그 자체였다.

몰랑몰랑한 볼 모찌도,
트림할 때 새어 나오는 콤콤한 우유 냄새도,
손가락 사이사이의 쉰 옥수수 냄새까지도.

꼬물락 거리는 생명체에 모두 모여들어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고 또 보고 들여다보며 빠져들었다.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의 빈틈없는

트라이 앵글 케어를 받으며
우리의 사랑은 깊어만 갔다.

​하지만 사랑은 사랑이고,
기쁨은 기쁨일 뿐,


"에엥"에 늘 대기해야 하고
낮잠조차도 안고 있어야 하며
새벽 6시면 깨어나는 손녀의 24시간은
서서히 나와 작은딸을 흐느적거리게 했다.

​그나마 작은 딸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은
퇴근 후의 할아버지가 도와줬으나
세심함이 필요한 신생아 육아에
목욕 도우미로도 익숙지 않은 할아버지와는 툭탁거리기가 일쑤였다.

​주말에만 오는 큰딸과 사위가
일요일이 되어 다시 돌아가는 뒤통수가
몹시도 부러운 지경에 이르렀을 즈음,

나의 든든한 육아 동반자 작은딸마저
멀리 공부하러 떠나게 되었다.

​울 애기는,

엄마보다 붙어 지낸 시간이 길고
자기를 늘 챙겨주던 이모가 떠난 날부터
밤마다 잠들기 전까지

"이모!!! 이모!!!" 목놓아 불러댔다.

"이모 없어. 이모 호주 갔잖아" 울먹이는 내 대답에

두 돌 지난 꼬맹이는
"이모 오라고 해! 이모 오라고 해~~~ 잉잉"

​몇 날 며칠을 밤마다 둘이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그렇게 작은 딸의 빈자리는
나에게도, 손녀에게도 커다란 구멍이 되었다.

​2인 1조의 육아동지를 잃고 찌들어가는 나를 보고는,
큰딸이 자기 동네로의 이사를 권했다.

​그렇게 우리는 남편의 정년을 몇 달 남겨두고
서울을 떠나 큰 딸네 옆으로 이사를 했다.


​가까이 왔으니 밤새 잠이라도 편히 자라며
퇴근 후에는 아기를 데려갔다.


아침에 와서 엄마 아빠 퇴근 때까지
종일토록 놀기만 하는 에너자이저랑 나는
새로운 환경에서도 계속 붙어 지냈다.

​그리고 몇 달 뒤,
30년간 성실히 직장생활을 해온 남편이
정년을 맞았다.


​긴 시간 수고한 남편은
쉬면서 지내는 편안한 은퇴의 삶을 꿈꾸었다.

​그러나 낮에도 하부지랑 함께 있게 된 손녀는,
병 가장자리에 남아있는 잼을 긁어먹는 알뜰 주걱처럼
알뜰하게 하부지를 이용해서 놀았다.

​그림 그리기, 숨바꼭질, 보물찾기, 스케치북 위에 올라 스키라며 끌게 하기, 종이컵을 높이 쌓게 하고는 한 방에 쓸어버리기 등
무한반복 놀이가 시작되면
하부지는 거의 울상이 되어갔다.

​하지만 성실함이 장착된 하부지는
"하부지! 이거 해줘."
"하부지! 이리 와봐" 외쳐대는 손녀의 부름에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둘도 없는 놀이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한 달이 되어갈 무렵
남편은 그만 '육아 우울증'에 걸려버렸다.

​은퇴하면 시간도 여유 있어
자유롭게 바람도 쐬며 이곳저곳으로 날아다닐 줄 알았는데,
아직 유치원에 다니지 않는 손녀의 육아로
하루 종일 메어있다 보니 적잖이 힘이 들었나 보다.

​"내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는 게 맞는 건가"
세상 우울한 표정으로 묻기에,

​나 역시 하루하루가 만만치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할아버지보다는 한 수 위 아니겠나!

​등을 토닥이며
" 하부지 많이 힘들지. 힘내!

주말에 쿠*쿠* 가자~" 며 남편이 좋아하는 뷔페로 달래주었다.

​다시 한 주가 시작되고
다시 우리는 힘을 내보며,
누구보다 '불금'을 기다리는

할미와 하부지로 한 주를 지켜냈다.


그렇게 또 한 주... 또 한 주...


손녀가 유치원에 입학하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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