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손 하나가 아이를 구했다
연이와 빈이가 자라면서 나는 자꾸만 주위를 보게 되었다.
아이들보다 아이들이 살아가게 될 환경이
더 먼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가 살던 곳은 조용한 마을이었다.
조용하다는 말은 아이를 키우기엔 때로 너무 조용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가까운 초등학교도 없었고, 병원도 멀었다.
무엇보다도 내 또래의 아이 엄마들이 주변에 거의 없었다.
아이 친구가 없다는 건 엄마에게도 친구가 없다는 뜻이었고,
나는 점점 더 이곳이 우리 가족에게 맞는 자리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되었다.
연이의 초등학교 입학이 조금씩 현실이 되어가던 무렵,
나는 다시 한 번 이사를 결심했다.
마침 파주에서 조금 더 위쪽, 파주문산 쪽에 임대아파트가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형편에 전세는 애초에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기에
‘임대아파트’라는 말은 그 자체로 기적처럼 들렸다.
게다가 아파트 바로 옆에 초등학교가 있었고,
그 안에는 병설유치원도 있었다.
연이와 빈이, 두 아이에게 동시에 딱 맞는 자리였다.
그건 우리에게 다시 오기 힘든 기회였다.
연이 초등학교 입학 전에 이사를 마쳐야 했기에 우리는 겨울에 짐을 쌌다.
겨울 이사는 정말로…
몸도 마음도 다 시리는 일이었다.
희한하게도 그때부터였다.
우리는 이사를 할 때마다 늘 겨울에만 이사를 했다.
마치 인생의 큰 고비는 항상 가장 추운 계절에만 오는 것처럼.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를 받았을 때는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저 또 하나의 서류처럼 느껴졌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해 봄,
연이가 책가방을 메고 서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비로소 실감이 났다.
책가방은 아이 몸보다 더 커 보였고,
그 가방을 짊어진 연이는 어제까지만 해도
내 곁을 졸졸 따라다니던 아이였는데
그날은 마치 아주 먼 곳으로 떠나는 사람처럼 보였다.
입학식 날,
웅이도 하루 휴가를 냈다.
그날 아침부터 괜히 더 말이 없던 사람.
연이 옷깃을 한 번 더 만져보고,
가방 끈이 어깨에서 흘러내리지는 않는지 몇 번이나 고쳐 매주던 사람.
학교까지 가는 길 내내 웅이는 연이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눈은 계속 연이만 따라다녔다.
아이들이 몰려 있는 교문 앞에서도,
운동장에 줄지어 선 아이들 속에서도,
웅이의 시선은 처음부터 끝까지 연이를 놓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 옆에서 그런 웅이를 몰래 보았다.
말없이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온 마음을 다 내어주는 딸바보 아빠의 등을.
그날, 우리 가족은 그렇게
처음으로 ‘학교’라는 문 앞에 함께 서 있었다.
어린이집에서 늘 잘 적응하던 아이라
‘학교도 잘 다니겠지’
하고 마음으로는 이미 단정 짓고 있었는데,
막상 교실 앞에 선 연이는 한 발도 들어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교실이 너무 커 보여서,
그 모든 것이 연이에게는 처음 마주하는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때 한 여자아이 하나가 연이 앞으로 다가와 조용히 손을 내밀어 주었다.
나는 그 장면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 아이의 작은 손 하나가
그날 연이의 하루를 살렸고,
그날 내 마음도 함께 잡아주었다.
그 친구는 청년이 된 지금까지도 연이와 연락을 주고받는
가까운 친구로 남아 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알았다.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은 ‘곁에 있는 친구’라는 것을.
그리고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
아…
이제 우리가
정말 학부모가 되었구나.
빈이는 연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병설유치원에 다니게 되었다.
처음에는 내가 직접 데려다주고 또 데리러 가고를 반복했지만,
한두 달쯤 지나자 연이가 빈이를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책가방을 둘러멘 연이 옆에 작은 가방 하나를 멘 빈이가
조심조심 따라다니는 모습이 어찌나 기특하던지.
그날부터 연이는 제대로 누나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누나와 동생을 함께 보내는 엄마가 되었다.
아이들은 그렇게
나보다 먼저
자라고 있었다.
PS. 연빈의 여정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