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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Aug 16. 2022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 잘 먹는 건 아니니까

진솔하게 담아낸 나의 이야기

 몇 없는 잘하는 것 중에 하나가 젓가락질이었다. 친오빠는 젓가락질을 엉망으로 해서 명절같이 어른들이 모여 식사하는 자리에선 늘 혼나기 일쑤였다. 너보다 5살이나 어린 네 동생도 저렇게 젓가락질을 하는데 고칠 생각 없냐고, 이렇게 말이다.

 지금의 나는 젓가락질을 꽤나 잘하게 되었지만 이것 또한 무수한 시간과 연습이 필요했다. 장애인이 되고 나서 제일 힘들었던 것이 젓가락질이었다. 오른팔은 고작 꿈틀 하는 정도였고 이두근이 이완되어 굽힐 수도 없어 젓가락은커녕 숟가락조차 들 수 없었다. 심지어 왼팔은 손가락이 문제였다. 동전을 잡을 만큼의 힘도 없는 젓가락질은 꿈도 꾸지 못했다. 한동안은 엄마가 밥을 떠먹여 주었다. 성인이 된 나에게 밥을 떠먹여 주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참 부끄러웠다. 식사 때가 될 때마다 엄마에게 늘 미안하다 했지만, 그럴 때마다 최여사는 내가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다고 두 번 다시 못할 일일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이렇게 하게 되어서 오히려 기쁘다 하였다.

 고작 젓가락질 하나 제대로 못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내가 세상에서 제일 못나 보였다. 다른 사람들과 밥 먹는 것이 어렵다 못해 공포로 다가왔다. 나 혼자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있어야 이 사회로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아, 재활전문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성인용 에디슨 젓가락을 샀다. 집에서는 물론 외식을 하거나 친구들을 만날 때에도 다른 건 안 챙겨도 젓가락은 수저통에 넣어 챙겨 다녔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챙기지 않아도 될 물건을 챙기면서 드는 소외감이라는 이물감에 한참을 괴로워했다. 괴로움과 외로움은 많은 부분이 닮아있어 단 하나의 자음만으로 구분된다. 교정용 젓가락에 익숙해질 때마다 소속감과 소외감이 동시에 들었다.

 사회생활에 익숙해질 무렵에 온전한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서 소외감이라는 감정을 버리기로 마음먹었다. 회사에 챙겨 다녔던 에디슨 젓가락을 버렸다. 평평한 쇠젓가락은 여전히 사용하기 힘들지만 식당 이모님께 부탁드려 동그란 쇠젓가락을 꺼내 달라 했다. 퇴원하고 집에서 꾸준히 한 오른팔의 이두근 운동은 젓가락질을 위해 한 것처럼 밥을 먹는 15분 내외의 시간을 아주 잘 버텨주었다. 밥을 먹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근력이 떨어져 팔과 손가락이 자꾸만 떨리지만 여전히 잘 버텨오고 있다.

 현실을 도피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국 내가 감내해야 할 것들이라면 도피보단 결투 쪽이 더 멋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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