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앉아 있었을 뿐인데, 마을의 20대 청년 이장이 되었다.
이장이 된 건, ‘내’가 뽑힌 게 아니었다.
아버지 대신 마을 회의에 잠깐 참석했을 뿐인데, 그렇게 이장이 되었다.
전 이장님은 9년째 이장을 맡아오신 분이었다.
마을 규정상 임기는 3년이고, 세 번까지만 연임할 수 있는데, 그 해가 딱 마지막 해였다. 그런데, ‘이장 후보가 없을 경우 1년 더 연임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고, 전 이장님은 그걸 염두에 두신 듯했다.
“이 마을에 이장을 맡을 젊은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말도 함께, 한 번 더 이장을 하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하셨다.
그 말을 들은 마을 어르신 중 한 분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왜 없어. 눈앞에 있잖아.”
그렇게, 나는 갑자기 이장이 되었다.
별생각 없이 “어… 시켜주시면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했던 게 시작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을 어른들은 나를 뽑은 게 아니라, 아버지를 보고 나를 뽑아주셨을 것이다. 아버지가 마을 분들과 잘 지내보려 애쓰셨고, 실제로 많은 일을 도우셨다. 그래서 나를 세워두더라도, 아버지가 마을 일을 함께 도와줄 거라 생각하셨을 거다.
나는, 그런 믿음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름이 올라간 사람이었을 뿐이다.
나도 처음엔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장이라는 게 결국 면사무소에서 온 복지사업 안내를 전달하고, 마을 불편사항을 접수해서 전화하는 일 정도라고 들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이장이 되고 나니, 좀 얼떨떨했다.
우리 마을 이장은 원래 큰일을 하던 자리는 아니었고, 오히려 그게 마을 분들 불만이 쌓이는 원인이기도 했다.
나는 그 덕에 부담은 덜해서 다행이라 여겼지만, 정작 주변에서는 “와, 대단하다”, “젊은 사람이 이장을 하다니.” 라며 생각보다 과한 반응을 보였다.
나는 그게 오히려 부담스럽고 당황스러웠다.
이장 일이 시작되자, 귀찮은 일들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자잘한 행정 일부터 사람들 사이의 조율까지.
‘봉사’라는 단어는 분명 좋은 단어인데, 막상 해보면 그 안에 감정노동이 참 많다.
나는 이제 막 대학교를 졸업한, 겨우 24살짜리 청년인데.
실제로 마을 분들끼리 의견충돌이 생겨 나한테 정리해 달라고 하기도 하셨다. 그러니까, 그 어르신은 본인의 감정이 불편하니 대신 말 좀 해달라는 식의 요청을 하셨다.
그런 부탁은 내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른이라면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고, 결국 도와드릴 수 없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엔 그런 말도 들었다.
“이장하는 거 말고는 하는 게 없잖아.” , “도와주는 거 개의치 말아, 사실 너, 무능하잖아?”
그 말을 한 분은 나를 도와주시며 하신 말씀이었다.
실제로 10만 원가량의 도움도 받았기에, 뭐라 따지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그날 이후 그 말이 자꾸 생각났다. 겨우 10만 원, 내가 내도 되는 작은 돈이었고, 그렇게 부담되는 돈도 아니었다.
나는 왜 그냥 웃으며 넘겨버렸을까, 내가 청한 도움도 아니었는데.
사실, 그 이유도 알고 있다.
그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니까.
아직 내가 이룬 게 없는 것도 맞고, 어쩌면 그냥 이장이라는 역할 뒤에 숨어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날 마을 회의에서 내 이름이 나왔을 때,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열심히 하겠다”라고 말한 내가 있었다. 왜 그런 말을 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 순간에는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 말 한마디가 내 안에 책임이라는 무언가를 만들었고, 그 책임이 지금의 나를 조금씩 바꾸고 있는 중이다.
지금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는 ‘이장’이라서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청년이장’이라서 의미가 생기는 것 같다. 시골에서 이장은 늘 어르신들의 몫이었고, 시골에 젊은 애들도 없을뿐더러, 있다 하더라도 마을을 위해 나서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
그래서 내가 이장을 맡았다는 사실보다, 젊은 나이에 이장이 있다는 것 자체가 상징처럼 여겨지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상징성 때문인지, 사람들은 여전히 ‘젊은 이장’을 낯설어하고 신기해했다.
말로는 “이젠 아버지 손에서 벗어나야지”라고 웃으시지만, 막상 일은 아버지를 통해 부탁하신다. 나한테 맡긴다고 하면서도, 진짜로 믿지는 않으신다.
일은 내가 하지만, 책임감은 아버지에게 기대는 구조,
사실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나는 아직 시골을 다 아는 것이 아니었고, 마을살이의 예법과 뉘앙스 같은 건 여전히 배워가는 중이다.
그래서 그런 상황들이 억울하기보다는, 그저 씁쓸하고, 나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무력감을 느낄 뿐이다.
그 와중에 하나, 확실하게 배운 게 있다면,’
젊은 이장’은, 일을 잘해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젊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언가 조금은 달라질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가능성 속에서
‘말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나는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을 더 잘 사람이다. “힘드셨겠어요”라는 말을 할 줄은 안다. 조용하고 어색하지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
돕는 걸 부담스러워하면서도, 외면은 잘 못한다.
눈앞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피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가끔은 “차라리 안 보이면 편할 텐데”란 생각도 든다.
어르신들 대부분은 말을 잘하는 사람보다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을 더 필요로 하신다.
그런데도 정작 도움은 나에게 직접 청하지 않으신다. 신뢰가 부족해서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기에 몸은 편한데, 마음은 껄끄럽다.
나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말투로 어색하게 대답하고, 어른들 말에 어설프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지만,
그게 때로는 위로가 된다는 걸 안다.
작지만, 그걸 알아차리는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요즘 많이 느낀다.
이 일은 관계를 맺는 일이면서도,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말하는 일이고, 거절할 줄 아는 일, 그리고 조리 있게 설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나는 그게 어렵다.
내 주장을 말하는 것도, 거절하는 것도 어렵다.
화를 억누르다 터질 때에야 가까스로 말이 나온다.
그나마 이성적으로 말하는 편이라 아무도 반박하지 않지만,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어조는 아직 아니다.
이장이니까.
그리고, 내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
누군가에겐 의미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