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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사니즘에 이골이 난 돌멩이의 잃어버린 일기장

021. 번아웃? 슬럼프? 소진? 무기력증? 아니 하기싫어증!

by 한량돌

#함께하면 더 좋을 플레이리스트

https://www.youtube.com/watch?v=wKlW-PjGRSw

<산타도 듣고 chillin하는 크리스마스 캐롤 Lofi 모음 - Christmas Lo-Fi, Carol Lofi - 낮달>





요 근래 마음이 뒤숭숭해서 물레 연습은 고사하고 일기 쓰는 것도 못하겠더라. 할 건 해야 하는데.

나 혼자 몰래 쓰는 일기를 기다릴 사람이 누가 있겠냐마는.. 그래도 내내 불편한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월요일에는 허리가 아프기도 했고, 마음이 갑갑해서 금방 퇴근해 버리곤 집에서 소주를 한 병 했다. (예?)

기분 안 좋을 때 마시는 술은 똥술이라지만.. 어쩔 것이여, 이 나쁜 습관을..


화요일은 정신을 차려보려 애썼지만, 여전히 몸 상태가 메롱 이었다.

지난주에 있던 공동구매 행사가 화근이었던 것 같다.


경기 불황이 계속되는 상황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번 행사는 성적이 좋았다.

공구를 대비한 상품 생산은 진작부터 준비한 터라 여유가 있었다.

내 업무는 자연스럽게 상품 출고 지원. 판매 성적이 좋았으니 당연스럽게 돌멩 실장은 신나게! 갈려 나갔다.

그래도 많은 출고량에 비해 고객 불만이 두 건 밖에 나오지 않았다. 뿌듯하다.


하여간 이눔의 택배 싸는 일 역시 참으로 고된 일이다.

수십 장이 넘는 송장들을 일하기 편하게 신경 써서 출력하고, 주문해 주신 분들 정보와 대조하며 그릇이 빠지지 않도록 주문서대로 잘 챙겨 넣어야 한다.

특히나 파손 위험이 높은 도자기라 포장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으아ㅇ아ㅏ악!

아아, 택배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응게 여기까지만 하고 추후 따로 한 편 써봐야겠다.


수요일엔 뭐 한다고 늦게 퇴근했는지.. 하여간 혼자 일은 다 하는 척 해!

이미 조진 밤, 또 참지 못하고 '월매 막걸리'를 한 병 했다.

(안주로 '연세우유메론생크림빵'을 먹었다. 크림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낭낭한 바로 그 빵.

크림빵.png

요즘 연세크림빵을 찾지 않은지 꽤 되어서 메론빵 맛은 신상품인 줄 알았다.

근데 22년도에 나왔던 거라고 하네? 아무튼 참 맛깔나게 먹었다. (직전에 먹은 피스타치오 맛도 맛있었지.))


다행히 목요일인 오늘은 계속 신경 쓰던 업무를 드디어 갈무리 한 날이다.

이후엔 나름 평화롭게 일과를 끝냈다.

작업장에서 잠시 벗어나 순댓국도 특!으로 씩씩하게 먹고 돌아와서 오랜만에 물레 연습도 했다.


KakaoTalk_20241205_224115372.jpg 너도임마진짜쫌그러는거아니야짜식아


그래서 이 뿌듯한 마음을 이어가려 일기를 적어본다.



지난 주말에 만난 지인이 내게 왜 이렇게 징그럽게 살이 많이 빠졌냐고 했다.

이 양반 만난 지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닌데 벌써 무슨 살이 빠져..?

(요즘 샤워하고 나서 거울 보면 좀 괜찮으ㄴ..)


하긴 마음이 뒤숭숭하고 먹는 것도 튼실하게 안 먹으니까 (네가 먹어온 그 야식들은? 라면에 크림빵은?)

자연스럽게 살이 빠지나 보다. 마냥 좋은 현상이라고 볼 순 없는데 말야.


그놈의 '뒤숭숭'의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우리 브랜드가 점점 커지면서 느껴지는 개인적인 괴리감이랄까?


나는 세상에 뭐가 많은 게 싫다. 그냥.. 언제부턴가

많이 만들고 많이 사고 많이 버리고 많이 쓰는 게 별로다.


우리 브랜드는 가성비 좋은 식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다 보니 푸바오 왈, 가격 인상을 하기엔 상당히 조심스럽다. 그래서 많이 알려서 많이 찍고 많이 파는 수익 구조로 향할 수밖에 없단다.


푸바오와 매니저님들이 열심히 뛰어다닌 덕에 내년 봄까지 이런저런 행사들이 연이어 잡혀있다.


최근 몇 달 동안 작업장에서는 인력을 충원하고 설비에 투자를 많이 했다.

자연스레 생산량은 눈에 띄게 많아졌지만 그만큼 불량률도 높아졌다.

(오늘은 망치로 그릇 깨다가 쥐 날 뻔했다.)


처음 봤을 때 귀엽고 깜찍하게만 보이던 우리 그릇들은 'A급', 'B급', '아예 파기' 세 부류로 나뉘어 검수자의 손에서 차갑고 빠르게 떠난다.

우리 그릇들은 식탁 위에서 활약할 멋쟁이가 아니라 그저 차갑고 딱딱한 흙덩이 같이 보인다.


작업장 식구들은 서로의 눈이 아니라 자신이 맡은 공정에 갇혀 생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달린다.

잠시 앉아 믹스 커피 한 잔 하기도 눈치가 보인다.


푸바오도 부쩍 맥 빠지게 하는 쓰리 콤보를 자주 시전한다.


<힘들어, 피곤해, 몰라>


마치 작업장에 사람은 없고 일과 기계 소리만 가득한 것 같다.


이 상황이 혼란스러운 나는 하기 싫은 마음이 그득그득 부풀어 오른다.



물론 안다. 관련 학벌도, 업계 경력도 없는 나이만 깡패인 놈이 이 업계에서 일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감사할 일인 것을.

그래서 일하다 가슴이 답답-해지면 스스로 이렇게 되뇐다.


- 그냥 시키는 대로 해. 그냥 그러면 되는 거야.


그래, 나도 내 현실을 알지만.. 자꾸만 힘이 빠지는 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시간이 필요한 거겠지..


나는 여기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역할을 하고 또 어떤 것을 얻을 수 있을까..

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흙 만지면서 살 수 있을까..

이런저런 흐릿흐릿한 생각도 하게 된다.


언젠가 푸바오와 같이 저녁 먹으러 가는 길에 멍 때리다가 한숨을 푹 쉬었는데

푸바오가 이런 내 상태를 읽었는지 이렇게 말했다.


- 요즘 일하는데 회의감 느끼니?


이 아저씨 참 귀신같단 말이지. (네가 표정을 못 숨기니까)



조만간 외부 행사가 있어 출장을 간다. 이번에도 아주 많이 팔아야 한다.

작업장에서 막내이자 실장인 나 역시 행사장에서 열심히 뛰어야 할 거다.

몸 관리 잘 하자구. 정신 관리도.


후아암-

12월도 순식간에 지나갈 것 같다.

틈틈이 일기 쓰고 산책도 종종 하면서 매몰차게 지나가는 이 시간들을 좀 붙잡아봐야겠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_~






출처표기


1. 크림빵 사진 : https://blog.naver.com/rudgns3672/223521003301?trackingCode=r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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