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인생일력' 데일리 명언 에세이 6 : 2021년 1월 6일
도는 텅 빈 그릇과 같아,
아무리 채워도 채울 수 없다.
노자
마음의 허한 것을 채우는 것, 혹은 어떤 깨달음을 얻는 것 자체에는 완전하고 충만한 끝이 있을까?
노자의 말처럼 도는 깨우치는 게 아니라 채워도 채울 수 없는 그릇과 같나 보다.
오늘의 이 한 문장을 며칠 전에 읽은 영지는 너무 간결하면서도 세상의 이치를 통달한 이 노자의 말에 그 어떤 미사여구를 넣는다는 것 자체가 텅 빈 그릇에 물 붓는 느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의 생각이 꼬리를 물다 보니 어느덧 내 앞의 어느 한편에 자리 잡은 욕심 그득한 자신이 보였다.
영지는 지식에 대한 욕구가 강한 사람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식에 대한 욕망만 강할 뿐이다. 어릴 적부터 활자와 책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부모님도 공부하기 위에서 자식에게 쓰는 돈은 아끼지 않으셨다. 연탄불을 때야 했던 단칸방에서 월세로 살아도, 조부모 세대부터 물려받았던 빚을 갚아야 하는 고된 상황 속에서 200원짜리 아이스크림 사는 것도 주저했던 살림에도 책장 한 켠에는 아들, 딸을 위한 최신 백과사전 전집과 위인전 전집이 꽂혀있었다. 책에 대한, 정확히는 독서에 대한 애정이 부모의 성향을 물려받았다는 것이 방 한 칸을 가득 채운 책들이 증명해주었던 것 같다.
그러나 책을 소유하는 것과, 책의 지식을 이해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인 것 같다. 많은 책을 소유하다고 해서 다독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단순히 정보를 모으고 얻는 것과 경험으로 체득하여 지혜를 쌓는 것이 천차만별인 것처럼 말이다.
영지의 초등학교 시절, 처음 가정용 컴퓨터가 보급화되고 인터넷이 사용이 가능했을 때, 다른 가정보다 자식에게 최신 정보통신기술을 경험시켜주고 싶었던 아버지는 큰돈을 들여 이 신세계를 집안에서도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셨다. 당시 반에서 유일하게 가정용 컴퓨터와 프린트기가 있었던 그녀는 역사와 관련된 학교 숙제를 인터넷으로 검색한 내용을 그대로 뽑은 몇 십장을 편집을 하거나 그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코멘트 없이 제출을 했었는데, 당시에는 검색된 다른 사람의 지식을 취합해서 제출한다는 것에 대한 그 어떤 기준이나 가치판단이 성립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담임의 칭찬을 받았다.
의기양양해졌던 10대의 영지는 그다음 학년이 올라간 후, 똑같은 방식으로 숙제를 제출했었는데 새로운 학년의 담임은 이것은 완성된 숙제가 아님을 정확하게 지적을 해주셨고 생각지 못한 그의 반응에 적잖이 당황을 한 기억이 있다.
지금도 영지의 사무실 책상과 집에는 다 읽지 않은 책들이 가득하다. 읽으려고 노력해봐도 모든 지식이 영지의 머릿속에 채워지지 않는다. 영지의 자리를 매일 보는 팀장은 항상 그녀의 자리가 정신 사납다고 느끼고 있다. 영지는 생각한다. 지식을 담는 자신의 그릇 자체가 작을 수도 있지만, 애당초 채움이라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안 삼는다.
책장에 책이 가득 쌓인다고 해도, 요즘처럼 너무나도 다양한 방식과 쉬운 루트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더라도 채워놓은 지식이 지혜가 되지 않은 것처럼 '도'라는 그릇은 노자의 말처럼 채울 수 없는 빈 그릇이라는 것을 새삼스럽게 다시 깨닫게 된다.
어쩌면 채울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 양적인 욕망을 부리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 자체가 도를 깨우치는 첫걸음이 오늘도 책상 위에 양껏 쌓여있는 책들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영지는 어서 깨달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