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인생일력' 데일리 명언 에세이 7 : 2021년 1월 7일
진실로 바른길을 추구한다면
비록 우둔하더라도 쓸모가 있다.
그러나 사악한 마음을 품고 있다면
지식이 많다 해도 해를 끼치게 된다.
반고 <한서열전>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역사서 중 하나인 <한서>를 집필한 후한 초기의 역사가이자 문인인 반고가 자신의 인생 시간 중 20여 년을 이 역사서를 집필하는 것에 바쳤다는 것은, '진실로 바른길을 추구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몇천 년이 지나도 역사의 기록을 통한 '진실'을 후대에 전달하는 행위, 그것을 양분 삼아 시대가 흐른다는 것을 2천 년 전의 이 지식인은 이미 깨우친 상태였나 보다.
나는 2주에 한번 모이는 철학 독서 모임을 만 3년 운영과 참여를 하고 있다. 많을 때는 6명 보통 3~4명 정도로 모이는 소규모 모임인데, 여러 과정을 거치다가 현재는 총 3명이 zoom을 통해 2주에 한 번씩 모이는 중이다. 현재 읽고 있는 책은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의 <철학하는 철학사> 2편 '너 자신을 알라'이다. 사실 우리는 이 책으로 만 3년을 공부하고 있다. 1편은 이미 2번 완독 하고, 2편을 읽고 있는 중이다. 저자는 서양철학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우리가 현재 직면한 이 상황들이 어떤 역사적 배경과 문화와 사상적 뿌리가 지층을 이루고 있었는지 설명한다. 따라서 방대한 양을 다루고 있음에도 우리는 책을 읽으면서 당시 시대의 상황이 드라마처럼 그려지기도 하고, 그때의 시대상황과 현재를 비교하면서 생각해보는 재미가 있어, 한번 토론이 시작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를 주고받게 된다.
어제 우리가 다뤘던 주제는 16세기 르네상스 철학 시대 중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시기였는데, 이 파트를 읽으면서 내가 놀라웠던 것은, 학창 시절에 인지하고 있었던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한 평가와 이 책의 평가는 상당히 엇갈리는 부분이었다. 수능 공부를 한창 하던 학창 시절 도덕 교과서 혹은 위인전에서 보았던 루터와 그의 종교개혁은 당시 교황과 기독교의 부패에 반발하여 개혁을 일으키고, 대중들에게 좀 더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종교를 개혁한 위인으로 긍정적인 역할만이 강조되었던 것 같다. 이 책에서는 당시의 여러 상황들을 보여주면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이 책에 따르면 16세기는 거대한 철학적 체계의 시대가 아닌 혼란과 소란, 신경과민, 격동, 탐색, 전단의 시대라고 설명한다. 이 어지러운 시기에 경건한 교회 비판자가 된 로테르담의 에라스뮈스는 신앙을 악용하는 이들에 맞서 날카로운 혀와 날 선 펜으로 <참된> 신앙을 변호한 당대 지식인이었다. 유럽 전역의 동지들과의 교류하면서 절실하게 교회의 대변혁을 추구했으나, 실질적으로는 냉철한 시각으로 현실을 성찰하고 숙고함을 주장한 인문주의자들이 아닌 '은총'을 부르짖는 항의자이자 행동가인 루터가 성공한 것이다. 루터를 비롯한 이 종교개혁의 전선에 있던 행동가들은 인간에게 진리란 논리적 문장과 모순 없는 논증이 아니라 오직 신앙 속에 있으며, 그것은 전적으로 신의 은혜로운 행위인 것으로 생각했으며, 에라스뮈스는 종교 개혁의 대표자로 급부상하는 그를 변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복잡한 신경으로 보았다. 저자 역시 이 종교개혁을 종교개혁 한 부분만 보고 평가하는 것이 아닌 사회적, 정체적으로 얽힌 전반적인 상황들을 짚어나가면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동시에 언급하며, 그 시대에 대한 평가는 독자들에게 맡겼다.
루터와 에라스뮈스는 종교의 타락을 경계하고 진실로 바른길을 추구했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시대를 읽는 눈과 방법이 달랐을 뿐, 그러나 그 어떤 순수한 학문과 지식이라도 사용하는 이의 마음에 따라 도출되는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최근 개봉했던 영화 <마리 퀴리>, (영국, 2020.11. 개봉, 감독 마르잔 사트라피)는 더욱 인간이 발견한 지식이 어떤 목적과 쓰임에 따라 세상을 이롭게 하지만 재앙이 될 수 있음을 입체적으로 연출한다. 퀴리와 그의 남편 피에르와 함께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하면서, 인류에서 새로운 눈을 뜨게 하는 여정이 흐를수록 그 물질이 인류와 세상을 전쟁과 재앙으로 쥐어 끌고 가는 역사적 사건들을 교차시켰다.
그녀가 이룬 물리학적인 연구성과와 공로가 사악한 야망을 가진 사람들은 전쟁을 일으키고 서로를 죽이는 것의 무기로 사용하였다면, 마리 퀴리는 장녀 이렌과 함께 뢴트겐 투사기를 전쟁 중에 부상자를 살리기 위해 보급하여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물질이자 과학이라는 것을 증명하기도 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연구 성과로 명예와 찬사, 재앙의 씨앗을 발화시킨 사람으로 비난에도 과학자로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은 대표적인 지식인 중 한 명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양과 음, 명과 암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고전과 명언에서 알려준다. 특히 동양의 철학은 이 세상 만물의 이치를 깨달을 것을 상기시키고, 숙고하고 정진할 것을 우리에게 전달한다. '바른 길'에 대한 기준은 시대의 상황, 내가 서있는 위치, 문화와 환경에 따라 그 기준과 가치가 조금씩 다를 지라도, 과거의 지식을 발판으로 현재를 사유하고 장막에 가려진 진실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여정일 것이다. 과거 사람들이 밞아온 길의 흔적들을 쫓아가며, 나의 '길'을 그려 보아야겠다.
<참고>
한서열전 | 반고 저 / 안대회 편역 | 까치(까치글방) | 2020
반고(班固, 32-92)
중국 후한 초기의 문인, 역사가. 광무제(光武帝) 8년 부풍군(扶風郡) 안릉현(安陵縣)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맹견(孟堅)이다. 아버지 반표(班彪)의 유지를 이어 고향에서 『한서(漢書)』 편찬에 전념하던 중 62년경 사사로이 국사를 찬술 한다는 중상모략을 받고 투옥되었으나 동생 반초(班超)의 탄원으로 명제(明帝)의 용서를 받았다. 그 후 20여 년간에 걸쳐서 『한서』를 편찬했다. 이후 『한서』는 후대의 왕조가 이전 왕조의 역사를 기록하는 정사의 전형이 되었다. 또한 여러 학자들이 백호관에서 오경(五經)에 대해서 토론할 때 황제의 명을 받아 『백호 통의(白虎通義)』를 편찬했다. 92년 화제(和帝) 때 장군 두헌(竇憲)을 따라 흉노 정벌에 나섰으나 두헌의 반란 산건에 연좌되어 예순한 살의 나이로 옥사했다. 옥사할 당시 그는 애석하게도 『한서』를 완성하지 못했는데, 그의 유업은 누이동생 반소(班昭)에 의해서 마무리되었다. 젊은 시절에 쓴 『유통부(幽通賦)』를 비롯하여 수도의 아름다움을 찬미한 『양도부(兩都賦)』나 한나라의 위대함을 예찬한 『전인론(典引論)』 따위의 41편에 이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한서 열전
동서양을 통틀어 가장 이른 시기에 편찬된 역사서 중 하나인 '한서'는 중국 문화의 뿌리가 된 전한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100편으로 이루어진 방대한 역사서인 '한서'는 '사기'의 뒤를 이어 한나라의 역사를 하나의 완결된 역사로 다루고 있으며 또한 단순한 역사서를 넘어 고대의 문학작품으로서 문학과 역사가 절묘하게 결합된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한서 열전』은 '한서' 중 역사적으로도 중요하고 문학적으로도 흥미로운「열전」에서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역사를 선별해 번역한 책으로 한나라 역사를 이해하는 데 길잡이가 되어주며, 고대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한서(漢書)
한서는 인류 역사서 중에서 동서양을 통틀어 가장 이른 시기에 편찬된 책의 하나로 중국 문화의 뿌리가 된 전한(前漢)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사료의 채택이 엄격하고 문체는 소박하면서도 근실하여 전한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에는 더없이 귀중한 자료이다. 사기(史記)와 더불어 단순한 역사서라기보다는 2,000여 년간 지속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고대의 위대한 문학작품으로서, 중국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문학과 역사가 절묘하게 결합된 책으로 평가를 받아왔으며,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한서는 모두 100편으로 “기(紀)” 12편, “표(表)” 8편, “지(志)” 10편, “전(傳)” 70편이다. 이 체재는 기본적으로 사기의 체재를 따른 이른바 기전체(紀傳體)이다. 다만 사기가 통사(通史)라면, 한서는 전한의 역사만을 다룬 단대사(斷代史)로서 한 왕조를 단위로 역사를 편찬한 역사 서술의 시초가 되었다.
한서는 방대한 분량을 자랑한다. 한 사람의 힘으로 짧은 기간에 지어졌다고는 볼 수 없을 만큼 상당한 분량이다. 한서는 반고의 아버지 반표(班彪)에 의해서 마련된 기초 위에 반고가 대부분을 저술했고, 이 둘에 의해서도 완성되지 않은 일부를 그 누이동생인 반소(班昭)가 완성했다. 따라서 한서는 한 역사가 집안의 노력의 결정체라고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