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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Aug 18. 2022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지

진솔하게 담아낸 나의 장애 이야기


 만약에 대학 입시를 앞둔 사람이 나에게 와서 어느 학과를 가는 것이 좋을까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경영학과를 제외한 모든 과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8년 전 졸업을 앞두고 특색 없는 과를 나와 취업과 진로에 대해 고민을 할 때 엄마와 함께 동성로에 위치한 유명 철학관에 들러 사주를 본 적이 있다. “저는 어떤 직업을 가지는 게 좋을까요?”라는 질문에 시큰둥한 표정으로 “역마살이 끼어 있으니 여행사나 언변이 좋아 가르치는 직업”이라 답했고, “건강운은 어떤가요?”라고 물었을 때는, “잔병치레는 많지만 큰 병 없이 장수할 것”이라 했다. “결혼은 할 수 있나요?”라는 마지막 질문에는 콧방귀를 뀌면서 “20대에 하면 이혼”이라 중얼거렸다.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엉망진창인 점괘였다.

 큰 병을 한번 앓고 난 후 그의 말을 회상하면 나를 만날 당시에 그의 신력은 잠시 잃었던 것이 틀림없다. 장애인이 될 만큼 한 사람의 인생에서 큰 사건을 틀리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한편으론 20대가 아닌 30대에 결혼을 해서 그이와 다정하게 투닥거리며 잘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젊은 층의 이혼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봐선 저걸 신력이 있다고 봐야 하나 싶기도 한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점괘가 하나도 맞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점쟁이의 말대로 여행사 직원이나 교사, 강사가 되었으면 지금의 나는 소설 작가, 에세이 작가를 꿈꿀 수나 있었을까. 역시 정해진 운명대로 살아가야 하나 봐, 운명에 굴복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 테니 말이다. 내가 차곡차곡 쌓아온 가치관과 그 가치관으로 비롯된 수많은 선택들이 신이 미리 그려놓은 그림이었다면 조금의 희망도 없이 무너지고 말았을 것이다. 오히려 돌팔이 점쟁이를 만난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나의 엄마는 작년까지 주기적으로 신점이나 사주를 보러 다녔다. 우리 딸의 장애가 언제쯤 사라지나요, 평생 몸이 불편한 채로 살아야 하나요, 비어버린 척수가 언제쯤 채워질까요, 라는 의사조차 답변하지 못할 허망한 질문들을 들고 점쟁이들을 찾아가곤 했다. 찾아갈 때마다 점쟁이들은 딸아이 아픈 곳 하나 없다, 너무 건강하다, 라는 답을 했다고 한다. 또 엄마는 절에 찾아가 스님에게 물었다고 한다. 우리 딸아이 인생 한번 들여다봐달라고. 엄마는 합리화가 필요했던 것 같다. 내가 장애인이 된 것은 정해진 운명이라 거스를 수 없으니 겸허히 받아들일 핑계 말이다.

 지금의 나로선 점괘가 하나도 맞지 않는 것이 아주 기쁜 일이다.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이미 다 정해져 있다면 이 남은 삶이 얼마나 지루하고 지겨울까. 사실 이 이야기를 하기 며칠 전에 나는 같은 과 직원과 용하다는 보살에게 신점을 보려고 예약을 했다. 한편으로는 모든 예언들이 다 틀리기를 기원하고 있다. 어떠한 말들을 들어도 그 말에 휘둘리지 않고 꿋꿋하게 앞을 나아갈 나라는 것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삶을 뒤흔들만한 사건도 이겨낸 내가 그깟 신 따위가 무서울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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