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서 시작된 기적 같은 봄
또 한 계절이 흐르는 동안
연이도, 빈이도 제 자리에서 잘 자라고 있었다.
학교에 적응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도 틈틈이 알바 일을 하며
우리 가족의 삶도 조금씩 안정되어 가는 듯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평온이라는 단어를 꽉 쥐고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단 한 통의 전화로 그 평온이 산산조각이 났다.
웅이가 다니던 가구 회사에서는
가끔 흠집 난 가구를 직원들에게 가져가라고 주곤 했다.
그날도 옷장 하나가 나왔다며 웅이는 자신보다 더 필요한 지인에게 선뜻 준다고 약속했다.
점심 무렵 통화했을 때 웅이의 목소리는 들떠 있었다.
“조금 있다가 가구 가져간대. 좋은 일 하려니까 기분이 좋네~”
그렇게 행복하던 목소리가 두 시간 뒤,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바뀌게 될 줄은
누구도 몰랐다.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가구 받기로 한 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웅이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말에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그제야 웅이가 쓰던 다른 전화기가 하나 더 있다는 걸 떠올렸다.
대리운전을 하면서 사용하던 번호.
그 번호로 전화를 걸자 낯선 목소리가 들렸다.
“웅이… 전화기 맞는데요. 지금 병원 가고 있어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 두 다리는 힘을 잃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병원이라니요?”
전화를 받은 사람은 웅이가 일하던 회사의 사장님이었다.
“손이… 기계에 눌렸어요. 지금 응급차 타고 병원 가는 중입니다.”
그 순간, 세상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당장 달려가고 싶었지만 아이들 올시간이 다 되어서
저녁을 준비해두고 이웃 언니에게 아이들을 부탁한 뒤
저녁 시간이 되어서야 병원으로 향했다.
어디가 어떻게 다쳤는지 알수 없는 상황에서
지하철을 타고 일산까지 가는 한 시간이
마치 몇 시간을 삼킨 듯 길고도 괴로웠다.
도착했을 때, 웅이는 응급수술을 마치고 병실에 누워있던 상태였다.
붕대를 두껍게 감은 오른손,
붓기 때문에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일그러진 얼굴.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내 눈물은 그 자리에서 터졌다.
웅이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침착하게 말했다.
“괜찮아. 많이 안 아파.”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 말이 얼마나 큰 고통 위에 얹힌 말인지.
웅이의 설명은 더욱 마음을 찢었다.
가구를 줄 생각에 너무 들떴던 그는
장갑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는 순간을 피하지 못했다.
중지 절반이 사라진 듯 보였고 바닥에서도 찾을 수 없어
짤린 줄 알고 공포에 휩싸였다고 했다.
그러다 겨우 살점 끝에 매달려 있는 걸 보고 안심했고
사장님이 떨리는 손으로 수건에 싸서 지혈하며 병원으로 달려왔다고.
그때 아픈거보다 손가락이 안보여서 더 무서웠다고.
그 와중에도 웅이가 가장 먼저 한 말은 이거였다.
“연이랑 빈이는… 괜찮지?”
아파 쓰러진 사람이 가장 걱정한 건 아이들이었다.
웅이는 그렇게 한 달간 병원 신세를 졌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놀랄 만큼 늘 웃으며 버텼다.
“이렇게 큰 부상인데도
이렇게 밝은 환자는 처음 봅니다.”
그 말에 나는 또 울컥했다.
그 한 달 동안 웅이는 오히려 살도 오르고 얼굴빛도 좋아졌다.
평소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갑작스런 아빠의 부재에
밤마다 “아빠 언제 와요…?” 하고 묻던 아이들.
일요일 면회 날,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아이들이 웅이 품으로 달려가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미어진다.
오른손을 제대로 쓸 수 없어
젓가락도 들지 못하는 아빠를 보며 연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빠, 내가 먹여줄게요.”
작은 손으로 숟가락을 쥐고
한 번씩 떠서 웅이 입가로 가져다주던 연이.
웅이는 그 모습이 이쁘고 고마워 아픔도 잊고
내내 웃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한 달 뒤 퇴원했지만 웅이는 바로 일을 할 수 없었다.
사장님은 처음엔 복귀를 이야기했으나
산재 처리 비용 등이 얽히며 결국 받아주지 못했다.
장애 판정을 받을 수도 있다는 말이 있었지만
심사는 까다롭고 그렇게 되면 취업이 어려워질까 두려워 결국 포기했다.
사장님이 위로금으로 건넨 돈으로 몇 달을 버텼다.
이제 좀 숨통이 트이나 싶던 순간,
또다시 겨울바람처럼 매서운 어려움이 우리에게 몰아쳤다.
웅이가 다친 그 계절은 유난히 춥고 길었던 겨울이었다.
눈이 잦아들 틈도 없이 쏟아지던 날들처럼
우리의 마음도 얼어붙을 만큼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웅이는 재활을 성실히 버텼다.
무너진 손끝에서 다시 힘이 돌아오듯
웅이는 묵묵히, 하루하루를 견뎠다.
그리고 결국, 다음 해 봄.
긴 겨울을 건너온 웅이는 다른 가구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다.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다른 일 하면 좋지 않을까…?”
그러자 웅이는 언제나처럼
나를 안심시키듯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이제 더 조심하면 돼.”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왠지 모르게 또 울컥하고 말았다.
추운 겨울 한복판에서 크게 다쳤던 사람이
이렇게 다시 따뜻한 봄으로 걸어 나가는 걸 보고 있으니
마치 우리 가족도 함께 계절을 넘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듯했다.
그날처럼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던 순간에도
우리는 또 한 번 계절을 건너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고 있었다.
PS. 연빈의 여정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