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2. 안녕하세요 000 출고팀입니다!
#함께하면 더 좋을 플레이리스트
https://www.youtube.com/watch?v=ldDtjQkLsss
<Blissful Dreams � [sleep lofi] - Lofi Girl>
새로운 직원이 들어오셨다.
닉네임은 일단 온화할모님. 조용하고 서글한 외할머니 느낌이랄까.. 꽃분할모님과 동갑이라는데 성격은 정반대이다.
이 지역 도자기 바닥은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이라, 오랫동안 요업에 종사하신 맥주 싸모님도 아는 분이라고 했다. 싸모님께 얘기를 들어보니 차분하시고 유하신 분이라고 했다. 이제 출근하신 지 이틀 정도 되었는데, 역시 듣던 대로 둥글둥글한 아우라가 느껴진다.
한 달은 되어봐야 본 성격이 나오시겠지만 일단은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인다.
반대로 출고 업무에는 지장이 생겼다.
출고 업무를 담당하시던 초롬이모님이 저번주를 끝으로 그만두시게 된 것이다.
이모님은 택배 업무 외에 새로 나온 상품 검수도 맡고 계셨는데
갈수록 작업장 출고량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자연스레 생산량도 많아지니 부담감이 배로 커지셨을 것이다.
(이건 혼자서 할 일이 아닌 거 같다고 푸바오에게 그렇게 건의했거늘..)
그리고..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만두라는 무언의 눈초리 역시 받으셨을 거다.
푸바오에게 듣는 아쉬운 소리와 돌멩 실장이 내뱉는 한숨 소리.
다른 동료들에게서 듣는 고깝고 날카로운 말들이 그녀를 더욱 힘들게 했을 것이다.
물론 아니 뗀 굴둑에 연기가 나겠는가.
그녀는 가냘펐고, 독하지 못했다.
그 일들을 맡기에 적합한 분이 아니었다.
그녀가 택배 출고를 맡은 지 몇 개월이 지났음에도
그릇 종류나 수량을 잘못 보내는 오배송 CS가 주에 두세 번은 꼭 발생했다.
CS 담당 매니저인 왈가닥 매니저님은 물론이요, 양해를 구하고 다시 출고 준비를 해야 하는 나와 다시 포장을 하는 이모님, 또 사장인 푸바오에게도 부담스러운 문제였다. 2번, 3번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하는 기운 빠지는 상황이 늘어갔다.
어느 날 다 같이 둘러앉은 점심 식사 자리에서 내가 이런 차가운 소리를 한 적이 있다.
CCTV로 택배 포장하는 모습 손만 딱 줌인 녹화해서 CS 고객에게 제공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잘잘못 따지자는 게 아니라.. 작업장 안에서 서로의 신용이 흔들리니까 이거 문제 아니냐고.. (나 녀석 이럴 때 참 대문자 T야. 언제부터 이렇게 차게 식었니..)
그래서 그런 걸까. 퇴사 직전에는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으셨는지 포장을 하면서 직접 사진을 찍으시더라..
이러한 오배송 실수가 그녀의 퇴사를 만든 주 요인이 되었지만 아쉬운 점은 또 있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A급 일꾼이라면 꼭 함양해야 할 '알잘딱깔센'(알아서, 잘, 딱, 깔끔하게, 센스 있게)이 부족한 분이었다.
그녀는 업무 상 강조했던 내용을 며칠만 지나면 금방 잊어버리셨으며, (내 실수로) 업무에 관련된 내용 전달이 세세하지 않기라도 하면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사고가 터졌다.
그리고 그녀는 그리 무겁지 않은 택배 상자나 비품 따위도 꼭 누군가가 옮겨주길 바랐다.
다른 이들이 혼자서도 어떻게든 해내는 사소한 일에도 어려움을 표하는 그녀였기에 뒤에서 지원해야 할 상황이 참 많았다.
쉽게 말해 손이 많이 간다는 뜻이겠지..
누군가에게 기분 나쁜 말일 수 있지만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이 세상 모든 엄마는 강하다는데, 사실 모두가 강한 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
푸바오가 직접 데려온 분이었지만 종국에는 그 역시 '차라리 그만둔다고 했으면 좋겠다.'며 내게 넋두리를 했다.
이모님의 마지막 근무 날이 되었다.
내가 그녀의 퇴사에 영향을 준 것 같다는 생각에 퇴근하시는 길 작별 인사를 드리기가 참 껄끄러웠다.
그러나 이모님이 먼저 내게 와서는 실장님 고생 많으셨다고 잘 지내시라는 인사에 마음이 빠글빠글 해지기도 했다.
초롬이모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모님의 내일을 응원하겠습니다.......!
아무튼 그리하여 내가 입사 초기에 했던 출고 업무를 다시 맡게 되었다는 것이다.
도자기를 배우고 싶어 이곳을 찾아왔지만 남다른 손재주도, 경력도 없었기에
도자기 제작과는 거리가 먼 업무지만 업계에서 일할 수 있는 것에 감사했고,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견디며 나름의 경력을 쌓았다.
이전에는 택배 송장이 어떻게 뽑아지는지도 몰랐는데.
뭐 그냥 잘 제거하고 버리면 되는 스티커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을 뿐.
그렇게 계절이 두 번 바뀌는 동안 나는 귀여운 짬을 쌓으며
출고 업무에 관한 고객 만족도를 서서히 끌어올려갔다.
고질적으로 발생하던 파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포장 관련 기계를 도입하기도 했고 포장 방법을 이리저리 바꿔가면서 안정성을 개선했다.
라식으로 재 탄생한 눈을 이용한 칼 같은 A급 검수로 못난이 그릇이 고객에게 전달되는 일도 획기적으로 줄여나갔다.
최근에는 브랜드 정체성이 담긴 향기를 심도 있게 선정해 그 향기까지 박스에 함께 담아 보내고 있다. 박스를 열었을 때 긍정적인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물론 향수 뿌리고 택배 싸지 말라고 항의하는 고객도 있었다. 약간의 오해가 있으셔서.. 향수가 아니라 우리 브랜드 시그니처 향이지만.. 뭐 어쩌겠는가.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 거니까.)
택배 전산 시스템을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법들도 익혔다.
'옥뮤다 삼각지대'라고 불리는 옥천 허브(*교통 편의성이 좋은 곳에 위치한 지역에 있는 중간 물류센터)나 곤지암 허브의 담당자와 통화하여 우리 아이들(?)이 왜 오늘 고객에게 도착하지 않은 건지 정황을 파악하고 그 상황을 고객에게 전달하는 수준이 되었다.
이제는 나름 담당자의 책무를 다 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일과가 끝난 밤에 수련하는 물레 실력은 참으로 더디게 늘었고,
점점 그릇을 만드는 것에 멀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누가 보면 마음에 없는 일 몇 년은 한 줄 알겠네!) 별 수 없이 한숨이 늘어만 갔다.
푸바오에게도 그 부정적인 마음이 가닿았는지 새로운 택배 담당 직원(그게 바로 초롬이모님)을 모셔와서 몇 주 간의 인수인계 끝에 완전히 업무를 넘겼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가마 재기(*각종 후처리된 기물을 가마에 넣어 굽는 일)에 참여하기도 하고
별 볼일 없어 보이는 흙덩이를 그릇 모양으로 만드는 기초적인 것들을 배우며 나름 신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지만..
그런데 이제 뭐 어쩌겠는가. 상황이 이러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야지.
(이제 징징이를 시작해 보겠다. 혹여 누가 본 대도 뭐 어쩌겠는가. 남이 알아줄 일 없는 나름의 애환을 이렇게나마 적어내는 게 내 건전한 해소법이 된 것을.)
도자기 택배를 포장하다 보면 겪는 고통을 적어보자면,
1. 손의 고통
이곳저곳에 긁히며 손가락 끝이 아파온다. 특히 양손 엄지와 검지가 큰 타격을 받는다. 심하면 손톱이 벌어질 때도 있다.
물론? 장갑을 끼고 포장을 하지만 엄지와 검지는 트여있는 게 일이 수월하다. 그릇의 굽(*그릇 밑바닥의 돌출된 부분)이 매끄럽게 처리가 잘 되었는지 맨 살로 확인해야 하고, 출고 전에 그릇과 박스에 이런저런 스티커를 붙여야 하는 공정이 있기 때문이다.
또 그릇이 서로 부딪치는 것을 막고 외부 충격을 완화시켜 줄 완충제를 박스에 꽉꽉 채워야 해서 손목과 손 끝이 저린다. 장갑 끼는 것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아 다른 적절한 해결법이 필요할 것 같다.
2. 하체의 고통
발바닥과 무릎이 저린다. 그렇다고 중간중간 앉아서 하기에는 좀 비효율적이다. 다양한 종류의 그릇을 찾아와서 검수를 해야 하고 (우리 브랜드 그릇 종류는 12월 현재 기준 99가지나 된다.. 이거 문제 있는 거 아니냐고) 박스 포장 마무리를 할 때 힘 있게 테이프질을 해야 하기 때문에 죈 종일 서있을 수밖에 없다.
이건 중간중간 잠깐씩 쉬면서 몸을 잘 풀어줘야겠다.. 는 개뿔! 언제 쉬고 언제 다 포장하냐!
3. 눈과 호흡기의 고통
택배 포장법을 개선하면서 모든 포장재와 완충재, 테이프까지 종이 재질로 바꿨다. 나름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여 친환경을 표방하며 개선한 점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먼지가 엄청난다. 호흡기가 예민한 사람은 마스크를 쓰지 않을 수가 없다. 한 주 동안 열심히 택배를 포장하고 나면 눈이 따갑고 목이 컬컬- 해진다.
이건 환기를 잘 시키고 마스크를 착용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겠지..만 개뿔! 요즘은 옆에 난로를 켜놔도 추워죽겄는디.. (현재 작업장에서는 반 야외에서 출고 업무를 하고 있다.)
4. 기타 심적 고통
유난히 출고량이 많은 날이 있다.
각종 도매 거래 업체에서 적지 않은 수량을 주문할 때가 있기도 하고, 푸바오와 홍보팀이 열심히 뛴 덕에 고객 발 출고량이 급증하는 시기도 있다.
오늘 꼭 물건이 필요하다는 거래처와 그릇을 기다리는 고객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정신을 집중하고 빠르게 몸을 움직여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날은 꼭 담당 택배 기사님이 일찍 방문하신다. (예상치 못한 시간 밖에서 들리는 택배 탑차의 후진 소리를 들으면 느껴지는 그 압박감이란..)
물론 정말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집하(*택배 기사님이 포장된 택배를 수거하는 것) 시간을 늦춰달라고 하기도 하지만 그분도 그의 스케줄과 사정이 있을진대 어찌 다 맞춰주라 요구하겠는가. 다른 식구들에게 포장을 도와달라고 하면서 나는 죽어라 싸야지.
이런 상황을 몇 번 겪다 보면 비교적 여유가 있는 날 역시 몸과 마음이 급해지게 된다.
(일러라 일러라 일름보 모드로 글을 써서 과장된 부분이 많긴 하다.
출고량이 많으면 당연히 식구들이 도와주고
당일 출고가 어려울 때는 푸바오가 어떻게든 출고일을 조정한다.
반 야외에서 일하는 건 요즘은 좀 춥긴 하지만 못 할 정도는 아니다.)
하여간..
벌써 새벽 2시가 다 되어간다.
내일부터 외부 출장 행사가 있어서 미리 가서 준비한다고 귀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따 5시에는 일어나서 출발해야 할 텐데 말야.
그런데 어제도 일기를 못 써서 불편한 마음에 이 악물고 끝을 맺어보았다.
좀 피곤하면 뭐 어때. 이러나저러나 피곤한 건 마찬가지인 것을..
글 끝맺음을 해내어 오히려 좋다.
내일도 열심히 현장에서 포장해야 하니
얼른 씻고 자자.
고생 많았습니다.
내일도 파이팅입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