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데’, ‘죄송하지만’의 양해와 사과를 구하는 단어를 습관적으로 사용한다. 더불어,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드리겠습니다’ 등 납작 엎드리는 저자세의 문체도 닳도록 쓴다. 난 내가 참 배려심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웬걸, 너는 뭐가 그렇게 죄송하고 미안하냐고, 진짜 필요할 때가 아니면 아예 쓰지 말라는 조언을 들었다.
일견 사려 깊어 보이는 이 단어는 사실 얄팍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밴댕이 소갈딱지 만한 나의 포용력을 감추고자 눈가리고 아웅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미안한데, 죄송하지만’이라는 말로 미리 포석을 깔아버린 뒤, 실례를 끼치더라도 부디 양해해 주십사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이다. 그리고 너 역시 실례를 끼치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동의 없이 선을 긋고 피차 예의를 지키며 영역 침범하지 말자는 뜻이다.
한편 지나친 자기애의 발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미안함과, 죄송함을 표현함으로써, ‘자, 내가 지금부터 어떤 실수를 하더라도 나를 미워하지 마세요.’라며 나의 선함과 순수함을 사전에 어필하는 것이다. 양해를 구해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비난하는 상대는 나쁜 사람이 되어버리고 만다. 이런 식으로 선수 치는 것은 기만이나 다름없다. 상대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다.
또한 비굴함을 영악스럽게 감추는 것이다. 한때 프랑스인 남자친구를 사귀었던 적이 있다. 신사동 거리를 걷던 어느 날, 갑자기 50대 중반 정도의 남성이 다가와서 우렁우렁 소리를 질렀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 그리고 넌 창녀야! 너희 부모도 네가 이러고 다니는 걸 아시냐?’라며 폭언을 퍼부었다. 그의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마주한 나는 울 듯한 표정을 하고 거듭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용서를 구했다. 내게도 얼마쯤은 비슷한 편견이 있어 제 발 저린 것 반, 무조건 잘못했으니 나를 공격하지 말아 주세요,라는 호소 반이었을 것이다. 프랑스인 남자친구는 넌 왜 죄송하다고 하냐! 라며 버럭 화를 냈지만, 나는 오히려 나의 사과가 사태를 진정시킨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당치 못한 비난에 분노할 줄 몰랐으며, 내 권리를 찾기 위한 싸움조차 두려워했다. 그만큼이나 바보천치였다.
늘 미안하고, 죄송하며, 굽실대고, 양해를 구걸해야 살아남는 줄 알았다.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죄송했는지도 모른다. 제발 날 버리지 말아 줘, 미워하지 말아 줘, 사랑해 줘. 마음 안의 절규는 한평생 나를 따라다녔다.
비굴함을 떨쳐 버리려고 노력 중이다. 나, 하나도 안 미안하다. 의식적으로 공격하거나, 악의를 실천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미안하고 죄송할 이유가 없다. 내가 부지불식간에 당신께 피해를 끼치고 있듯, 나도 당신의 실례를 기꺼이 이해하고자 한다. 그러니 가끔은 선을 넘어 내게 와락 안겨라.
미움받을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어쭈, 이거 봐라? 하며 여유로이 공격에 맞서고 싶다. 만사를 맞이함에 있어 기꺼이 대범해지고, 당당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