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심은 날.

익숙해지기엔 여전히 먼, 그 첫걸음.

by 안지연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던 날, 올해도 어김없이 모내기로 한 해의 시작을 알렸다.


작년보단 조금 늦었나 싶은 시작이지만, 늦은 나락을 심는 다른 이들에 비해서 이른 편이었다.

그럼에도 이미 예쁘게 벼가 자리 잡은 논을 지나칠 때면, 어딘가 마음이 조급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바람은 분명 선선했는데, 햇살은 무심히도 뜨거웠다.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옷은 금세 흙투성이가 됐다.

나는 트럭에 실은 모판을 이앙기로 옮기는 작업을 도았기에, 조금만 움직여도 온몸이 금세 더러워지기 충분했다.


아버지와 같이 짓는 농사이기에 남들보다 덜 어렵고, 힘들 수는 있었지만, 익숙지 않은 나에겐 여전히 버거운 일이었다.






모판은, 직사각형의 판 위에 모를 기른 것이다. 그게 모판이다.

그 모판을 이앙기에 올리면, 기계가 논에 모를 심는다. 나는 그 모판을 옮기는 일을 맡았다.


모판은 생각보다 무겁다.

근육을 많이 써야 하는 작업이다.

그렇기에 쓰지 않던 근육들이 여기저기에서 삐걱댔다.

모를 직접 손에 쥐는 것도 아니고, 생명의 신비 같은 감정은 사치였다.


그래도 처음보단 익숙해졌다고 생각한다

처음 트럭 운전대를 잡았을 땐 긴장으로 몸이 굳어져 버벅거렸는데,

한 번 해봤다고 이번엔 덜 무서웠던 것 같다.

조금은 시골살이에 가까워졌다는 뜻일까?


그래도 어른들의 속도를 따라가는 건 여전히 어렵다.

그들은 리듬이 있고 나는 아직 박자를 찾는 중이다.

나는 아직 초짜니까.


그렇게 모판을 옮기고, 벼를 심고, 흙을 밟고 나면 밤이 되어서야 하루가 내려앉았다.


모내기라는 행위는, 내게 한 해의 시작 같은 것이다.

사실 이미 한 해 농사를 시작한 지는 좀 됐다.

비닐멀칭도 했고, 밭일도 시작했지만,

벼를 심는 이 시점이 되어서야 ‘진짜 농사’가 시작된 느낌.


원래 이맘때가 농업인들에게 제일 바쁜 시기다.

하루하루가 촘촘히 채워지고, 마음도 조급해지는 시기.

하지만 이 시기만 잘 넘기면 그다음부터는 하늘의 뜻을 믿는 수밖에 없는 시기.


그래서일까,

이맘때는 의미 없는 기도를 자주 하게 된다.

“잘 자랐으면 좋겠다.”

“제발 올해는..”


그렇게 하루를 마치고 나면,

생각보다 몸은 더 힘든데 마음은 더없이 가볍다.

온몸이 녹초가 되긴 했지만, 그만큼 마음은 더 편안하다.

예민했던 감정도, 불쾌했던 감정도, 흙 속에 모두 파묻어버리고 온 것 같다


논물에 비친 하늘이 참 예쁘다.

파란 구름이 물 위에서 떠다녔다.


마치, 벼 대신 하늘을 심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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