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쓰려면 ‘다독, 다작, 다상량(생각)’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이것을 ‘삼다’라고 한다. 중국 송나라 학자 ‘구양수’라는 사람이 학문을 하는데 꼭 필요한 세 가지로 든 것이다. 이를 쉽게 이해하고자 초콜릿을 만드는 과정에 비유해 보았다.
‘재료 마련’은 ‘다독(多讀)’의 과정에 해당한다. 작품을 창작하는 데 필요한 소재를 될 수 있는 한 많이 접한다. ‘독(讀)’은 꼭 읽는 것만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양산되어 있는 다양한 형태의 자료를 읽고, 듣고, 보고, 느끼는 등의 과정이 모두 포함된다. 유튜브 숏츠 영상이나 인스타그램 릴스라도 상관없다. 어떤 콘텐츠가 되었든, 그 안의 내용을 흡수하는 과정이다.
2번~3번은 ‘다작(多作)’의 과정에 비유할 수 있겠다. 습득한 콘텐츠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엮어 이리저리 변주한 창작물을 꾸준히, 자주, 닥치는 대로 생산해 내는 단계이다. 단언컨대,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성실함이다. 인내와 끈기도 필요하다 (생산이란 얼마나 고된 과정인가).
1~3의 전반적인 과정을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 ‘다상량(多商量)’이다. 곱씹어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다 (‘상량’은 중국어로 ‘생각하다’라는 뜻이다). 각 콘텐츠 내용을 중심으로, 가지 치듯 나의 생각을 보태어 나가는 것이다. 기존 콘텐츠에 나의 경험, 가치관, 환경이 더해지면서 제3의 새로운 아이디어가 번쩍하고 떠오를 수 있다.
4번의 경지에 이르면 명불허전의 파티시에가 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소위 ‘창의성’은 여기에서 슬슬 드러나기 시작한다. 기존 콘텐츠들을 아무리 다르게 표현한들, 나만의 ‘비밀 레시피’가 들어있지 않는 한, 비범한 창작물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나 외의 다른 사람들도 그 맛을 능히 구현해 낼 수 있을테니까. ‘비밀 레시피’란 과연 무엇일까. 천재성이나 천부적인 재능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창의적인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꼭 천재가 될 필요는 없다. 창작자의 ‘개성’을 잘 녹여낼 수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나만의 연산 방식에 따라, 나만의 고유한 질서대로, 나만의 해석을 담아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창의적인 능력’이 아닐까? 내 고유한 맛에 대해 끈질기게 고민해 보는 수밖에 없다. 사골곰탕이 될 때까지.
‘다독, 다작, 다상량’은 창작의 99%를 차지한다. 부족한 1%는 에디슨이 말한 ‘영감’ 일 수도 있겠으나, 앞서 말했듯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다. 1%는 나의 ‘손맛’이자 ‘지문’ 같은 것일 테다.
내 글에 담겨있는 ‘창의성’에 대해 생각한다. 100%는 물론 아닐 것이고, 5%, 10% 수준이나 되면 다행일 것이다 (괜히 겸손 떠는 것이 아니다).
2023년 나의 목표는 ‘일단 쓰는 것’이다. 근면 성실하자는 것이다. 나에게는 이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 창의성은 나중에 가서 고민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