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한장 그림일기
장마가 시작되고 잠시 비가 주춤하던 오후, 학교 선배와 오랜만에 만남을 가졌다. 선배와 나는 평소 자주 보진 못해도 안부를 물으며 친하게 지내던 선배였다. 우리는 일민미술관 카페에서 만나 함께 수다를 떨며 그림을 그렸다. 함께 그림을 그리던 중 선배의 핸드폰이 울렸다. 한 친구가 지인에게 로고 디자인 의뢰를 받아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지 몰라 도움을 청한다는 전화였다. 선배는 나를 보며 함께 조언해주기를 부탁했고, 주로 외주작업을 맡아 프리랜서로 일을 하는 나는 내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리고 ’많이 막막하고 어려웠는데 정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전해 듣고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우리의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외주 작업을 받아 일을 할 때 생겼던 여러 해프닝들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그러던 중 선배가 이런 얘기를 했다.
‘나는 한창 일할 때, 전화받는 게 무서웠던 적이 있었어.’ 조금 갑작스러운 이야기였지만 충분히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왜냐하면 전화받는 것이 무서웠다는 이야기가 얼마 전 나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전화가 오면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겁부터 나는 거야. 꼭 죄를 지어서 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정말 나의 모습과 같은 모습이었다. 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했었지만 공감을 해주는 사람이 얼마 없었는데, 오묘하게 반가운 기분도 들었다.
‘선배, 그거 혹시 대인기피증 같은 거 아닐까요? 저도 얼마 전에 그런 적이 있었거든요. 전화가 오면 받기 싫고 일부러 끊어버리고 아는 사람이라도 무조건 문자로만 대화를 했었어요. 왜 그럴까 생각을 몇 번 해봤었는데, 작업을 하면서 전화를 통해 주문을 받고, 수정사항을 전달받는데, 끝나지 않은 프로젝트에 시달리면서 전화가 오면 또 수정인가 뭐가 잘못된 건가 하는 생각에 생긴 공포증 같은 게 아닐까 생각 들더라고요.’
점점 심해졌던 이 증상은 전화를 기피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존감이 낮아지고, 큰 짐을 메고 있는 듯이 몸까지 무겁게 만들곤 했었다. 비록 이 대화의 끝에 서로 이 증상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마 우리는 각자 그 당시에 전화를 기피하고 점점 시들어가는 삶을 극복하는 방법을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그저 상황을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거나, 모든 것을 잠시 멈추는 것.
다만, 우리는 그때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내려놓고 멈추는 것에 대한 자신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