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감각 없는 사람의 변명
Y팀장의 시도 때도 없는 지시에 허덕이던 팀원들은 이러다 죽네 사네 자조하며 함께 항의라도 하자는 분위기가 되었다. 몰래 만든 채팅 방에서 Y팀장을 희화화하며 업무 시간 내내 낄낄대곤 했다. 또 어느 날은 하나둘씩 엇갈려 자리를 뜬 뒤 다시 삼겹살집에 모여, ‘이런 환상적인 팀원 조합은 없었지’, ‘팀장 하나 미친놈인들 어때’,하고 새삼 서로를 기특히 여기며 술잔을 부딪쳤다.
가끔 Y팀장과 대화라도 나눌라치면 묘한 위화감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Y팀장은 나나 다른 팀원들의 지극히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 궁금함을 표시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Y팀장의 대화 소재는 주로 자신의 지인과 위업을 과시하는 내용이었다. 새로운 팀원이 입사할 때면 눈을 반짝이며, 마치 그 사람에게만 하는 이야기인 양 자신의 업적과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토씨마저 변하지 않는 레퍼토리를 반복하는 데 싫증을 내는 법도 없었다. 본인의 이야기를 마치면 임무를 다했다는 듯 자리를 떠나곤 했다. 팀원들은 이제 저 이야기만 스물세번째 들었네, 나는 벌써 서른 번째를 채웠네 하며 앞다투어 조소를 터뜨리곤 하였다. 실제로 그 업무를 같이 하였던 이들에게 사실 확인을 해보면 이야기의 9할이 허풍인 것으로 드러났지만 말이다.
회의 때면 시장 점유율 몇 프로 달성, 이번 달 매출 120% 달성 등 현실적인 것에서 시작하여, 30분 즈음이 지나면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겠다는 둥, 홈페이지를 갈아엎겠다는 둥, Y팀장의 상상은 무한대로 뻗어 나갔다. 끝내는 우주 정복을 목표로 하는 것 아니냐며 마음속으로는 조롱을 일삼곤 했다.
어느 날도, 팀원들은 채팅방에서 Y팀장의 흉을 보고 있었다. Y팀장의 행동이나 말이 채팅방에서는 모두 바보스럽고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변했다.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지고 말았다. 시선이 닿는 듯하여 옆 눈으로 흘깃 하니, 이상한 낌새를 느낀 듯한 Y팀장이 내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날 팀 전체가 회의실에 소집되었다. 회의실 내부에 떠도는 공기가 사뭇 험악했다. 팀원 한 명 한 명에게 옮겨지던 이글거리는 시선이 나에게 꽂히는 순간 Y팀장이 내뱉었다.
“어떤 누구든, 이 팀 분위기를 흐리는 사람은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그게 어느 누구가 됐든 말이야.”
Y팀장이 자리를 비워 분위기도 느슨해진 그날 오후, 팀원들은 다시 커피숍에 집결했다.
“팀 분위기 흐리는 사람을 용서할 수 없으면 주먹으로 거울이라도 깨겠다는 말인가? 아니면 본부장실로 직진해서 본부장 명치라도 날리겠다는 건가?”
M의 말에 팀원들은 자지러지게 웃으며 한 마디씩 앞다퉈 거들기 시작했다. 함께 웃고 말기는 하지만 모든 것을 농담 거리로 폄하해 버리는 M이 싫었다. 무거운 일들을 가볍게 만들어 버리면 문제가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상처 받은 마음이 아프다고 내색하는 사람을 ‘진지충’으로 폄하하려는 것일까? 모든 것을 가벼이 여김으로써 혼자만 개운해지려는 것은 아닌가? 그녀의 옆에서는 나는 언제나 ‘쿨’ 하지 못하고, 속 좁고, 기분 나쁘게 음울한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