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봄을 살아내는 중입니다.
아직 닿지 못한 계절을 기다리는 밤은,
지나치게 고요하여,
나조차 내 마음속 무엇이 깃들어 있는지조차 헤아릴 수 없게 만든다.
내가 기다리는 그 '아직 닿지 못한 계절'은 어쩌면 많은 이들이 꿈꾸는 찬란한 여름이나 봄일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오히려 땅이 무르익고, 단단해져 모든 생명이 결실을 맺는 숙성의 계절, 가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 계절을 버티고 자라나기 위한 오늘날을 살아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20대는 찬란히 빛나고 있을지 모르나,
사실상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첫 발걸음을 내딛는 어설픈 봄의 시절이라 여기니까.
청춘이라 불리는 이 시절은,
아마도 우리는 알지 못할 것이다.
지금 이 찰나가 얼마나 눈부신지를.
봄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자연스레 다가오는 이 계절이 정말로 찬란한 것인지,
그 속에 깃든 꽃들과 햇살들이 자신이 빛나는지도 모른 채 피어나듯이.
그 속에 머무는 나는,
지금 이 순간을 버겁게 견디고 있다.
그리 생각하고, 그렇게 느낀다.
하지만 가을이 온 그날.
나는 알게 될 것이다.
그 시절의 내가 찬란히 빛났더라고, 우리는 그렇게 찬란하게 눈부셨더라고.
그때가 바로, 나의 가을이 아니겠는가?
가을이 아름답지 않다고,
늘 질문한다, 나는 왜 이 길을 가고 싶어 하고, 놓을 수 없는 걸까,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끝까지 살아내고 싶은 걸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놓지 못하는 이유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이것을 행했을 때 행복할 것 같으니까. 나의 평온한 미래가, 그 길을 행했을 때 이뤄질 것 같으니까.
무너지고 싶었던 순간에도, 걷는 것을 그만두고 싶은 순간에도,
우리는, 나는 늘 생각할 것이다. 나는 내 사연을 만들어 가고 있는 거라고.
100 명의 사람이 있다면, 다 각자 100 개의 기구한 사연이 있기 마련이니까.
나는 그 사연을, 내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대로 포기한다면, 내 이야기는 끝맺음을 맞지 못할 테니까.
그렇게 나는, 어떤 이야기로 남고 싶은 걸까?
누군가 나중에 나를 떠올릴 때 또는 너 스스로 오래된 일기를 들춰볼 때
“나는 이런 사람이었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사실 난 타인에게 강렬히 기억되고 싶진 않지만,
하지만, 스스로 혼자 나 자신을 정의 내린다면,
잔잔한 불꽃으로 오래도록 타오른 사람으로 남고 싶다.
조용히, 그러나 꿋꿋이 삶을 품고 살아낸 사람으로.
담백하게 삶을 살아내고 싶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나의 현재는 봄을 살아내는 중이라고 생각한다
— 이 글은 내가 지금 이 순간 느끼고 있는 감정의 조각들을 담아두고 싶어 써 내려간 기록입니다. 언젠가 이 감정이 멀어졌을 때, 내가 어떻게 버텼는지를 기억하고 싶어서. 그리고, 혹시 같은 계절을 건너고 있는 누군가에게 닿는다면 더없이 고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