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하게 담아낸 나의 장애 이야기
척수염이 발병하고 대략 한 달 정도는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내가 자고 있는 동안 또 다른 곳에서 운동신경이든 감각신경이든 내 몸 안에 분포하고 있는 온갖 신경들이 마비가 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 때문에, 그리고 잠들려고 할 때마다 100킬로그램이 넘는 무게가 날 짓누르는 것 같아 숨이 막혀 쉽사리 잠들 수가 없었다. 배회하는 마음을 억지로 붙잡고 옆에서 곤히 잠든 엄마를 툭툭 깨웠다. 도저히 혼자 버틸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다. 놀라서 깬 엄마의 모습을 보며 아니라고 더 자라고 했지만 극구 사양하며 같이 병원 복도를 걸었다. 의자에 앉아 엄마를 붙잡고 이야기했다.
엄마 이 모든 게 악몽이면 좋겠어, 꿈이면 좋겠어.
여전히 나는 이 모든 게 꿈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지독한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고. 나의 이 헛된 희망이 무색하게도 종종 나는 만세를 번쩍 하거나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비행하는 꿈을 꾼다. 다른 사람들이 꾼다면 기분 좋은 꿈이겠지만 나에겐 악몽이나 다름없다. 꿈은 현실과 반대라고 하는데 역시 나는 평생 만세 한 번 못해보고 죽겠구나.
잠들 때마다 자고 일어났는데 10년이 흘렀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한동안 했었다. 현재가 너무 고통스러워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하던 생각이다. 그때 당시의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었다. 혼자 할 수 있는 거라곤 고작 걸어가기, 화장실 가기 뿐이었기에 10년 후의 나도 여전히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있을지 고민하고 걱정했다. 6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꽤나 이용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었다. 번듯한 직장에서 고정적인 수입을 벌고 있으며, 도움이 필요한 곳에 조금의 주저함이 있지만 손을 내밀 수 있게 되었고, 또한 오르내리던 감정의 폭도 많이 안정화되어 내 마음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때 꿈꾸던 10년 중 앞으로 4년이 남았다.
한동안은 꿈을 꿀 여력조차 없었다. 꿈을 꿀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당장 오늘 하루만 사는 것조차도 숨이 찼기에. 시간이 꽤나 지난 지금은 소소한 꿈을 꾼다. 척수염이 아니었다면 여전히 원대한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늘 흑백논리였다. 대기업 취업 아니면 실패. 유명인 아니면 실패. 온 세계가 나를 주목하기를 바란 탓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상실감이 크게 들었다. 욕심에 욕심이 꼬리를 물고 점점 더 부풀었고 하나를 이루었을 때에는 그깟 하나, 라는 마음이 들어 마냥 기쁘지 않았다. 나의 꿈은 조그만 성과로 일희일비하는 정도가 아니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사람이며, 어딜 가든 날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고, 먼 미래에 내가 죽어서도 많은 사람들이 대단한 사람이었다고 박수 쳐주는 삶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채찍질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가 그릇이 큰 사람이라고 믿었던 나는 다른 사람들의 채찍질에 쉽게 상처받고 아파했다. 인정받지 못하고 비판과 비난 그 사이 어딘가의 이야기를 들으면 의연하게 대처하기는커녕 나를 깎아내리기 바빴고 쉽게 좌절했다. 나는 재능 없는 사람이야, 나는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어, 라며 남을 시기하고 나를 갉아먹으며 참으로 나쁘게도 치열하게 살아왔다.
작은 그릇에 고여 있는 물은 썩기 마련이다. 그래서 생긴 병이라면, 주기적으로 물을 흘려버리고 조금씩 그릇의 크기를 넓혀가며 깊이 만들어 가야 한다. 날 알아봐 주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나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이 다섯 손가락 정도 꼽을 수 있다면 그것 또한 꽤나 괜찮은 삶이지 않을까. 꿈의 크기와 삶의 가치는 비례하지 않는다. 이 세상에 시시한 사람은 없다.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좋은 삶을 살고 있다고 자만할 필요는 없다. 물론 나에게 하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