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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신형

겁보 할머니의 죄목은 주름

by 연글연글




나는 우주 최강 겁보다.

내 살 아픈 게 제일 무섭고
고소 공포증, 동물 공포증, 물 공포증, 유리 공포증 등등과 낯선 환경 두려움, 새로운 길 두려움 등등과 싸워가며 지내고 있다.


그렇게 무서운 게 많으니 남보다 할 수 있는 게 상대적으로 적다.

​놀이공원에서 탈 수 있는 놀이 기구가 몇 안 되고 반려견, 반려묘는 꿈도 못 꾼다.

처음 가본 괌에서는 남편이 튜브를 못 빌리게 해서 바다에는 들어가지도 않았다.

길눈도 어두우니 당연히 장롱 면허에 집 밖에 모르는 집순이다.

​그런 겁보 할머니가 손녀를 돌보러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왔더니, 친구들 만나기가 참 어렵다.


일 년에 한두 번, 서울 사는 친구들이 나를 만나러 와주는 게 유일한 수다 타임이다.


친구들은 내게 '활명수' 같은 존재다.

내 답답함을 시원하게 풀어주고, 웃음도 주며, 따끔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빠꼼히 내 얼굴을 들여다보던 한 친구가 말했다.


"그 사이 주름이 많이 생겼네! 보톡스 좀 맞아.

우린 다 관리하고 있어."


청소는 열심히 해도 외모 관리에 게으른 나는 팩조차 귀찮아하고,

타고난 피부 조직이 얇아 잔주름과 잡티는 말할 것도 없다.

(무서워서 점도 못 뺐다)


그러니 부지런한 그들과는

피부 광채부터 다르긴 하겠지.


갑작스러운 ‘보톡스’ 등장에 당황한 나는


"팔뚝에 맞는 주사도 무서운데, 얼굴에 주삿바늘을? 내가 어떻게 해!

얼굴에 주름 있는 게 죄야? 자연스럽게 살아야지"


대꾸하며

'아직은 봐줄 만하다'는 위로를 은근히 기대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요즘엔 얼굴에 주름 있으면 죄야. 호호호"

​요즘은 겁쟁이도

죄인 취급받는 세상이구나.


주름이 죄라면...

나, 종신형이다!

뭐, 그래도 내 웃음엔 가석방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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