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이 방송도 할 줄 모르는 것 같아.

고장 난 건 방송기기가 아니라 신뢰였다.

by 안지연


이장이 방송도 할 줄 모르는 거 같아요.


_이장이 된 후 당황스러웠던 날.


“이장님, 방송기기가 망가졌다는 민원이 들어와서요. 곧 군에서 연락이 갈 거예요”


면사무소에서 걸려온 당황스러운 전화 한 통.

갑작스럽고, 도저히 내 머리로는 이해가 가질 않는 말이었다.


분명, 마을 방송 장비가 말썽을 부린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한 달 전 이야기였고, 말썽을 해결하고 서비스 센터에 연락해 전화번호 등록까지 마친 상태였고,

지금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왜, 갑자기?


일단 “알았다”라고 말을 한 후 전화를 끊었다.

머릿속엔 계속 물음표만 맴돌았다.


—? 이게 진짜 맞는 일인가?

마을 방송기기는 이장만 사용할 수 있는데,

어떻게 누군가 고장을 확인하고 민원을 넣을 수 있었을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혹시, 방송 기계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했는데요… 혹시, 어느 분이 민원을 넣으신 지 알 수 있을까요?”


돌아온 답변은 더 당황스러웠다.


“어떤 분인지는 잘 모르겠고, 마을 분이라고 들었어요. 키는 좀 작고…”


누군지도 알 수 없는 민원을 어떠한 설명 하나 없이, 확인 전화 한 통 없이 그대로 군청으로 접수되었다는 사실이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그래도, 다음부터는 제게 먼저 말씀해 주세요—라고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이 일을 알게 된 아버지께서, 단단히 화가 나셨다.


화가 나신 이유는

그 담당 공무원의 한 마디 때문이었다.


내게 누군지는 잘 모르겠다고 설명하면서 하시던 말씀이,

“이장이 방송도 할 줄 모르는 것 같다면서…”


그 말에 나는,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지금껏 방송도 잘해왔는데,

속된 말로 나를 ‘맥이려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분노했다.


서비스 신청을 넣기 전, 확인 전화 한 통이면 됐을 일이다.

그 한 번의 절차 없이, 그저 ‘젊은 이장은 모를 것’이라는 판단 하나로 일이 흘러가버렸다는 사실이 내 기분을 시궁창에 처박았다.


아버지께서는 면사무소에 전화를 거셨고, 화를 내기보다는 조용히, 논리적으로 따지셨다.

감사한 일이지만, 속은 복잡했다. 그렇게 나서실수록 오히려 내 존재는 더 작아지는 것 같았다.


역시,

아버지가 나서야 한다는 시선을 굳히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쉽게 무시당하고,

감정 조절을 하며 민원에 대해 조용히 따졌던 것도,

아버지가 나서 주시는 순간, 내가 쌓아 올린 것들이 진창에 처박히는 기분이 들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나는 나 대로 정리 되었는데, 이버지는 그 상황을 놓지 않았다.

네가 그렇게 한 번 두 번 넘어가면 더 무시할 거라며 말이다.

나는 그게 이해가 되면서도, 동시에 “그만해요.”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자꾸 고개를 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작은 일은 굳이 아버지께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내가 정리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정리하고, 보고도, 결과도, 그저 조용히 처리할 수 있으면 내가 스스로 처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여전히 서툴다.

이 선택이 늘 옳은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사회에 나왔다는 건, 그만큼은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배우는 중이다.


그날 이후, 나는 알게 되었다.

책임이라는 건, 내 이름 앞에 붙은 작은 호칭 하나에도,

그 사소한 판단 하나에도 따라붙는 것이라는 걸.


지금까지는 책임 없는 삶에 익숙했지만, 이제는 사소한 선택 하나에도 책임이 따른다는 걸,

조금이나마 몸으로 알게 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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