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툰 3화] 너와 나

내가 나라서 힘들다면, 너는 너라서 힘들 거야.

by 여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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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운이 좋게도 김진만 감독의 10분짜리 애니메이션 <춤추는 개구리>를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선과 악을 구분 짓는 ‘절대성’이야 자라나면서 떼어낸 개념이지만, 새삼 나와 너, 원인과 결과 등, 둘 또는 그 이상으로 구분 짓는 경계의 모호성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햇살 따사로운 수풀 속은 여느 때처럼 평화로웠다. 느긋하게 여유 부리며 지날 줄 알았던 오후, 돌연 커다란 뱀이 풀숲 사이로 기어온다. 가지각색 개구리들은 사색이 되어 일제히 흩어졌고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남고자 애를 쓴다. 연두색 개구리 역시 폴짝 폴짝 도망치기에 여념 없었다. 그 와중에 뭍으로 밀려난 올챙이를 구하기도 하고, 혹은 다른 개구리를 밟고 올라서는 등 ‘생존 경쟁’에 비할 바 못 되는 사소한 사건들을 일으키게 된다. 불특정 공공과 연두색 개구리, 둘 사이의 관계를 놓고 보았을 때, 죽어 가는 올챙이를 구하는 것은 선이고 나 먼저 살겠다고 짓밟는 일은 악일 것이다. 한편 전지적 관찰자가 되어 전체를 내려다보면 어떨까? 올챙이를 구하는 행동은 결국 다른 개구리의 죽음으로 귀결되고, 살겠다고 올라간 곳에서 새의 먹잇감이 되고 만다. 그야말로 행동의 ‘원인’과 ‘결과’가 보기 좋게 어긋나고 빗나가는 ‘혼돈의 카오스’가 펼쳐지는 것이다.


사후 세계에 닿은 ‘연두 개구리’는 목숨이 여러 개인 게임 캐릭터인 양 매번 새 생명을 얻게 된다. 다만 그때마다 원래 자신이 아닌 ‘보라빛 개구리’나 ‘분홍빛 개구리’ 등으로 부활하여 다른 개구리 시점의 삶을 살게 된다. 자타 구분 없는 행위들이 이리 얽히고 저리 설켜, 운 좋게 사는 놈도 재수 없게 죽는 놈도 있었지만 끝내는 모두가 사후 세계에서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는 서로를 구분 짓던 빛깔마저 잃고, 모두 똑같이, 하얀색 개구리가 되어 함께 춤을 춘다.


적선하는 셈 치고 한 일이 어떤 이에겐 극약이 될 수 있고, 스스로 살겠다고 한 일이 정작 자신을 죽음으로 이끌 수 있다.


불교의 ‘연기론’ 중에서도 ‘제법무아’는, ‘다른 것과의 관계없이 고립되어 있는 것은 하나도 없으며, 모든 것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상호 관련되어 있다’라고 한다. 즉, ‘이것이 있으면 그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그것도 없는 것이다’라는 것이 연기론의 기본 법칙이다. 나와 연관되지 않은 것은 없으며, 나는 만물에, 만물은 나에게, 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뜻이다. ‘이분법적인 구조’ 나름의 편리성이 있다고 쳐도, 둘로 딱 떨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너와 나 사이의 경계도 이와 같지 않을까.


“내가 나라서 힘들다면, 너는 너라서 힘들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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