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List = 최책감
3년 전부터 구독해 오던 플랫폼이 있다. 직장인을 위한 데일리 매거진 정도로 여기면 될 듯 하다. 이 플랫폼은 효과적인 커리어 관리, 실무 능력 향상, 업계 동향 및 최신 트렌드 관련 콘텐츠를 제공해 준다. 한편, ‘노동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몸값’을 ‘레벨 업’하여 ‘좀 더 많은 재화’를 획득하려면,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결국 ‘구글’이라는 망망대해에 둥둥 표류하기 마련인 우리 개미들에게 실용적이면서도 튼튼한 동아줄을 던져 준다. 시의적절한 정보를 잘 섞고 버무린 뒤 한 입 크기로 작게 잘라 입에 쏙 넣어 주는 영리한 비서이기도 하다. 읽는 동안 만큼은 성공이 손에 잡힐 듯한 ‘느낌적인 느낌’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종국에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말라며 줄행랑치는 일부 자기 계발서보다는 좀 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나침반이 되어 줄 때가 많다.
이외에도 나는, Z세대 최신 트렌드라든가, 경제 동향이라든가 하는 매거진 형식의 여러 플랫폼을 구독하면서 세상 모양새를 더듬고자 애쓰고 있다. 개중에는 기존에 무료로 제공하던 콘텐츠를 유료로 전환한 곳도 제법 많다. 형체의 유무 여부를 떠나 시간과 에너지가 투입된 모든 것에는 그에 상당하는 재화가 지속적으로 공급돼야 하며, 그때서야 그 ‘서비스 (또는 제품)’ 역시 비로소 그 양과 질을 무리 없이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엣지가 있되 선 넘지 않는 정도로’ 깔끔하게 큐레이션 해 주는 서비스에도 예외 없이 애덤 스미스 선생님의 질서가 적용된다. ‘보이지 않는 서비스’는 ‘보이지 않는 손’들에 의해 시장 경제의 주요한 맥으로 자리 잡았고, 그중 하나가 바로 ‘구독 경제’ 서비스가 아닐까 싶다. 점심 뭐 먹을까 하는 퀘스트를 깨고 나면 다시 짬봉이냐 짜장이냐를 고민하는 우리네 직장인들에게 있어서 정말이지 편리한 서비스가 아닐 수 없다.
OTT를 위시한 구독 경제는 마치 새로운 경제 트렌드인 양 부쩍 회자되고 있지만, 사실 ‘선별’ 작업을 거쳐 유무형의 ‘결과물’을 ‘정기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는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신문, 우유 배달 등이 있었고, 또 각종 학습지 또한 대유행했다. 개중에서도 나는 수학 학습지를 끔찍하게 싫어했다. 초급 단계에서는 그림이라도 나오던 것이 몇 단계 올라가지도 않아 하얀 건 종이요 검은 건 숫자라며 안면몰수하니, 기껏해야 열 살 내외의 나에게 그 모습은 흉악하기 짝이 없었다.
지도 교사가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해 그간의 학습 내용을 체크 해주는 ‘약식 과외’도 진행되었는데, 선생님이 오시기 전날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해 당일 하굣길에는 지구 종말을 기도하기에 이를 정도였다. 끙끙 앓던 끝에 벼락치기라도 해낸다면 그나마 나은 경우였다. 대부분은 백지 그대로인 학습지를 붙들고 멋쩍음과, 힐난과, 죄책감 등을 고스란히 견뎌내는 식이었다. 가끔 학습지를 학교에 두고 왔다는 둥, 잃어버렸다는 둥 뻔뻔한 거짓말을 해댔는데, 비록 어린아이였을지언정 그 ‘찌질’하고 한심한 모습을 떠올리고 있노라면 성인이 된 지금도 민망하기 그지없다. 외상 후 후유증까지 남은 셈이니, 대단한 위력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수학 학습지는 이후에도 모습만 바꾸어 가며 내 평생을 따라다녔다. ‘To-Do-List’에 매일 올라오긴 해도 지워진 적은 거의 없는 ‘오늘은 홈 트레이닝 꼭!’ 따위가 되는 식이었다. 크고 작은 결심은 도처에 널린 작은 가시처럼 지금도 나를 살살 찔러 대고 있다. 고생하시는 관계자 분들께 정말이지 너무나 죄송한 말씀이지만 내 죄책감의 원천 대부분이 자기 계발 매거진 등을 포함한 구독 서비스이다. ‘OTT’ 서비스나 ‘전자책 플랫폼’, ‘직장인 교육 플랫폼’ 등 다수 구독 업체에 성실히 돈을 기부하며 본전 따위는 정중히 사양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나의 ‘구독 과잉’은 ‘위기의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정보도 기회도 다 놓칠 것 같았다. 결국 뒤처지다가 끝내는 도태될 것 같다는 불안감 속을 사는 나에게 ‘구독’은 세상과 맞서는 강력한 ‘무기’로 느껴졌다. ‘자기 계발 콘텐츠’는 나를 비싼 몸으로 만들어 줄 달콤한 ‘연금술’ 마냥 느껴졌고, ‘명상 콘텐츠’는 소위 ‘만병의 원인’인 스트레스를 치유해 줄 것만 같은 ‘힐링 포션’처럼 느껴졌다. 실상은 시간을 처참하게 살해하는 죄책감을 견뎌가며 ‘유튜브’ 가십 뉴스에 빠진 채 뒹굴고 있지만 말이다. 그 ‘유튜브’의 프리미엄 서비스 비용이 아깝다며 몇년째 광고를 참고 보는 것은 대체 무슨 아이러니란 말인가.
이대로 죽어서 저승에 간다면, ‘나태지옥’의 ‘초강대왕’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을까.
“이렇게 태만하다니, 넌 더 볼 것 없이 나락 행이다. 자, 다음 인간.”
꼬박꼬박 돈만 냈지 알고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셈이었다. 곧장 나락으로 직행할 줄 알았던 인생은 의외로 ‘구독’을 하나 마나, 그럭저럭 무탈하게 살아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나의 신경 정신과 주치의 선생님께서는 ‘반드시, 꼭, 어떤 상태이어야만 해’, 혹은 ‘무엇이 되어야만 해’, ‘어쩌지 않으면 큰일 날 거야’라는 생각은 허상이며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말씀하셨다. 물결이 일면 이는 대로 그저 몸을 맡기라고, 세찬 흐름을 거스르느라고 애쓸 것 없이 그냥 따라서 흘러가도 되는 거라고,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때그때 대처하면 되는 것이라고 재차 강조하셨다. 애초에 ‘정답’이 존재한다고 믿는 나의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