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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아 Aug 24. 2022

말하지 않는 것도 거짓말

진솔하게 담아낸 나의 장애 이야기


 한동안은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새로운 사람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을 나와 보냈던 사람들조차 만나는 것이 꺼려졌다. 사실 두려웠다는 쪽이 더 가깝다. 아프고 힘들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받게 되는 동정 가득한 눈빛들이 불편했다. 난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는 몇 번이고 있었지만 죽음과 삶 중에서 기꺼이 삶을 선택했다.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한 편은 아니지만 고작 장애인이 되었다고 해서 내 삶을 잃어버리기엔 내 존재가 아까웠다.

 좋아하는 이들을 만나 안부를 전하고 시시한 농담을 던지거나,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의 가치관과 생각을 공유할 때 고민은 나의 몫이다. 오른손에 쥐고 있는 나의 패를 그들에게 보여줄 것인지 말 것인지. 나의 장애는 얼핏 봤을 때에는 동작이 어색하다, 독특한 행동 패턴인 것 같은 느낌만 있을 뿐 내가 나서서 먼저 말하지 않는 이상 알아채지 못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것 또한 편견인 듯싶다.

 언젠가 한번, 엄마의 거짓말을 우연찮게 들은 적이 있다. 나를 간병하던 7개월 동안 엄마는 주변 사람들과의 모든 연락을 철저히 차단했다. 퇴원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연락을 끊었던 사람에게 다시 연락해 자신이 아팠던 것이라고 이젠 다 나았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언제든 들켜도 이상하지 않을 이야기들이었다. 도망쳤다, 엄마의 거짓말에서. 엄마와의 갈등이 생길까 봐 지레 겁먹고 입을 다물고 도망치는 쪽을 택하자 깊은 소외감이 들었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그래도 가족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태초부터 잘못된 생각이라는 기시감에 밤을 지새웠다. 장애인 판정을 받았던 그날보다 거짓말로부터 도망쳤던 그날에 더 많이 울었다.

 여전히 그때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도 어렴풋하게나마 느껴지는 건 거짓말 안에는 날 보호하기 위한 방패가 있었다는 것이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안타까움의 탄식, 비장애인이라는 것에 대한 안도감 따위로부터 날 보호하기 위해서였겠지. 엄마, 그거 오산이야. 생각보다 나는 단단하다. 언제나 그랬듯 날 칼로 찌르고 난도질할 수 있는 건 타인이 아닌 늘, 언제나, 항상 나였다.

 길을 걷다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어르신을 본다면 난 과연 어떻게 할 것인가. 손을 내밀어 그 짐을 함께 들어줄 것인지, 조용히 못 본 척하며 그 옆을 지나칠 것인지. 어찌 보면 할머니보다 더 제기능을 못 하는 팔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도와주지 않느니 못 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쳐 가기엔 스스로를 하찮은 인물로 여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고민도 된다. 그다지 착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쁘다 착하다 이분법적 사고로 따진다면 착한 사람에 조금 더 가깝지 않을까. ‘할머니, 사실 제가 팔을 못 써서 도와드릴 수가 없어요.’ 그래, 사실 불필요한 말이다.

 새로운 명함이 생긴 지도 어느덧 6년이 넘어가고 있는데 여전히 나는 누군가에게는 말을 하고,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기준이라는 건 없다. 때때로 한번 보고 말 사람에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오래도록 만날 사람에겐 구태어 먼저 말하지 않기도 한다. 일회성 만남의 사람에겐 들지 않는 감정이 나와 애정을 꾸준히 주고받는 사람들에게 생긴다. 죄책감, 말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죄책감이라는 감정. 인연이 길어지고 깊어질수록 생겨나는 죄의식은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일까.

 사실 아프기 전의 인연들은 대부분 다 끊어냈다. 자아가 완성되기 전부터 함께 했던 몇 명의 친구들과 구질구질했던 재수생과 대학 시절을 동고동락했던 동기 아닌 동기라 부르는 아이를 두고서는 휴대폰 번호도 바꾼 채 단절했다. 그때 당시에는 부정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열등감에서 오는 두려움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나와 만날 때마다 돌발상황에 조심해야 하는 나 때문에 옛날처럼 마음 편히 술을 마시지 못하고 밤늦게까지 거리를 거닐지 못할 것이며 다른 사람과 내가 혹여나 부딪히진 않을지, 늘 배려를 전제로 둔 만남을 가져야 했다. 그래서 난 그들을 만날 때마다 여전히 아픈 사람이었고 혼자 두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고 괜찮아도 괜찮지 않은 사람이었다. 불필요한 배려들이 나를 열등감 가득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어리석기도 해라,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글을 쓰면서 깨우쳤다. 그게 뭐라고. 나는 괜찮으니 너희가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라고. 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내가 할 수 있는 거에는 나도 기쁜 마음으로 동참하겠다고 하면 될 것을.

 - 내가 구태어 말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언제가 되든 꼭 얘기할게, 그때까지 기다려줘도 되고 먼저 이야기를 꺼내 준다면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이야기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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