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음사 '인생일력' 데일리 명언 에세이 17 : 2021년 1월 17일
한마음의 근원은 있음과 없음을 떠나서 홀로 깨끗하고,
삼공의 바다는 참됨과 속됨을 아울러서 맑다.
-원효 <분별없는 깨달음>
한마음의 근원은 있음(有)과 없음(無)을 떠나서 홀로 깨끗하고, 삼공(三空)의 바다는 참됨(眞) 속됨(俗)을 아울러서 맑다. 맑게 둘을 아울렀지만 하나가 아니고, 홀로 깨끗하여 주변(邊)에서 벗어나 있지만 가운데(中)가 아니다. 가운데가 아니면서 주변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있음이 아닌 법(法)이지만 없음에 머물지 않고, 없음이 아닌 상(相)이지만 있음에 머물지 않는다.
-한국산문선 1, 민음사 [원효, <금강삼매경론> 서문 분별없는 깨달음 中]
삼공(三空)의 바다
'일심一心'과 '화쟁和諍' 사상으로 신라시대 불교의 대중화와 사상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원효대사는 해골바가지 일화를 통해서도 대중적으로도 익숙하다.
불교에서 '삼공'은 번뇌의 계박에서 벗어나 증오(證悟, 수행으로 진리를 체득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세 가지 방법이라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삼공의 바다로 다다르기 위해 닻을 올릴 수 있는 것은 결국 '한 마음'을 깨달아가는 과정과 같다. 가운데도 아니고 주변도 아닌, 참됨과 속됨이라는 구분 자체를 초월한 깨끗한 마음이 한마음(어찌 보면 '공'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이라고 본다면, 그 자체가 모호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아득하게 느껴진다. 무언가 깨닫고 실현하겠다는 마음조차 비우는 것이, 혹은 어쩌면 비우려고 하는 마음조차 초월하는데 '한마음'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동양철학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를 거의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 사상들을 이해하기가 쉽지가 않다. 이번 글쓰기 연습을 하면서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평소 국내여행을 할 때 절을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는 데, 종교적인 관점을 떠나서 동양사상의 한 부분과 역사의 한 꼭지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점이다. 얼마 전에 다녀온 천안의 광덕사에서도 처음 호두나무가 우리나라에 어느 시대에 어떤 루트로 전래되었는지, 대웅전에 있는 탱화와 불상이 어떤 시기에 양식으로 만들어졌으며, 상징 속에서도 찾을 수 있는 의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서 몇천 년 동안 이어져내려 온 건축과 미술 양식과 관습 속에 철학이 담겨있다.
수많은 시간이 흐르고, 원효대사가 살았던 시기에는 상상도 되지 않은 풍경으로 뒤덮인 현대의 삶 속에서 우리가 그 시대의 철학과 사상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다시 한번 되새김해본다. 분명한 것은 오늘의 이 한 문장이 완전히 깨닫지 못하더라도, 원효대사의 해골물에서 얻은 깨달음, 삼공의 바다의 분별없는 깨달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밭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밭을 발견하고 일궈 나가는 것이 '한마음'을 깨닫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