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하게 담아낸 나의 장애 이야기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는 장애인이면 누구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을 거라는 것이다. 오류가 있다. 생명이 위태로워질 만큼의 도움이 간절하지 않다는 점, 그들에게도 삶의 요령이 있다는 점, 그리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도움 없이 살아내는 사람은 없다는 점.
재활전문병원에서 퇴원하고 나서 전에 일하던 학원에서 연락이 왔다. 몸이 괜찮아졌으면 다시 나와서 일을 하자는 제의였다. 겁도 없이 덥석 제안을 받아들였다. 주변에선 모두 만류했다. 벌써 나가는 건 아니라고, 조금 더 회복하고, 조금 더 적응하고, 조금 더 괜찮아지면 나가는 게 어떠냐고. 다들 걱정하는 바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았다. 해야 될 말과 해선 안 되는 말들이 무엇인지 판단하는 능력이 없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내가, 그들이 전하는 순수한 매질에 다치진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그들의 걱정과 달리 내가 학원을 관두게 된 건 단순히 내 체력 때문이었다. 학생들의 일과에 맞추고 그들의 체력을 따라가려면 나는 거의 운동선수가 되어야만 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격무에 시달려 이 병을 얻은 건 아닌가 싶었는데 제 발로 돌아온 것부터가 잘못이었다.
한숨만 나왔다. 어린 시절 내가 꿈꾸던 모습은 이 모습이 아니었는데. 물론 나의 몸도 이렇게 변할 거라고는 내 플랜엔 없었지만 단단하다고 생각한 내 정신과 마음 또한 이렇게 무기력감과 불안감에 잡아 먹혔을 거라곤 생각한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10년 후엔 우린 어떤 모습일까? 직장인이 되어 있겠지? 서울에서 살고 있을까? 집 한 채, 차 한 대, 아주 멋진 애인까지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날 멘토로 삼는 신입직원이 있을 수도 있어!라는 상상들. 어느 것 하나 맞는 건 없었지만 이런 껍데기들은 어떻든 상관이 없다는 것이 지금의 결론이다. 이 무기력감과 불안감으로부터 내가 잡아먹히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물론 나도 내 장애가 가족에게, 친구에게, 동료들에게 짐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아니 사실 무수히 많았다. 짐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할 수 있는 판단력이 필요했고, 그 능력을 키우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했다. 나도 새로워진 내 몸의 한계치에 대해 파악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서 이런저런 것들을 시도하고 도전하기엔 겁이 났었다. 나의 약점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또 있을까. 어느덧 장애인 6년차이지만 여전히 나의 약점들에 대해 모두 다 파악하지 못했다. 어제는 잘 되었던 것이 오늘은 미숙하고, 어제는 손도 못 댔었던 것이 오늘은 또 무슨 이유에서인지 잘 움직이기 때문이다. 비루 이것이 나에게만 해당하는 일인 걸까. 짐이라 칭하는 약점들이 비단 장애인인 나에게만 주어진 것일까 싶다. 모든 사람이 각자만의 짐을 짊어지고 있으니 당신도 나처럼 정면 돌파하세요! 힘내세요! 할 수 있어요!라는 말들은 위험하다. 아, 당신은 이것을 잘 못하는군요, 그럴 수 있어요, 저도 그건 힘들더라고요, 라며 그들의 짐을 이해하는 방법은 어떨까 싶다.
나에겐 평생 안고 가야 하는 나만의 짐이 있지만 바닥에 내려놓을 생각은 없다. 기꺼이 그 짐을 그들만의 짐을 가지고 있는 누군가에게 넘겨주지 않고, 나의 품에 안았다가 등에 업었다가 머리로 이고 가면서 그렇게 살아질 것이다.
아주 옛날옛적 나의 꿈은 커리어우먼이었었지만, 지금 나의 꿈은 이 세상에서 작고 귀여운 존재로 살아지는 것이다. 거창한 꿈 따위는 필요가 없다는 것을 27살에 깨달았다. 지금은 학원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워라밸이 잘 지켜지고 있어 나름의 만족을 하고 있다. 나의 이야기와 내 머릿속을 떠도는 갖가지의 이야기들을 글로 풀면서 다시 한번 더 내가 이 세상에서 작고 귀여운 존재로 살아지고 있음을 증명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