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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 Feb 12. 2021

굽은 길을 묵묵히 걷는 사람

민음사 '인생일력' 데일리 명언 에세이 14 : 2021년 1월 14일

너무 곧은 것은 굽어 보이고, 
길은 본래부터 꾸불꾸불하다. 

-사마천 <사기열전>






大直若詘, 道固委蛇. 너무 곧은 것은 굽어보이고, 길은 본래 뱀처럼 꾸불꾸불하다.]


 멀리서 보면 곧아 보이는 길도 가까이 서보면 원래 굽은 길인 경우가 많다. 결국 이 말은 즉슨 우리가 곧은길이라고 믿고 가는 것도 그 길을 나아가야 할 때는 자신의 주장만 굽히지 않거나 강압적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과 형세에 맞춰가야 한다는 뜻이다. 직장에서 보면 항상 여유 있어 보이고, 업무에 힘들게 시달리는 것 같지 않은 것 같은데 성과가 좋으며 상사와 동료들에게 평도 나쁘지 않은 사람이 분명 있다. 드라마 <미생>에 나오는 리더십이 있고 능력 있는 주인공 장그래의 상사인 오상식과 김동식이 항상 자신의 사수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음에도 조직에서 성과를 내고 빠르게 진급을 하는 사람들은 분명 있다는 말이다. 아마도 사마천이 논평한 오늘 문장의 주인공이자 ‘전한개국구경 前漢開國九卿’이라 부를 정도로 한나라 초기 국가의 초석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유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숙손통이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다. 

 

경력 전무한 장그래의 달란트를 발굴하고 실현시켜줬던 것은 현실에는 드문 조력자들이 상사로 있었다.    [출처 ] 드라마 미생 공식 홈페이지


길은 곧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걸을 뿐


 숙손통이야말로 21세기에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위인일지도 모르겠다. 그는 진나라 2세 황제 호해부터 시작하여 항량, 의제, 향우를 거쳐 유방에게 정착하기 전까지 생존을 위해 의리와 명분도 없이 아부와 아첨을 일삼는 학자 출신 관리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여러 군주들을 거쳐 유방이라는 뛰어난 군주를 만났을 때, 그의 진가를 발휘하였고, 그 리더 역시 그의 능력을 활용할 줄 알았던 것이다. 사마천은 숙손통의 이러한 처세와 유연한 판단력을 꿰뚫어 보고 '大直若詘, 道固委蛇'라고 평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길은 멀리서 보았을 때 반듯해 보여도 가까이 갔을 때 그 길이 진흙탕길이거나 살얼음판일 수도 있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한 길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곧은 가지는 오히려 부러지기 쉬우며, 휘어지고 눕게 되더라도 유연하다면 부러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예시인 것 같다.


 최근에 나오는 위인전기들은 어떻게 위인을 묘사할지 모르겠으나, 내가 유년시절에 읽었던 위인전기 속의 위인은 항상 곧고, 바른 충신이자 신과 같은 존재로 쓰여있었다. 착하고 올바르고 곧은 사람, 우리는 그런 사람이 되라고 어릴 적부터 학습되어왔던 것 같다. 

 어른이 되어서는 성공한 사람들이 집필하거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자기 계발서나 에세이를 통해 소위 성공했다는 그들의 인생과 나 스스로의 삶을 비교하고 때로는 타박하여, 그들과 같은 삶을 살거나 비슷하게 해 보려고 노력해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그 책들은 나에게 항상 좋은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읽지 않게 되었다. 그런 책들 속의 인생들을 대개 숙손통과 같이 관계의 유연함과 빠른 상황판단능력으로 기회를 자기의 것으로 만들어왔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그 기회를 잡기 위해 겉으로는 아첨과 아부하는 것과 같이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자신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묵묵히 자신의 내공을 쌓아왔던 것이 아닐까 싶다. 


 무능력한 상사를 만났을 때


 최근 직장을 다니면서 가장 큰 고민에 빠진 것 중 하나는 무능력하고 비겁한 상사를 만났다는 것이다. 어제는 그 사람의 단점만 계속 보려고 하지 말고, 장점을 찾아보거나 혹은 그래도 나를 버티게 해 주는, 나의 아름다움을 봐주는 사람들과 더 가까이하면서 자신의 일과 감정의 균형을 맞춰보자는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이 무능력한 상사를 무조건 좋은 점을 보려고 하는 생각이 근본적인 문제를 풀 수 있는 혜안일까 라는 찝찝한 생각이 가시지가 않았었는데, 오늘 문장을 읽고 쓰다 보니 어제의 그 풀지 못한 답을 어느 정도 찾은듯한 느낌이 들었다. 직장생활의 길이 부러지지 않기 위해 무능력한 상사에게 목이 터져라 틀리다고 외치는 것보다 당장은 자존심을 굽히는 것이 내가 나아갈 그 멀고 긴 길을 부러트리지도 않고, 꺾이지도 않은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하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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