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내담자: 오주영
[SESSION 02. 생사]
생사는 또 어떨까요. 불가에서는 ‘생사일여’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지요. 생과 사는 한 덩어리나 마찬가지이며 둘로 나눌 수 없다는 뜻입니다.
- 내일이 만약, 내가 죽는 날이라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양치질을 하던 저녁, 휴대폰 액정 화면에 느닷없이 ‘죽음 예고장’이 날아들었습니다. 알고보니 자극적인 마케팅 문구의 알림이었지만요. 이내 비누를 집어 들며 생각했습니다. 내일 죽는다면 죽는 거지 뭐.
‘메멘토모리’라든지 ‘바니타스’**같은 것들이 죽음의 필연성을 노골적으로 강조해 왔지만, 한창 날뛰는 20대의 저에게 죽음은 인생과 나란히 마주한 평행선처럼 보였고 영영 만날 일은 없을 듯했습니다. 내일 죽을 수도 있다니 설마, 로또에나 당첨되면 모를까요.
30대에 접어들며 ‘상징적’인 죽음이 차례로 찾아왔습니다. 젖과 꿀이 넘쳐 날 줄 알았던 결혼 생활은 신혼 초 일찍이 말라 비틀어 졌고, 3년 간의 세뇌와 폭력, 이혼과 별거의 과정 끝에 제 안의 어떤 것들도 영원히 말라 죽고 말았습니다. 상징적 죽음들이 힘을 합치니, 가히 ‘물리적’ 죽음의 멱살까지 끌어올 정도였습니다. 경동맥은 생각보다 쉽게 끊어지지 않았고, 우발적인 자살 시도는 실패했습니다만, 슬쩍 스쳐 갔던 죽음의 손이 삶처럼 따뜻했던 것이 놀라웠습니다. 태어나고 죽는 것은 책의 겉표지나 뒤표지와 같다,라는 유대인의 속담이 문득 떠올랐지요.
잠시 보류된 죽음 이후엔 덤으로 주어진 날들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언제 죽음이 찾아오더라도 억울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행동이나 말을 할 때 늘 매듭의 모양새가 되도록 의식적으로 매만져 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매듭짓지 못한 끝이 가시가 되어 저의 죽음을 괴롭히지 않도록요.
악어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짧은 만화***가 있습니다. 악어는 ‘평범’에도 못미칠, 어쩌면 시시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일상을 보냅니다. 100일 후 죽음이 ‘예약’되어 있다는 장치만이 이 악어를 특별하게 만들지요. 독자들은 설정을 알고 있지만, 정작 악어 본인은 모른다는 것이 이 작품의 백미입니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보며 웃고, 성실히 아르바이트를 하며, 라면을 끓여 먹고, 남는 시간에 게임을 하는 등 딱히 기억에 남을 것 없는 에피소드가 나열될 뿐이지만, 각 에피소드 위에 떠있는 ‘디데이’는 독자들로 하여금 긴장하게 만듭니다. 때로는 들뜨고, 가끔씩 우울하며, 대부분 감상 없는 날들이 덤덤히 지나가지요. 마침내 D-0, 악어는 차에 치일 뻔한 병아리를 구하고, 흩날리는 벛꽃 속에서 최후를 맞게 됩니다.
- 요즘엔 좋은 하루보다, 별일 없는 하루가 더 고마워요.
저의 신경정신과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나이가 들수록 ‘좋은 날’보다 ‘별일 없는 날’을 더 기대하게 된다고 하시더군요. 무시무시한 죽음을 앞두고도 비장하지 않으며 ‘죽기 전 꼭 해야 할 100가지’ 따위의 버킷리스트도 없습니다. 악어는 만화책을 보거나 귤을 까먹으며 매일을 주어진 대로 살아갈 뿐입니다. ‘한낱 소시민’의 삶을 사는 악어의 인생이 별 볼일 없다고 말한다면 글쎄요, 사실 인생의 의미란 그저 살아내는 게 전부인 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머리 위에 떠있을 숫자는 각자 다를테지만 사실은 모두 같은 처지 아니겠어요. 두 달 뒤 발표할 프리젠테이션을 만드는 데 혈안이 되어 있는 제게 남은 날이 사실 30여일 뿐이라면, 오지도 않을 날을 위해 오늘을 저당 잡힌 셈일 것입니다.
항상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었고, 올지도 모르는 내일을 위해 애쓰고 허우적대는 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만약 이대로 제 인생이 끝난다면 미완인 걸까요?
악어에게 어떤 목표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악어가 병아리를 사랑했으며, 병아리를 위해 집을 지어 주었고, 끝내는 병아리의 목숨을 구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인생이었다,라고 악어 스스로 만족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디데이야 뭐 어떻겠습니까, 매일이 최초의 날이고 매일이 최후의 날인도 모르겠습니다.
7정****이 끓어 넘칠 때는 그저 내버려 두고 그 소용돌이를 무심하게 바라봅니다. 제가 어디쯤에 서있는지 가늠하기 위해 가끔 명상이 필요합니다. 명상의 화두는 늘 지금, 여기이니까요. 이 순간 일으킨 파장이 어느 날엔 어딘가에 닿아 누군가의 빛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완성형인 삶이라고 감히 생각해 봅니다. 무용수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이미 아름답다면, 공연의 결말이야 아무렴 어떻겠습니까.
** Vanitas, 17세기 유행한 정물화의 장르. ‘삶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해골, 촛불 등을 주요 소재로 삼음
*** 키쿠치유우키, <100일 후에 죽는 악어>, 2019
**** 희노애락애오욕.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사랑, 혐오, 탐욕의 7가지 인간 심리를 말하는 유교 용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