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만 특별해야 할 것 같을까?
왜 나만 특별해야 할 것 같을까?
요즘, 우리는 모두가 특별해야 한다는 말에 조금씩 지쳐가는 것 같다.
남들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이 시대에, 내게도 ‘특별함’이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사춘기 시절, ‘특별함’을 넘어선 특이함에 강박을 가지고 있던 내 철없던 어린 시절.
밤마다 이불속에서, 남들과는 달라야 한다는 이름 모를 불안을 끌어안고 잠들곤 했다.
이미 그 시절부터 유행하던 SNS는 남들과 다른 나를 뽐내는 사람들로 즐비했으니까.
나의 어린 시절은 책상 한편에 시 한 편을 꾹꾹 눌러쓰고는 혼자 감탄하곤 했다. 아무도 읽어주진 않았지만, 분명히 누군가 알아봐 줄 거라고 믿으며.
내 어린 시절은 늘 그런 기억들 뿐이다. 그게 내 어린 시절이다.
그러니까, 어릴 적의 나는,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것이 곧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이유라고 믿었다.
내가 이곳에 살아있음을 타인의 인정을 통해 느끼고 싶었다.
공부를 잘하는 동생에게 쏠린 부모님의 기대 속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애써 빛나보려 했던 어린 마음은 그저 ‘이해받고 싶다.’는 말 한마디로 정리된다.
그렇게 성장한 나는 그때의 기억이 몸에 배였는지, 주변인들에게 조용하지만 독특한 사람이라고 인정받았다. 지금은 별 감흥이 없지만 그때의 나는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조차 구분하지 못한 채, 그저 인정받고 싶어 안달이 나 있었던 것 같다.
그때의 나는 내가 특별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었지만,
지금 와 돌이켜보면, 그건 아마, ‘인정’보다는 ‘이해’ 받고 싶었던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냥, 그저, 이해받고 싶고, 주목받고 싶은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의 나는 인정이 곧 존재의 이유는 아니라는 걸 천천히 배워가고 있다.
나는 여전히 내가 존재만으로도 괜찮은 사람인지 확신하지 못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할 때, 내가 진심을 다해 누군가와 연결될 때, 그 순간만큼은 내 존재가 조금은 분명해지는 것 같다. 해내지 않아도, 이룬 게 없어도, 그저 존재만으로 충분하다고 느낀 적은 아직은 없는 것 같지만, 그건 앞으로 조금 더 찾아봐야겠지.
그렇기에 “쓸모"라는 말은, 지금 나에게, 그다지 큰 의미로 다가오진 않는다.
더욱 이 과연 ‘특별함’이 존재하긴 하는 걸까 하는 의문도 든다.
내게는 평범한 일상과도 같은 일들이, 누군가에겐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하니까.
더군다나, 쓸모없는 인간은 없다 믿는다. 아직 못 찾았을 뿐. 예전엔 타인의 기준에 나를 맞췄다면, 지금은 내가 꿈에 그리는 이상형을 따라가고 있다.
미래의 내가 이랬으면 좋겠다. 하는 부분을 조금이라도 따라가고자 노력하고 있다.
존재만으로 충분한 순간이 사실 있었을 수도 있지만, 내가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조금 더 나에 대해 깊이 알아갈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할 것이다. 그걸 인지할 때까지.
누군가는 내게 말한다,
“너의 특별한 점이 너무 아깝다.”
또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라.”라고.
난 특별한 사람인 것 같다.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한두 명이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니까.
내가 나를 평범하다고 생각할지라도, 누군가의 시선 속에 나는 늘 ‘다른 사람’으로 비치곤 한다.
과연 그게 좋은 부분인지, 아닌지는 각자의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사실, 특별함이라는 게 누구나 하나쯤 갖고 있다고 믿는다.
다만 그것이 타인의 시선에 닿아야만 특별해지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어쩌면 언제라도 발견되길 기다리는 씨앗 같은 것 아닐까?
특별함은 어쩌면, 모두가 지나치는 풀숲에 피어난 조그만 민들레일지도 모른다. 누구도 눈길 주지 않지만, 햇빛 아래에선 누구보다 밝다.
특별함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인지하지 못할 뿐이라고 믿는다.
그 특별함을 내가 끝까지 놓지 않는 이상, 사라질 수는 없다고 믿는다.
내 특별함은 타인의 말 끝에서 발견되고, 타인의 시선에 따라 그 사람의 말끝에서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사람마다 가진 기준이 다 다르니, 그에 맞게 나를 바라보는 시각도 다 달라질 테니까. 하지만 결국 그 시선을 어떻게 다르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결국 의미가 달라진다.
그러니까, 그 의미를 다시 새기는 주체는 결국 ‘나’다.
내가 그 특별함으로 무언가를 이루지 못했다면,
그건 특별함이 아닌 특이함으로 비칠 수 있다.
특이한 것과 특별한 것은 한 끗 차이라고 생각한다.
특별함과 특이함은 종이 한 장 차이다. 그 종이를 넘기느냐, 찢어버리느냐는 결국 내가 결정하는 문제다.
아마 특별함은, 그 누구도 발견하지 않아도 묵묵히 피어나는 들꽃 같은 걸지도 모른다.
이름 없는 향기조차 누군가에겐 오래도록 기억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