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달토끼 Apr 02. 2024

유모차와 휠체어의 사랑

증손자와의 연결고리


"에너자이저~!"


2023년 07월 28일(은총이 23개월 29일째)


 외증조할머니 장례식장, 이 날 은총이는 새로운 별명을 얻었다.

"에너자이저!"


 많은 사람들이 예뻐해 주니 신이 나서 쉼 없이 뛰어다녔다. 말을 잘 못할 때인데 어찌 들으면 참새가 "짹짹!"거리는 소리를 종일 떠들어 대며 가족들이 주는 음식을 모두 받아먹었다. 은총이가 계속 신발정리하는 막대를 들고 왔다 갔다 바삐 움직여 손님들을 모두 웃게 했다. 은총이는 그렇게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했다.




"식장 언제가? 이모 어딨어?"


2023년 08월 28일(은총이 24개월 28일째)


  은총이가 뽀로로 피규어 옆에 까맣고 동그란 막대를 여럿 놓더니 '증조 함마 식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내 사촌동생들의 안부를 물어보았다. 다행히 할머니 장례식의 기억이 슬프기보다는 그리웠나 보다. 장례를 치르며 가족들이 하나가 되어 서로 보듬었던 따뜻함을 알아차렸던 걸까?




"아주 훌륭한 아기를 낳았구나. 네가 가면 난 보고 싶어서 어쩌니."


2022년 10월 23일(은총이 13개월 23일)


 은총이와 증조할머니의 첫 만남이 있었다. 할머니는 너무 기뻐하시며 면회가 끝날 때까지 계속 우셨다. 코로나로 인한 병동폐쇄로 할머니는 쭉 요양병원에 갇혀 사셨다. 은총이를 더 일찍 보여드렸어야 했는데, 거의 면회가 중지된 상태여서 그동안 일정 잡는 것이 힘들었다. 아니, 솔직히 그보다는 은총이의 건강을 위해 병원출입을 자제했던 것 같다.


 은총이는 할머니를 많이 낯설어했다. 할머니를 보고 웃지도 않고 나에게 조용히 안겨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휠체어 바퀴를 유심히 보더니, 갑자기 할머니에게 웃어드리며 재롱을 부렸다. 말을 못 할 때라 정확히는 몰라도 휠체어 탄 할머니와 유모차를 탄 자신의 동질감을 찾고는 기뻤던 모양이다. 은총이는 그렇게 할머니에게 선물이 되었다.






"2.95kg. 건강한 남자아기입니다."


2021년 09월 01일(은총이 태어난 날)


 그동안 은총이를 만나기 위해 오래도 기다렸다. 2017년 결혼 후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였다. 아기를 기다린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모두의 기다림과 기도가 늘 함께했다.


 나의 할머니, 은총이의 증조할머니는 아기가 태어났다는 전화를 받고는 펑펑 우셨다. 그동안 할머니는 은총이를 위해 하루에 스무 번도 넘게 기도해 오셨다. 요양병원 안에 있는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다가 아기를 안고 있는 나를 보시는 꿈도 꾸셨다고 했다. 할머니의 그러한 간절함으로 은총이는 안전하게 태어나 건강하게 자랐다.


 하지만 코로나로 요양병원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우리는 오랫동안 그렇게 전화로만 아기의 소식을 주고받았다.




사랑하는 우리 할머니.


 은총이와 할머니의 면회실에서의 만남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두 번 있었다. 그 잠시뿐인 기억은 할머니의 추억이 되고, 은총이 사진 한 장에 기뻐하며 병실에서의 일상을 버텨내셨다.


 은총이가 이 세상에 찾아오도록 기도를 해주실 때도, 아기가 태어나서 자라고 할머니를 같이 찾아뵈었을 때도 할머니는 요양병원의 같은 병실 같은 침대를 떠나지 못하셨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2주 전이 되어서야 중증환자 치료 병실로 이동하실 수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마지막 일주일 전쯤 은총이를 집에 두고 면회를 갔다. 할머니는 온몸을 휘감는 고통 속에 몸부림을 치고 계셨다. 진통제를 이기지 못하고 정신이 혼미해지셨다. 안전을 위해 할머니의 손목이 수건으로 묶여 있었다. 할머니는 나를 아줌마라고 부르셨다. 그러다가 가끔 정신이 돌아오면,

"훌륭한 아기를 낳았어. 아주 훌륭해."라며 은총이 이야기를 하셨다.


 나는 어린 은총이와 함께라는 이유로 자주 찾아뵙지 못했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그 순간까지 나와 은총이를 사랑하고 계셨다. 늘 그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할머니 손목의 수건은 눈이 감기신 후에야 풀어졌다. 이제야 할머니는 요양병원을 나오실 수 있게 되었다.


 하늘문, 그곳으로 걸어가셨다.




"함마 엄마(증조할머니) 보고 왔어."


2023년 08월 15일(은총이 23개월 15일)


은총이와 함께 국립현충원을 찾아갔다. 할머니는 이제 할아버지 옆에 편히 계신다. 유골함 앞에 서서 기도를 드리는데 은총이도 함께 "아멘"하며 기도했다.


 집에 와서 물어보니 "함마 엄마(증조할머니) 보고 왔다."라고 했다. 사진이 아직 붙어 있지도 않은 유골함만 보고 왔는데, 어디까지 이해하고 어떻게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단 두 번의 만남뿐이었지만 할머니의 간절한 기도가 있었기 때문인지, 은총이와 할머니는 마음이 통했다.




 늘 6.25 전쟁 때의 피난행군 이야기를 영웅담처럼 하시던 할머니.

 항상 온몸이 아팠던 할머니.

 사촌들과 나를 사랑으로 키워주셨던 할머니.

 코로나로 인해 요양병원에 갇혀있던 할머니.


 그래서 몹시 춥고 외로웠던 할머니.


이제는 편히 쉬세요.

할머니의 선물 같은 우리 은총이, 사랑으로 키울게요.


할머니의 사랑, 제가 기억할게요.

작가의 이전글 꼬마 장화야 달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