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두 May 19. 2021

나는 '허난설헌'이다

민음사 '인생 일력'데일리 명언 에세이 19 -2021년 1월 19일

노을 위의 은빛 창문에서 구만리 희미한 세상을 내려다보고, 
바닷가 문에서 삼천 년 상전벽해를 웃으며 보고 싶다. 
손으로 하늘의 해와 별을 돌리고 몸소 구천의 바람과 이슬 속을 노닐고 싶다. 

-허초희 <광한전백옥루상량문>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은 조선 중기의 천재 시인 허초희가 8세에 지은 광한전 백옥루에 들어갈 상량문이다. 현재 전해지는 초희의 유일의 산문으로 어린 나이에 쓴 글임에도 명문이 그녀의 글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글재주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천재적인 문장가이자 시인이었던 그녀가 살았던 시대는

엄마, 아내의 수식을 버리고 오롯이 시인, 예술가 '난설헌'으로서 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27세라는 짧은 생은 그녀에게 고통이자 그 자체가 벽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녀의 글은 자국을 넘어 극찬을 받으며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것이다. 여성에게 혹독하였던 시대의 제약으로 묻힐뻔한 그녀의 시를 몇백 년이 지나도 만날 수 있었던 건 정말 행운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 ㈔교산·난설헌선양회

 

 시대를 앞서간, 조선의 페미니스트 

 초희가 살았던 그 날들은 '손으로 하늘의 해와 별을 돌리는' 것이 남성중심적인 조선의 분위기를 바꾸는 것보다 쉬웠을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로 조선의 사회는 여성에게 엄격하고 가혹했다는 것을 그녀의 짧은 생을 통해서도 유추할 수가 있다. 허초희는 양반가의 딸이라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글조차 가르치지 않았던 시대에 태어났지만 그녀의 집안은 비교적 진보적이고 열려있어 그녀의 천부적인 재능과 사상을 비교적 자유롭게 발현할 수 있도록, 다른 형제와 동등한 기회를 주었다. 

 남녀를 동등하게 대했던 집안의 분위기가 애당초 없었다면 우리는 허난설헌이라는 당대의 독특하고 섬세한 감성을 지닌 시들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초희가 이른 나이에 떠나면서 자신의 글을 다 태워 세상에 사라졌을 때도 그녀의 재능과 작품성을 일찍이 깨닫고 있었던 남동생 허균의 노력으로 머나먼 타국에서라도 그녀의 글을 책으로 엮을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표절에 대한 논란이 있기도 하다. 어찌 되었든 그녀의 글이 거의 불태워 없어졌더라도 당대의 가장 뛰어난 시인이라는 정황은 여럿 포착된다)

  그럼에도 그녀의 재능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것일까? 행운과 같았던 유년시절을 지나 결혼 이후의 초희의 삶은 그 자체가 불운이자 고통이었다. 시댁과 남편은 그녀의 재능이 버거웠고, 이어진 아버지와 세 형제들에게 온 불행들, 그 스트레스로 인한 유산까지 꽃과 같이 화려하게 피어났던 그녀의 생이 시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내, 엄마, 며느리라는 명사 외에는 그녀의 역할이 제한되었을 때, 그녀는 오히려 규방 안에서 시를 꾹꾹 눌러쓰며 자신은 그냥 '난설헌' 시인 '난설헌'이라 존재를 울부짖으며 드러냈다. 그렇게 시인으로서 곧은 난초와 같은 기개로 살아온 그녀는 누구의 엄마, 누구의 아내가 아닌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시인 '허난설헌'으로 기억되게 된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달밤의 기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