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행도 무용담이었으면 해
삐걱삐걱, 이가 맞지 않아 가운데가 꺼져 버린 회사 바닥이지만 그래도 발이 빠지는 일은 없다. 디딜 수 있는 마루가 있어 안심했다. 주 52시간 근무제, 최저 임금제 모두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수혜를 누리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 순서는 아마 최후가 될 것이다. 이곳을 박차고 나간다 해도, 우리는 아마 어느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었다. 엇비슷한 규모의 회사에서 만만한 조건의 사람들에게 이직 제안서를 돌리는 듯, 어제 내가 받은 제안이 내일은 옆자리 동료에게 가 있곤 했으니까. 그런 회사들은 늘 입사율보다 퇴사율이 더 높은, 회전율 하나는 끝내주는 곳들이었다.
8월 연봉 협상이 있고 난 이후에는 층마다 퇴사 인사를 다니는 직원들이 매일 둘 셋씩, 한두 달이나 속출하곤 했다. 그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앞날이라도 보듯, 어떤 이는 안도하고 어떤 이는 한탄하였다. 그 앞날조차 보이지 않는 이들이 뻐끔뻐끔,하며 쉬는 한숨이 갑갑한 공기 속을 부유했다.
입사 지원서를 쓰던 당시 태어난 시간을 적는 란이 있어 의아해 하던 기억이 있다. 생시까지 적으라는 것은 사주를 보겠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면접 날, 잠시 자리를 비운 면접관의 서류 더미 사이로 비죽 나온 종이 한 장을 보게 되었다. 대충 훑어보니 나의 사주를 풀이한 내용인 듯 하였다. 경술월...임인일... 허리가 부러져 죽어도 일하다 죽을 팔자. 나는 면접을 가뿐히 통과하였다. 이 회사가 지원자의 사주를 본다는 것은 직원들 사이에서도 공공연한 사실인 듯 했다. 정작, 사주를 보아주던 회사 전담 역술가가, 몇 년 뒤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다는 아이러니한 소문이 들려왔지만 말이다.
어느 날인가, 같은 팀 사원 하나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리님, 저는 빨리 점심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빨리 퇴근을 하고, 빨리 하루가 지나고, 빨리 인생이 흘러서, 빨리 죽었으면 좋겠어요.”
“너는 젊은 애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농담이라고 생각해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후배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며 하루를 꾸역꾸역 채우다, 결국엔 청중 하나 없이 끝나 버리는 것이 인생인 걸까. 풍파를 과장하고 불행을 자랑하는 건, 누가 봐주지 않는 평범한 인생보다 비참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