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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날 Mar 06. 2023

Q. 혼자 있는 것이 두려운가요?

A. 그렇습니다.

정도의 차이야 있겠지만, 누군들 두렵지 않을 수 있을까?


물리적으로 혼자 있는 것은 두렵다. 난생 처음 와본 장소에서 네비게이터를 잃어버린 느낌, 숲 한가운데서 나침반을 잃어버린 느낌과 비슷할 것 같다. 무엇이든 해야할 것 같은 상황에서 기준점을 잃어버렸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행동 근거로 삼을만한 정보의 유입으로부터 차단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신적으로 혼자인 것은 더욱 두렵다. 사람들이 북적이는 장소에서 물에 뜬 기름 마냥 어울리지 못할 때 마음은 슬프다 못해 미어진다. 유대감을 형성하지 못한 채 둥둥 표류하는 섬처럼 떠 있자면, 스스로가 초라해 지는 느낌이 든다. 주눅 들고 못나 보이는 나 자신을 마치 제 3자 대하듯 모질게 미워하고 멸시하기도 한다.


홍콩에서 지내던 지난 시절에는 더욱 그랬다. 한 길 의지할 곳이 없다는 사실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의존할 곳이 없는 나는 죽고 말 것이라고 믿었다. 주말에는 사적인 모임에 꼭 나가서 어울려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늘 나를 따라다녔다. 한번, 두 번 나가지 않기 시작한다면, 사람들로부터 잊혀질 것만 같았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지인을 만드는 것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잊혀진다는 것은 마치, 대책없이 지구를 바라보는 우주인이 된 듯한 기분이 아닐까? 어서 '그사세' 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질식하고 말 거야. 혼자 쓸쓸히 죽어갈 거야. 그들 틈바구니에 섞인 채 함께 웃어야만 비로소 필요한 존재가 될 것 같았다. 남이 도구 삼을 수 있는 나만의 쓸모를 가져야 했다. 그리고 나 역시 도구로 쓸만한 누군가를 옆에 두어야만 했다. 되돌아 보니, 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꼭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벌써 10년이나 지난 일이다. 대다수의 지인들은 마치 물살처럼 우르르 나를 지나갔고, 종국에는 혼자 덩그러니 바위처럼 남았다. 여전히 나를 둘러싼 물결이 이고 지는 중이다. 그것은  고이기도 하고 흐르기도 할 것이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농담이 다른 얼룩만을 남긴 채 나를 스쳐갈 것이다. 지나고 보니 그 얼룩도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심지어 크고 작은 부식이 남기도 했다. 난잡한 부스럼의 흔적들을 보고 있자니 억울했다. 누가 이런 짓을 했어? 그러고 보니 나였네. 게으르게 그들을 맞아 들이고, 기꺼이 자리를 내주었던 것은 나잖아.


진흙 빚듯 바위의 모양을 바꿀 수 있는 그 전능한 힘은, 결국 나에게 있을 것이다. 내 마음에 드는 모습은, 타의에 의해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다. 능동적으로 산다면, 혼자 되는 시간이 오히려 귀해질지도 모른다.


고독함과 두려움은 서로의 필요 충분 조건이 될 수 있을까.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고독하더라도 외로워지지는 말아야지. 나와 나 사이의 관계가 돈독한지, 유대는 강한지 한번 생각해 보아야 겠다. 대중 없이 침식된 바위가 지금 무슨 모양을 하고 있는지도 새삼 들여다 보아야겠다. 그 모양이 세상에서 하나 뿐임을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어떤 상황에 처하건 나는 결국 홀로 어찌 어찌 해낼 것이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스스로에 대한 의존과 믿음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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