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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사니즘에 이골이 난 돌멩이의 잃어버린 일기장

025. 신년 계획

by 한량돌

올해 일기를 25장이나 썼다니 아주 기특하구먼. 잘하고 있어.

(.. 허허.. 2주 치 일기를 몰아 쓰는 놈이 어딨냐.. 이래서야 장편을 어떻게 쓰려고.)


크리스마스와 연말 가족행사를 바쁘게 보내고 다시 평일이 돌아왔다.

24년도. 이제 정말 하루 안 남았네.


가인&용준의 <Must have love>를 50번쯤 들은 것 같다. 참 잘 만든 노래란 말이지.

이게 우리 또래의 머라이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아니겠어?


곡 정보를 찾아보니 작곡은 파리의 연인 OST <너의 곁으로>로 알려진 'OST 히트맨' 안정훈 님이 했고, 작사는 역시나 김이나 님이었네. 그리고 기존에 만들었던 곡을 바탕으로 재구성했다는 사실(Another saturday의 (season for you))도 알게 됐다. 역시 노래도 담긴 이야기들을 알고 들으면 더 재미있구먼.





#함께하면 더 좋을 플레이리스트

https://www.youtube.com/watch?v=igJo0voxIJ4

<playlist 눈 오는 서점을 지키는 직원의 시간 - 블루플리>






나는 계획 중독이었다.

신년 계획이나 여행 계획은 물론이고 앞으로 어찌 살아갈지 장기, 중기, 단기 목표를 정하고 그에 맞춰 계획을 짰다.

20대 초반엔 '목표 달성을 할 수 있는 계획 짜는 법'이 담긴 비법서들도 제법 탐독했던 것 같다.

비루한 삶에 가슴이 답답해질 때면 도서관이든, 카페든 차분하고 조용한 곳에 앉아서 진지하게 향후 인생 계획을 짜는 것이 연례행사였다.

그렇게 진지하게 계획을 세우면 그런대로 기분이 나아졌다.


그 시간을 통해서 나름대로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게 만들었다는 생각도 든다.

('다수가 원하는 것은 내 길이 아니야!'는 반골기질 인생관 덕에 선택했던 길들의 난이도가 워낙 낮긴 했지..)


그러나 그런 긍정적인 감상평은 시간이 오래 지나야 보이는 건지.

중도 포기와 달성 실패를 선언하던 그 시기의 내 인생은 '별 반개짜리 저질 B급 영화'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계획 속의 나'와 '현실의 나'의 괴리는 갈수록 멀어졌고

그런 계획을 짤 수밖에 없는 내 머리와 중도 포기를 일삼는 가냘픈 육체를 향한 실망도 커져갔다.


달성의 재미를 느끼지 못하니 계획 세우기 자체가 싫증이 났고, 점점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움직이는 'P 성향'으로 바뀌어 갔다.

요즘은 정말 진중한 계획을 세우질 않는 것 같다. 그리고 그냥 맞닥뜨리는 게 더 재밌기도 한 것 같다. 뭐 어때.. 안 죽는다.



계획 짜기를 싫어하게 된 이유는 내 탓이 맞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명확히 깨닫지 못했으므로 어떤 계획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몰랐고. (물론 지금도 계속 알아가는 중.)

나를 둘러싼 모든 상황이 나를 도와줄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 터무니없이 높은 목표를 설정했기 때문에.

(시크릿, 꿈꾸는 다락방, 뇌파진동. 이 딴 거나 탐독하고 있었으니..)


내가 세운 계획들이 폭파되며 만든 결과가 참 슬픈 것이,

개인의 성장과 발전이라는 순수한 초기 의도와 너무나도 다를 줄은 몰랐던 거야.

온몸에 불신을 번지게 하고 남은 재들은 열등감이 되어

주기적으로 스스로를 갈아먹는 화상을 남겼다는 거지.

ai-generated-8771606_1280.jpg 앗! 뜨거워


화상환자가 되어 몸부림치던 내가 갈 수 있는 목적지는 한 곳뿐.

나는 그렇게 목표에 이르지 못하는 스스로를 미워할 수밖에 없는 눈물의 종착역으로 달려가고 있었던 거다.




그래서 요 몇 년 간은 내 삶에서 원하는 게 있다면 '그냥 하는 거지 뭐.'라면서 별다른 계획 없이 계속 파고들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우직하게, 어찌 보면 멍청하게.

제목 없음.png


근데 이걸 어쩌나..

연말이라 그런지 아무것도 하기 싫고, 직장 생활엔 회의감이 넘친다.

'그냥 하는 거지 뭐.'라는 내 삶의 엔진이 당최 시동이 걸리지를 않는다.

이게 지금 몇 주 째 인지를 모르겠다..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다시 한번, 다시 한번 계획 짜기의 맛을 봐볼까..?

또 실망하고 더 깊은 동굴로 들어가 버리면 어떡하지..?


아냐, 오늘의 나는 최소한 정신적으로 자해하지 않는 강한 남자란 말이다!

이번엔 다를 거야!


바로 오늘. 25년도 맞이 신년 계획을 짜보는 것이다.


- 2부에 계속 -



# 돌멩 환자 분 계획 짜기 전 주의 사항

1. 계획은 계획일 뿐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전부 해내려고 하지 말기.

2.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이 일기를 다시 보게 되더라도 실패한 나를 너무 미워하지 않기.



잠시 후 야심한 새벽, 동해안 최북단으로 달려 해돋이 관람 겸 걷기 행사를 진행할 생각이다.

3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가능할까. 벌써 12시가 다 되어가는데..

필요품들 잘 챙기고 조심히 다녀와야겠다.


어머. 24년도 끝이네.

아무튼.. 고생 많으셨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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