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 아니 대박 그거 들었어???
- 호들갑은.. 뭔데?
#함께하면 더 좋을 플레이리스트
https://www.youtube.com/watch?v=6Tf6WwRCkmw
<류이치 사카모토의 모든 순간 : 오퍼스 l playlist - emof 이모프>
아무튼 그렇단다.
시간이 빨리 간다는 말, 지겹도록 많이 하고 많이 듣기도 하지만
달력에 더 이상 넘길 장이 남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이 오면
'아, 시간 정말 빠르구나.'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처음 살아보는 내 인생. 조급하게 가고 싶진 않은데
아직 차분하게 걷는 법을 몰라서일까.
내 시간도 차~암 빠르게 흐른다..
작업장에서 일을 시작한 첫 주가 생각난다.
실수하지 않고 좋은 모습을 보이려 바짝 긴장했던 그때.
살면서 처음 해보는 일들을 하면서 힘든지도 모르게 주중이 흘렀다.
한창 이사 온 지역에서의 생활을 적응한다고 더 시간 가는 줄 몰랐는지도.
따뜻한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더 오래 걸렸을 새로운 지역으로의 이주.
한동안 냉장고가 없어 베란다에 아이스박스를 두고 떠나기 전 할머니가 싸준 김치를 보관하고
전자레인지도 없어서 방바닥으로 데운 편의점 도시락에 소주를 곁들이던 저녁 시간.
(왜 이렇게 궁상맞은 거냐.)
그러다 금요일이 되고 퇴근할 시간이 되니 긴장했던 것들이 스르륵 풀리며 몸살 기운이 펑펑 터졌다.
때는 2월 초, 코 끝이 시리던 겨울이라 혹시 독감이나 코로나에 걸린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그게 아니면 단순 피로인지?
점점 허리를 제대로 펼 수 없을 정도로 서 있기도 버거워서 퇴근 시간을 조금 남기고 푸바오에게 말했다.
- 저 죄송한데 병원에 좀..
체력이 좋은 게 장점이라며 면접 때 당당히 외쳤던 내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푸바오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웃으며 어서 가보라고 했고, 잘하고 있으니 몸 잘 살피라 말해주었다.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는데 다행히 코로나나 독감은 아니었다.
그냥 단순 과로 같다고, 피곤해서 그런 것 같다는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약을 타고 힘나는 주사(?)도 한 방 맞았다.
그 날은 마침 고등학교 친구들과 오랜만에 모임 약속이 있던 날이었다.
코로나라면 진짜 그냥 집에서 이불 뒤집고 쓰러져있어야겠다고 생각 했는데 그런 게 아니라면
그래도 약속이니 가는 것이 낫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혼자 있으면 상태가 더 안 좋아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무것도 못 먹을 것 같이 속이 찌그러져 있었지만
약은 먹어야 하기에 포카리를 한 통 사 마시며 친구들에게로 향했다.
모임 장소는 한 친구의 가족이 운영하시는 캠핑장.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과 인사를 대충 하고 '미안하다.' 한 마디 던지고는 절절 끓는 방 안에 들어가 쓰러졌다.
술 좋아하고 제일 시끄러운 놈이 송장처럼 등장하니 친구들도 걱정스러웠는지 일단 편히 쉬라고 했다.
그렇게 눈만 껌뻑이며 누워 숨 쉬고 있다가 문득
차가운 집에서 혼자 우울하게 누워있는 것보다는
밖에 못생긴 오징어들 웃음소리를 들으며
공기 좋은 곳에서 쉬고 있으니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후 한 친구가 고기 다 구웠다며 조금이라도 먹어보라고 해서 끼룩끼룩 기어가 몇 점 맛을 보았다. (와 코스트코 목살 진짜 맛있더라.)
차마 술까지는 양심 상 못 마시겠어서 약을 먹고 다시 들어가서 누워 숨을 쉬고 있었다.
몸은 아픈데 묘하게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 고마워 친구들.. 보고 싶다.
시간이 좀 지나고 방 안에는 코 고는 소리가 가득.
그날 새벽 내내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꾸었던 꿈이 떠오른다.
우리 도자기 그릇들이 천장을 빙빙 돌며 춤을 추는 꿈..
놀라서 깼다가 다시 잠들면 또 빙빙 도는 게 이게 참.. XXX
지금 돌이켜보면 일 잘하고 싶은 마음에 그런 꿈을 꾼 게 아닐까 싶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많은 그릇과 스킨십을 하고 있지만
이제 더는 그런 끔찍한 꿈은 꾸지 않고, 또 쉽게 아프지도 않은 몸이 되었으니
24년도의 새로운 삶을 나름대로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내년에도 분명 올해처럼 화나고 아플 일이 다가오겠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25년도도 결국은 잘 살아낼 것만 같다.
충수염(*맹장)과 기흉으로 100년 전에만 태어났어도 벌써 두 번은 죽었을 소중한 내 삶.
내년에는 차분한 마음으로 하루를 곱씹으며 시간을 좀 붙잡아봐야지.
가능한 인상 좀 덜 찌푸리고 많이 웃어야지. 글 쓰는 시간도 많이 확보해야지.
다음 일기는 새해 계획을 세워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무용지물인 것은 알지만 그것이 연례행사이니까, 또 해줘야지.
오늘도 고생 많았습니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