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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사니즘에 이골이 난 돌멩이의 잃어버린 일기장

023. 외부 출장 후기

by 한량돌

#함께하면 더 좋을 플레이리스트

https://www.youtube.com/watch?v=1dyHt8PcBps

<lonely hour - late night..>





외부 판매 행사가 한창이던 지난 주말, 현장에서 힘을 보태지는 못했지만 다행스럽게도 탄핵소추안은 가결되었다.

그릇 살 사람들이 다 광화문에 있었던 걸까? 행사장에서의 판매 성과가 썩 만족스럽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뭐 그릇 파는 게 중요하랴. 역시 해냈다.



외부 행사가 끝난 다음날.

널브러진 비품과 그릇 뒷정리를 해야 하고 밀린 택배도 보내야 하기 때문에

지난주에 이어 쉬는 날 없이 다시 한 주를 시작한다.

그나마 푸바오에게 양해를 구하고 한 시간 늦게 출근하겠다고 했다.


그랬음에도 오늘도 역시 지각. (난 몇 살을 더 먹어야 늦잠을 안 잘까?)

으으. 신음소리를 내며 눈을 뜬다.

카피 탈모약과 종합비타민, 밀크시슬을 입에 털어 넣는다.

늘어진 허리를 달래며 네 발자국 걸어 화장실에 도달한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나와서 대충 걸어놓은 옷을 주섬주섬 주워 입는다.

어휴 추워..

잔발을 치며 차로 달려가 시동을 건다. *핸따(*핸들 열선)를 켜고 잠시 히터를 끈다. 엔진 열이 올라야 따뜻하니까.

핸드폰은 챙겼나? 아뿔싸. 지난밤 핸드폰을 충전하는 걸 깜빡했다.

자기 전에 유튜브 켜는 건 습관이 되었어도 충전하는 건 자꾸 까먹네.

드르렁드르 코 골던 그 새벽 내 혼자 열심히 떠들었을 핸드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다음 동영상 자동 재생이라도 꺼둬야지..


아무튼 내 상태도 핸드폰 배터리처럼 노랗고 빨간 불로 깜빡깜빡.

아우.. 아직 30대 초반인데 벌써 회복이 안 되네.



안 늦은 척 작업장으로 차를 댄다. 푸바오 차는 없다. 역시 푸바오도 집에 쓰러져있는가 보다.


코딩된 NPC처럼 오늘도 문 앞에서 아침 담배를 즐기고 있는 맥가이버. 오늘은 영하 4도 던데, 여전히 외투는 걸치지 않는다. 그가 웃으며 반긴다.


- 많이 팔았어? 허허.


안으로 들어가니 꽃분할모님이 보인다. 안녕하세요.


- 고생 많았어 돌멩아. 어서 와.


30분을 늦었지만 개선장군이 된 기분이다.


행사 물품들 뒷정리하고 차후 출고 준비를 하느라 하루종일 온 작업장 식구들이 달라붙었다.

이번주는 택배 폭풍을 견뎌내야 한다.

나 대신 일해줄 젊고 힘 좋고 유능한 출고 관리자는 언제쯤 등장하려나..


도 망 치 고 싶 다 .





행사장에서 5일 동안 느낀 단상들을 적어본다.

[유전자 vs 시간의 힘]

아침부터 저녁까지 매대를 지키니 좋든 싫든 사람 구경을 하게 된다.

이번 행사는 이전보다 덜 바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눈에 더욱 많이 들어왔다.

가장 처음 느낀 건 유전자의 힘은 역시라는 것. 가족은 역시 가족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저렇게 똑같이 생겼을까 웃음이 나올 뻔한 적도 많다.


나와 닮은 생명을 책임진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은사님께서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 했는데.

내 새끼에게 해를 가한 자는 세상 끝까지 쫓아가 어떤 수를 써서라도 가만두지 않을 거라고 했는데.

나도 그런 감정을 느끼게 될까?


나를 좀 오래 봤던 어른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너는 딸 낳으면 큰 일 날 것 같다.'

그려. 뭔가에 쉽게 빠지기도 하고, 뭔가에 꽂히면 유난스럽게 열성적인 양은냄비 같은 나는 장차 *헬기 아빠가 될지도 모르겠다. (근데 엄마 어딨니? 그만 숨고 좀 나와라. 장난도 정도껏 해야지.)

*(https://namu.wiki/w/%ED%97%AC%EB%A6%AC%EC%BD%A5%ED%84%B0%20%EB%B6%80%EB%AA%A8)


더 신기한 건 누가 봐도 부부, 연인인 사람으로 보이는데 서로 참 닮았다는 것이다.

단순히 얼굴이 닮았다기보다는 그 사람에게 풍기는 기운? 느낌? 이 닮았달까?

사랑의 시간이 쌓이고 쌓여서, 서로를 거울처럼 바라보며 상대와 나의 그 중간 어딘가로 조금씩 맞춰져 가는 것일까?

말투, 식성, 사고방식 따위가 닮아가듯이 그에 맞게 외형도 변하는 걸까?


다음 느낀 단상을 보자.

외형은 물론, 정신적인 것 역시 후천적으로 닮아가는 게 분명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커플을 만났다.




[큰 손이지만 진상입니다]

신혼부부? 커플? 한 쌍이 우리 매대를 찾아왔다. 풍기는 느낌이 굉장히 부부 같았다.

20대 중후반?으로 되게 어려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들을 훑으니 명품 잘 모르는 나도 알 것 같은 반짝 빛나는 차림새다.

우리 그릇 보러 굳이 여기까지 왔다는 말에 감사를 느꼈다. 사람이 붐비는 때였지만 더 신경 써서 케어를 했다.


지랄의 시작은 남자였다. 거의 뭐 30초에 한 번씩 여기 그릇 너무 사고 싶었다고 많이 살 건데 서비스 좀 많이 달라고. (여가 노래방이냐??)

멀리서 왔다고 오래 걸렸다고 할인 더 해주면 안 되냐고. (삼성동이 머냐? 여기 삼성동이잖아, 나는 새벽같이 한 시간 반 달려서 여기 이래 서있다.)

가식 웃음을 지으며 신경 써드리겠다고 하니 만족스러워하며 여자가 그릇을 고르는 동안 말 잘 듣는 강아지처럼 구석으로 가 핸드폰을 하더라.


여자의 겉모습은 남자보다 더 화려했다. 어딘가 부자연스럽지만 부티가 나는 사람.

나는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15분 동안 이 여자를 따라다니며 구매를 도왔다.

매대는 여전히 혼잡스러운 가운데 그들이 그릇들을 다 고르고 계산할 때가 되었다.


- 우리 이만큼 사는데 그릇 좀 더 넣어주시죠?

- 할인 좀 더 해주시죠?

- 이거 떨어져도 안 깨지죠?


(으아ㅏ아아악!!!!!)


내가 느끼기엔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지시였지, 부탁의 뉘앙스가 아니었다. 특권의식 같은 거야 뭐야.

시간이 지날수록 이 사람들에게서 메스꺼운 표독스러움(?)이 느껴졌다.

있는 놈이 더 한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절약해서 돈이 많은 건지 돈 많은 김에 절약하는 건지 아주..

똑같은 놈들끼리 만나는 건가. 만나서 똑같이 꼴 보기 싫어지는 건가..


물론 그 자리에서 70만 원어치를 결제하고 갔기에 푸바오에게는 만족스러운 고객이었겠다.



사실 이런 행사장에 오면 사은품을 요구하거나 추가 할인을 요구하는 사람이 적은 편은 아니다.


자신이 여기까지 당도한 수고스러움을 무기로 하여 지나치게 요구하는 손님에게는 푸바오도 '절대 그렇게는 안 된다.'라고 답한다.

반면 작가님 너무 팬이라며 수줍게 인사하는 손님에게는 시원시원하게 그릇을 선물한다.


내가 이렇게 퍼줘도 되는 거냐고 묻자 푸바오는 말한다.


- 사바사.




[호의와 회의]

이게 하이라이트다. 이 세상엔 별의별 인간이 다 있다. 정말.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언젠가 두 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편의상 부들녀와 종지녀라 칭하겠다.) 둘 다 이전부터 우리 그릇을 쓰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오늘은 부들녀가 그릇을 사러 왔다고 했다. 여기에 우리가 오길 기다렸다며.

그녀는 우리 그릇을 40점 이상을 가지고 있는 헤비유저였다.


거리가 멀지 않았기에 그녀들이 그릇을 고르며 나누는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종지녀가 말했다.


- 이 작은 그릇 말야. 우리 신랑이 깨 먹어버려서 다시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몇 분 정도 지났을까 부들녀가 그릇들을 다 골라왔다. 그저 계산을 해주고 포장을 해서 보내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그릇들을 모두 포장한 뒤, 종지녀의 신랑이 깨 먹었다는 작은 그릇도 하나 꺼내어 따로 포장을 했다.

마침 푸바오도 자리를 비웠겠다, 오지랖이 발동했던 것이다.


그간 예쁘게 그릇을 써주고 이번에도 구매해 준 '<부들녀>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같이 온 친구이자 또 다른 우리 고객이기도 한 종지녀에게 선물이랍시고 그릇을 그냥 주었다. (정말 얼마 안 하는 가격대였다.)


젠장, 그게 화근이었다.



다음날. 행사장의 하루가 다시 시작되고 오후 세 시쯤 되었나.

멀리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부들녀가 다가왔다. 나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부들녀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내 예상을 너무나 벗어난 것이었다.


- 저 이거 환불하려고요..


나는 놀라서 왜 그러시냐, 그릇에 문제가 있었느냐고 물었다.

그때부터 부들녀는 이름 그대로 부들부들 떨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 아니, 별 건 아닌데.. 그냥 환불해 주세요.


갑작스러운 상황에 푸바오도 놀라 다가왔다. 부들녀는 눈이 벌게지며 속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 여기 어떤 직원 분이 그러시던데.. 이 종지는 당신 것이 아니라 같이 온 친구 것이라며 공짜로 건네준 게 너무 화가 나서요. 억울한 마음에 잠을 못 자겠어서요.

제가 몇 년 동안 여기 그릇 좋아해서 지금까지 모은 게 몇 갠데.. 저는 지금까지 그런 혜택을 받은 적도 없는데.. 앞으로 이 그릇들 볼 때마다 너무 기분이 안 좋을 것 같아서요.. 그냥 환불해 주세요.


아.. 소문난 띠껍쟁이인 나는 머리가 어질 해져 머리를 조아리며 답했다.


- 제가 그랬습니다. 불편을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그런 뜻이 아니고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에.. 오해가 있으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잠깐의 실랑이가 이어지고 푸바오는 죄송하다며 환불해 드릴 테니 구매했던 그릇들은 그냥 받아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렇게 푸바오는 내 오지랖으로 몇십만 원어치 손해를 봤다.


그런 불편한 마음이랑 별 라이또 같은 사람이랑 지금 구질구질한 내 신세가 짜증이 나서 몇 시간을 찌푸린 표정으로 있게 됐다.


푸바오는 그런 나를 더 참지 못했는지 너 화났니? 라며 일갈! 을 했다.

그리곤 감정 정리를 하고 오라며 나가서 담배를 피우고 오라고 했다.

후. 차분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자리에 돌아와서 그날 마무리는 잘 지었으나, 작업장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는 문득 슬퍼졌다.


내가 그 인간을 이해 못 하는 이유가 뭘까..

앞으론 함부로 호의를 베풀면 안 되겠다. 누군가는 불편해 할 수도 있는 거니까..

내 생각과 다른 사람의 생각은 이렇게나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거구나..



촌구석에서 쳇바퀴 같은 삶을 살다가 오랜만에 고객 앞에 서서 그릇 파는 시간을 보냈다.


어찌 보면 외부 행사는 기쁨의 시간이기도 하다.

먼지 풀풀 나는 작업장에서 그릇들과 부대끼며 잃어버렸던, 우리 그릇의 가치를 다시금 깨닫는 순간들.

우리 그릇 사진들을 일일이 캡처해 온 걸 보며 상상으로만 그렸던 자신의 식탁을 만들기 위해 찾아주는 분들도 고맙고

'귀엽다.', '예쁘다.', '너무 괜찮다.'며 우리 그릇을 보고 긍정적인 감정을 표하는 사람들에게도 감사하다.

고객들의 손에 들려 저마다의 식탁으로 가는 그릇들 중 분명히 내 손을 탄 아이들이 있을 텐데.


도예 명장이라도 된 양 뿌듯함이 느껴지고,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사람들을 웃음 짓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느끼기도 한다.



이렇듯 지금의 삶에서 새로운 자극이 되기도 하지만 1~2주간의 고된 일정을 소화한다는 게 꽤 부담스럽다.

행사 몇 주 전부터 준비 과정에서 꽤 품이 많이 들고, 밖에 나가고 나면 작업장에서 내 업무를 대신해줄 사람도 지금은 없기에 일이 밀리게 된다.


행사장에서는 어떤가. 평소 사람 많은 마트도 힘들어하는 놈인데, 여기저기 넘쳐나는 물건들과 숨 막히는 군중들 앞에서 웃음 지으며 그릇을 파는 것도 스트레스다.



끝나고 현장 정리하는 건 어찌나 정신이 없고 어지러운지.. 마구잡이로 들어오며 뿜어대는 1톤 트럭의 매연 하며.. 행사장 내의 백여 개가 넘는 업체들이 온갖 소음과 먼지를 내며 정신없이 짐을 싸는 걸 보면 아 ~_~ 진짜 토할 것 같다.

몇 번의 외부 행사를 겪으며 경험은 쌓였지만 아직 스스로 이 과정이 체계화되지 않아서 항상 정신이 없는 것 같기도 해.

(물론 푸바오가 따로 수당을 챙겨주기에 이 시기는 늘 쪼들리는 내 지갑에 도움이 되기도 하다. 안 받고 안 할래)


아무튼.. 솔직히 너무 싫고 힘들다.

난 그냥 촌구석에 박혀서 논이나 바라보며 흙이나 빚을 줄 알았는데

2 ~ 3개월에 한 번 작업장 밖으로 나와 그릇을 팔고, 평소에는 공동구매 행사로 머리 박고 손 터지며 택배를 싸는..

이런 식이라면 오래 일을 할 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도자기로 돈을 벌려면 이런 방법밖에는 없는 걸까..


.... 그래 나도 안다고. 일 시작한 지 1년도 안 되었고 앞으로의 근무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거.

아직도 내가 배워야 할 기술은 차고 넘치고, 겪어볼 경험이 아직도 많다는 거.

뭘 어쩌겠는가.

내가 어디로 가겠는가..

몸 관리 정신 관리 잘하면서 하루하루 잘 살아가 봐야지.


고민이 깊어지는 밤.

좀 더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답은 결국 다시 하나로 귀결된다.

열심히, 꾸준히, 도전적으로 글을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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