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라는 이름의 책임에 대하여
그 사람을 위해 내 시간을 기꺼이 쓰고픈 마음
사랑이라는 건, 너무나 추상적인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연인, 가족, 친구 간의 그 감정마저도 사랑이라 믿는다.
그러니까, 사랑이란 감정의 본질은 같되, 그 강도와 방향, 깊이의 차이에 따라 가족, 친구, 연인 등으로 형태를 달리할 뿐.
사랑은,
결국 “그 사람을 위해 내 시간을 기꺼이 쓰고픈 마음”이다.
다만, 어떤 사랑은 그 마음을 오래 지켜보는 방식으로, 어떤 사랑은 더 가까이서 함께 호흡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누군가는 말한다,
사랑의 정도를 나누는 기준은 사실 나의 욕망과 경계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연인 간의 사랑에는 독점이나 친밀함을 더 강하게 바라는 감정이 들어있고, 친구 간의 사랑은 자율성과 신뢰가 더 우선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사랑이라는 감정은 같지만, 그 사랑에 기대하는 “결”이 다르다고 할 수 있지 않는가?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결국 그것을 “좋아함”에 그치는 거라고 믿는다. 상대방을 독점하고픈 마음, 통제하고 픈 마음, 이런 건 사랑이라는 감정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좋아함이 사랑으로 발전할 순 있지만.
그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사랑인 거지, 그건 사랑이라기보단, 좋아함이 지나친 감정일 수도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연인 간의 사랑이 독특한 것이다. 좋아함과 사랑 사이의 간극이 모호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대방을 온전히 놓아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상대가 나를 위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게 되는 관계라면 그건 정리해야 할 관계, 감정이 맞다. 그 사람은 날 사랑하지 않을 테니까.
사랑하지 않은 사람을 내 감정 내 욕심에 곁에 붙잡아 두는 것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내 감정에게도, 그 사람에게도 옳지 못한 행위니까.
그런 의미에서, 불륜은 정말 사랑일까
이건 단순히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이미 관계가 있는 사람인데도 다른 사람을 향해 “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해요”라고 말했다고 가정한다면, 그 감정은 정말 ‘사랑’일까?
아니, 욕망이다. 그저 욕망, 회피, 도피 일 뿐이다. 그 사람의 끝자락이라도 갖고픈 마음,
그 자체가 얼마나 애절하고 이기적인 동시에, 간절하고 절망적인 감정일까?
그 사람의 삶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 내 감정을 조용히 삼키는 것 이 사실은 더 깊은 사랑일 것이다.
설사 상대가 날 사랑한다 하더라도 끝까지 거절하는 것이 그 사람을 더 깊이 사랑하는 것이다.
결국 불륜 속의 사랑은, 상대를 향한 감정보다, 내가 사랑하고 싶었던 마음에 취한 것이다.
“금지된 사랑에 빠진 나”에 도취된 감정이다.
그럼에도 그 사실을 자기 자신도 모르게 진짜 사랑이라 믿고 착각하는 이유는, 그 감정이 그 자체로 강렬하고 진짜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거다.
사랑은,
상대의 손을 잡고 함께 갈 수도, 때로는 손을 놓아주는 용기도 있어야 하는 복잡한 감정이다.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이라면 상대의 손을 잡고 함께 가는 것이 맞지만, 그 손을 붙잡음으로써 상대방에게 해가 간다면 손을 놓는 것이 사랑이겠지.
사랑은 감정이지만, 결국 동시에 행동의 선택이자 책임이다.
그 사람을 책임져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 그것이 사랑인 것이다.
사랑이 더 이상 감정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책임’으로 바뀌는 순간을 느껴본 적 있는가?
모든 청춘들이 한 번쯤 그런 감정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모든 청춘이 한 번쯤은 아픈 사랑을 겪는다.
너무 어리지도, 어른도 아닌 그 애매한 청춘들이 늘 사랑 때문에 아파한다.
나쁜 사람을 사랑해서 힘들어해 보고, 상황이 좋지 않아 서로의 손을 놓기도 하고, 그 모든 감정이 사랑이라고 믿는다.
청춘의 한 가운데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도 그건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