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인생일력' 데일리 명언 에세이 13 : 2021년 1월 13일
남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환영하라.
그것은 좋은 일이요 명예로운 일이다.
행복을 얻으리라.
-주역
미영은 나이가 먹을수록 정말 안 좋은 행동이라고 느끼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있다고 생각을 한다. 그것은 상대의 단점을 한번 느끼기 시작하면, 계속 그 부정적인 면모에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주로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은 자신의 시간을 가장 많이 할애하게 되는 직장에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마다 자신의 기질과 성격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이 다름에도 하나의 소속된 집단에서 매일 같이 지내게 되다 보니 부딪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미영은 새로운 직장에 입사한 지 이제 3개월 차가 되어간다. 새로운 직장은 이전 직장에서 10년 근무를 한 경력으로 경력직 과장으로 입사했기 때문에 업무를 파악하고 조직에 적응하며 일을 진행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
미영은 조직에 빠르게 적응한 만큼 트러블도 잦은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짧은 시간 동안 그녀에게는 자신과 합이 맞아 움직이거나 조력해주는 사람 혹은 사사건건 부딪치는 사람, 더 나아가 일적으로 인간적으로도 냉담해진 사람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남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는 행위는 타인을 마음으로 품는 것
사람에게 형성된 성격과 습관은 어떤 환경과 위치, 직위, 상황에 따라 그 태도가 달라지고, 그 태도를 받아들이는 상대의 마음 또한 다를 것이다.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살아온 사람에게 무조건 자신의 방식이 맞다고 강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미영은 신입 때부터 그 회사에 근무해왔던 같은 급 혹은 상사들과 부딪치는 일이 종종 발생했는데, 관행적으로 약속된 이 회사의 틀들이 미영에는 비효율적으로 진행되거나 요즘 트렌트에 맞지 않다고 느끼게 되었다. 물론, 그녀는 선임들의 업무 스타일과 이 회사의 시스템 전체가 무조건 나쁘거나 개선해야 할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녀의 입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상무는 새로 영입한 인재의 성과를 기대하고 있고,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할 과제를 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의 방식으로 기존의 방벙론을 개선하지 않으면 불가피한 상황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업무상의 갈등들이 쌓이다 보면 업무로 시작해서 업무로 끝나야 할 일들이 감정 낭비가 되고 더 나아가 사람 간의 관계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타인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 그다음부터는 그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내면에 쌓인 감정들이 섞여서 보게 되고 그 불순물들은 다시 자신에게 불편한 고통을 주는 것이다. 그래서 미영은 최대한 일로서 부딪치는 상황과 그 사람 자체를 분리해서 보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품을 수 없는 사람도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미영이 회사에 점점 적응을 하고, 또 트러블이 조금씩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자신의 업무태도와 사회성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고민이 자격지심으로, 자존감의 상실로 이어질 때 오랜만에 자신보다 6개월 전에 경력직으로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한 친구와 저녁을 먹게 되었다. 미영의 친구는 저녁을 먹으면서 그녀의 고민이 자신이 했던 고민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자신이 말해줄 수 있는 생각 선에서 조언과 위로를 해주었다.
이제는 우리 나이가 실무자로 뛰어다는 역할에서 이제는 조직과 사람을 다루고 일을 설계해나가야 하는 중간관리자의 역할로 단계가 올라간 것이 아닐까?라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듣고 보니 그렇다. 이 전 직장에서 미영은 주로 혼자서 계획을 세우고 결과까지 도출하는 사업들을 상사의 컨펌만 떨어지면 불도저처럼 진행해왔다면, 이곳에서는 일과 조직, 조직과 사람,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계속 관찰하고 그 상황에 맞게 상대를 설득하거나 합을 맞추고 때때로 처세도 필요한 자리에 자신이 서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 과정에서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상사가 눈 앞에, 자신의 옆자리에 있을 때 과연 그 상대를 품을 수 있을까?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그의 행동과 판단이 조직 내에서 계속 문제를 일으키거나, 소통이 되지 않았을 때도 나는 그의 장점만 보고 다른 부분은 눈 감고 있어야 하는 것인가.라는 반문을 하게 된다.
사실은 내가 타인보다 부족하여, 타인이 나를 품어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주역 계사전을 옮긴 정진배 선생님에 의하면 <주역>은 언제나 하늘과 땅과 인간의 도를 연결 지어 사유하는 것이라고 한다. 음양의 변화가 하늘의 도를 뜻한다면, 강유는 땅의 도를, 나아가 인의는 사람의 도를 표상한다고 말한다.(각주 1) 모든 만물에는 음과 양이 있고 그것을 아울러서 결국 '도'라고 칭했을 때, 모든 사람에게는 음과 양, 장점과 단점을 다 가지고 있지만, 상대를 대하는 나의 마음과 태도에 따라 추한 사람이 될 수도 아름다운 사람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을 환영해줄 때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역>은 말하고 있다.
"자신이 조직에서 빛나는 사람이 되어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본인의 부족함을 흉보거나 책망하는 사람보다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아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일 수도 있다."
미영은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직장에서 나에게 우호적인 사람, 혹은 긍정적인 기운을 지속적으로 주는 사람이 있을까.
미영의 친구는 미영의 직장생활을 고민하는 것만큼 그녀를 걱정하지 않았다. 미영의 친구는 미영이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생각하는 미영의 장점은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판단력으로 일처리가 깔끔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독불장군 같은 외골수가 아니라 조직 분위기를 유연하게 만드는 에너지가 있다는 점이다. 그 에너지를 상대의 단점보다 장점을 보려고 하는 마음이 미영에게 항상 깔려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낯선 환경과 성과에 대한 부담이 자기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지 못한 것 같다. 이제 중간관리자로 성장을 하고 있는 그녀가 어깨 힘을 좀 빼본다면 조직에 적응하고 그녀가 맡은 프로젝트를 타인들과 잘 융합하여 마무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딱 한 가지만 알면 된다. 그래서 미영의 친구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건넸다.
"네가 현재 일하고 있는 직장에서 빠르게 적응할 수 있던 것은 자신이 타인을 품은 그릇만 존재한 것이 아니라 이미 타인이 너를 품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야. 그리고 너는 누군가에게 품어주는 사람이기도 해. 그러니 걱정하지 마. 넌 어디서든지 환영받는 사람이다."
각주 1) 주역 계사전, 작가 미상, 정진배 옮김, 지식을 만드는 지식, p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