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다시 만난 그 순간의 숨결

다시 만났을 때 비로소 알게 된 것들

by 연빈

연이가 초등학교 1학년에 적응하기 시작하고,
빈이도 병설유치원에 잘 다니던 무렵이었다.
그즈음 나는 집안 경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서
알바라도 해보려고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오후에 일찍 오는 탓에
마땅한 일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그러다 결국 연이는 아파트 상가에 있는 피아노 학원에,
빈이는 바로 아래층 태권도 학원에 다니게 되었다.

나도 틈틈이 부업을 하며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버티던 어느 날.

그날도 평소처럼 연이는 빈이가 학원에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위층 피아노 학원으로 올라갔다고 생각했다.
항상 하던 루틴이라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태권도 관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어머니… 빈이가 아직 안 왔는데요.”

그 말을 듣는 순간등골이 서늘해졌다.

“아니에요, 누나랑 같이 갔어요!”
입으로는 분명하게 대답했지만 가슴에서는 불길함이 쑤욱 올라왔다.

나는 하던 부업도 그대로 던지고 상가로 미친 듯이 뛰어갔다.

도착하자마자 연이를 붙잡고 다그쳤다.

“빈이 데리고 왔지? 들어가는 거 봤지?”

놀란 얼굴의 연이는 울상이 되어 “네… 들어가는 거 봤어요…”라고 말했지만
그 말이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도 않았다.

예전에 연이를 잃어버렸던 일이 번개처럼 스치며 지나가고
나는 숨도 제대로 못 쉬는 채 연이와 함께 아파트 단지를 소리치며 뛰어다녔다.

관장님, 사범님까지 함께 엘리베이터, 계단까지 모든 곳을 다 뒤집어가며 찾았다.


한 20분쯤 흘렀을까.
그러나 나에게는 한 시간처럼 길었다.

그때 사범님께 다시 전화가 왔다.

“어머니! 빈이 찾았어요!!”

그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주저앉을 뻔했다.

숨이 터져 나오듯 안도감이 몰려왔다.

“어디에 있었어요…?”

“화장실에… 다른 형아가 발견했어요.”

상황을 듣고 보니 어이없으면서도 너무나 어린 아이 같아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누나와 헤어진 빈이는 도장에 들어가려는 순간 갑자기 응가가 마려웠다고 한다.
아직 어린 나이이기에 말도 제대로 못 하고 그냥 혼자 화장실로 뛰어간 거다.

그런데 문제는—
화장실에 휴지가 없었다.

나오지도 못하고 누군가 들어올 때까지
그 자리에서 그대로 기다리고 있었던 거다.

만약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면…
생각만 해도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동안 나는 빈이를 찾겠다고 단지를 뛰어다니면서 연이만 다그쳤다.

“좀 더 잘 봤어야지!”
“어디로 갔는지 기억해봐!”

지금 생각하면 그 어린 연이도 자기 책임인 줄 알고 속으로 얼마나 무섭고 떨렸을까.

미안한 마음에 그날 저녁 자고 있는 연이를 꼭 안아주었다.

그날의 헤프닝 이후 빈이는 어디를 가든 꼭 먼저 말하고 가는 습관이 생겼다.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고 빈이도 초등학생이 되었다.

나를 닮아 키도 작은 편이고 몸도 약해 보이는 아이였지만
그만큼 더 귀여움을 많이 받던 아이였다.
12월생이라 또래보다 더 작아 보였지만 그만큼 더 애틋한 아이.

유치원 가방을 멜 때보다 초등학교 가방을 멘 빈이의 뒷모습은
정말이지…
연이 때보다도 더 가방이 커 보였고 더 무거워 보였다.

짠한 마음을 삼키며 나는 또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


그리고 어느 날,
초등학생 학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서게 되는 자리,
‘교통안전 봉사 당번’이 우리에게도 돌아왔다.

아침 공기가 아직 차가운 시간, 나는 형광 조끼를 입고
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아이들을 맞고 있었다.

빈이 담임선생님과는 전화로만 몇 번 이야기를 나눴지
직접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그런데 교통정리를 하고 있던 중,
어떤 젊은 남자분이 빠른 걸음으로 내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어디서 많이 본 것도 아닌데 왠지 나를 향해 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는 멈추어 서서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빈이 어머님이시죠?”

“네…? 네…”
너무 갑작스러워 대답도 더듬고 말았지만
그분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빈이 담임입니다. 빈이랑 너무 닮으셔서 멀리서도 금방 알겠더라고요.”

그러더니 교통 봉사하느라 고생 많았다며 비타민 음료 한 병을 손에 쥐여주고 돌아갔다.

순간, 얼굴이 확 뜨거워졌다.

부끄러움과 묘한 기쁨,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뭉클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날, 나는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아… 빈이는 정말 나를 많이 닮았구나.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그리고 그렇게 또 하나의 계절이 스치듯 지나갔다.
아이들은 자라고,
나는 그 아이들을 따라
또 새로운 마음을 배우며
다음 계절을 맞을 준비를 했다.


PS: 연빈의 여정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 12화11화-가방이 너무 커 보이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