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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날 Mar 08. 2023

Q. 수업 시간에 배운 것 중 의미 있는 것?

A. 글쎄요, 딱히 심오한 건 없지만.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간 이슬아’ 마냥 곧 죽어도 1일 1회 발행한다는 목표는 내게 과분할 것 같다. 폼나게 잘 쓰려고 노력하지만 않는다면 어쩜 가능할지 모른다. 대신 마른걸레 짜내듯 꾸역꾸역 소재를 짜내는 고통은 감내해야 할 것이다. 제 아무리 훌륭한 소재라도  의식의 흐름대로 풀다가는 베베 꼬인 털뭉치처럼 아무 말 대잔치가 될지도 모르는 노릇이지만.


보여주는 글쓰기는 버리기로 했다. 지금부터의 글쓰기는 내 안에 있는 것들을 캐내고,  그것들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며, 마침내 가지런히 맞추는 작업이 되었으면 좋겠다. '다이소 발굴 키트'에 들어가는 노동 정도에 비유한다면 너무 저급일까. 망할 진흙 덩어리의 굳건함을 인내해 가며 부순 뒤, 그 안에 있는 플라스틱 공룡 뼈 따위들을 꺼내고, 공룡스럽게 조립하는 노동이나 이 작업이나 매한가지니까 괜찮을 것이다. 뻐근하게 덩어리 진 채 잊힌 내 기억과 경험들도 정갈한 개연성을 지니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복잡 다단한 세상 이치를 배우려고 무려 20여 년의 시간을 쏟아부었건만, 배운 내용 중 의미 있게 떠오르는 것이 거의 없다니, 내가 이렇게나 바보이다. 머릿속을 부유하던 니체의 철학도, 장자의 철학도 ‘그것은 철학이다’라는 궤변 같은 상식만을 남긴 채 끝내 휘발되어 버렸다. 나란 인간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란 오호통재라. 멋들어진 것 하나쯤은 들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단순하지만 명백한 가르침 하나만 선명하게 기억하며 살고 있다. ‘삶’을 등산에 비유하신 심리학 교수님의 인생철학이다. 산다는 건 등산과 같아서, 정상만을 바라보며 오르면 금세 지쳐버리고 만다고. 오히려 지금 걷는 작은 한 걸음 한 걸음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원하는 곳에 다다라 있을 것이라고. 굳이 정상 정복에 의미를 두지 않더라도 말이다. 생의 단막마다 일희일비하며 끓고 식기를 반복하는 나 같은 사람이 꼭 품고 살아햐 하는 가르침이다.


일례만을 든 것은 교육 전반의 무용성에 대해 비판하고자 함이 아니다. 개인의 성향과 환경에 따라 꼭 품고 가야 할 가르침은 제각각 다른 깊이와 충격으로 남았을 것이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나 그룹 GOD의 노래 <길>처럼 인생을 길에 비유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인생이 그리도 재미없는 것인가 고민했던 적이 있다. 구체적인 결과물을 보며 흡족해하는 나로서는, 차라리 인생이란 벽돌처럼 쌓아 나가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편이 좋았다.


그래서 이 구조물이 아름답기나 할지, 집처럼 유용하기는 할지 모르는 일이지만, 아닌 들 어떠랴. 이리 떼고 저리 붙여보며 맞춰본 유년 시절의 레고는 언제나 나의 뿌듯한 자랑이지 않았던가.


지금 쌓는 벽돌 하나를 만드는 일에 전념하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는 소소한 보람이 사실 인생의 전부가 아닐까 싶다. 이럴 때면 내가 진짜 늙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이 글을 씀으로써 벽돌 하나를 빚어낸 것일까. 아무 재료를 섞고 만 이 하찮은 이 덩어리가 어서 빨리 마르길 바라는 급한 마음은 내려 두는 것이 좋겠다. 온전히 굳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잠시 노래를 들으며 그림을 그리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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