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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하 Feb 06. 2018

다시, 제주

제주도 한 달 살기




다시, 제주






“다녀왔습니다.”
늦은 저녁, 집으로 들어서며 아무도 없는 어두운 공기에 인사를 건넨다. 한 달이 넘게 유럽을 바쁘게 여행하고 집으로 돌아오니, 어색함과 함께 곰팡이처럼 번져있는 외로움이 묻어나는 것 같다.
어제까지 여행의 길에 있었지만, 지난 여행들이 모두 무뎌진 일상처럼 느껴졌다. 한 달간의 유럽여행은 즐거운 일도 많았지만 바쁘게 일정을 소화하고, 취재를 다니고, 일처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적으며 다녔다. 다이어리에 하루를 끄적이며 누웠던 숙소 침대에서는 ‘이건 여행이 아니라 출장이었어.’라는 생각을 하며 잠들었던 밤도 많았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나는 다시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몇 년 전 자전거를 타며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 제주도로 다시 떠나기로 했다. 이번엔 조금 더 넉넉하고 여유롭게. 유럽에서 지낸 날과 같은 한 달로 일정을 잡고, 모든 스케줄을 취소했다. 한 달 동안 그림도 글도 하고 싶을 때만 하기로 스스로 약속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제주로 떠난다.




한 달 동안 제주도에 있으려면 장기숙박이 가능한 숙소가 필요했다. 나처럼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하는 사람이 많아져서 한 달 단위로 집을 빌려주는 곳도 많았다. 하지만 그만큼 가격도 부담이 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고, 제주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살기에는 유럽에서의 지출이 너무 컸다. 그렇게 여러 곳을 알아보던 중 ‘게스트하우스 스텝’을 알게 되었다. 한 달 동안 일을 할 수도 있었고, 숙식을 제공해주고, 일을 한 날에는 큰 돈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제주를 여행할 수 있는 일당도 나왔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게스트하우스에 연락을 했고, 통장의 돈을 긁어모아 이틀 뒤에 떠나는 비행기 티켓을 구매했다.







이제 여행은 질렸다고 생각했고, 한동안은 집에 머무를 줄 알았는데. 다시 두근거리는 내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왔다. 아마 제주라서 그랬던 것일지도 모른다.







잘 부탁 드립니다.





내가 스텝으로 지낼 게스트하우스는 모슬포항에 있었다. 늦은 저녁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찾고 버스를 탔다. 제주에 가면 나는 같은 한국이지만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관광객처럼 변해버린다. 낯선 땅이라는 기분에 긴장을 바짝 하고 비행기에서부터 한숨도 못 자고, 버스에서는 짐을 꼭 붙들고 핸드폰으로 내려야 할 정거장을 놓치지 않도록 버스 방송에 귀를 쫑긋 세우고 앉아있었다.
밤길을 한참 달려 모슬포항에 도착했다. 게스트하우스는 문을 열면 세 걸음 앞에 바다가 있는 위치에 있었다.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가기 전, 조금 망설여졌다. ‘나, 잘 할 수 있을까?’ 길지는 않지만 여행자로써는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짧은 것도 아니다. 그 기간 동안 해보지 않은 일을 해보고, 충분히 충전하고 돌아올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은 쉴 새 없이 두근거리고 있는 마음만으로 충분했다. 힘차게 문을 열고 게스트하우스로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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