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장을 기다리며

연락의 빈도가 사랑의 척도가 될 수 있을까?

by 사색가 연두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기분 나빠할 숫자가 뭔지 아는가?


바로 노란색 말풍선 옆에 붙어 있는 숫자,


'1'.



오랜만에 한 친구에게 연락해 한 번 보자고 했더니 갑자기 연락을 보지 않는다. 그리고 하루 뒤에 답장이 왔다.


"다음에 무조건 간다."


나는 딱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사실 우리 사이에선 연락하다 답장을 곧장 받지 않는 건 그리 큰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 또한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랬다.


메시지를 보낸 지 한참이 지나도 1이 없어지지 않으면, 그때부터 나는 시나리오 극작가로 변하고 만다. 머릿속에는 온갖 삼류 소설이 쓰이기 시작한다. '바쁜가?'로 시작한 물음표는 30분이 지나자 '내가 무슨 실수했나?'라는 자책으로 바뀌고, 1시간이 넘어가면 '나한테 마음이 식었나?'라는 비약으로 치달을 때도 있다.


스마트폰 화면을 껐다 켰다를 반복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내 마음은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심지어 고작 픽셀 덩어리에 불과한 저 숫자 하나가 내 기분을 난도질하고 자존감까지도 갉아먹는다. 특히 내가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대방이면 더욱 그렇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애가 한참이 지나도 답장이 없는 경우 그랬다. 그럴 때면 나는 순식간에 비참한 명탐정이 된다. 내가 뱉었던 사소한 농담, 무심코 보낸 이모티콘 하나까지 기억의 서랍에서 꺼내 나노 단위로 분석하기 시작한다. "이 말이 거슬렸나?", "너무 성급했나?" 하지만 그 치열한 추리의 끝에 남는 건 그녀가 나를 거절할지 모른다는 징그러운 두려움뿐. 결국 그 게임에서 나는 항상 지고 말았다. 짝사랑의 권력관계는 잔인할 만큼 명확하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 사랑의 크기를 답장의 속도로 채점하게 되었을까.


왜 이렇게까지 조급해진 걸까? 어쩌면 우리는 대화를 '탁구'라고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공이 넘어오면 0.1초 만에 반사적으로 쳐내야 하는 순발력 게임같이 말이다. 공을 치지 못하고 랠리가 끊기면 게임이 끝났다고 믿는 강박이 우리를 옥죄고 있는 건 아닐까.


물론 대화의 핑퐁은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그건 '대면'으로 만났을 때의 이야기다. 그러한 만남은 나와 상대방의 시간과 에너지를 나누는 일이기에 서로에게 마땅히 좋은 공을 넘겨주어야 예의다. 다만 지금 우리는 반응에 중독되어,


진짜 마음이 담긴 응답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언제 썼는지 기억도 안 나는 빼빼로 편지 사진


과거 휴대폰이 없었을 시절, 사람들의 주된 대화의 형태중 하나는 '편지'였다. 질문을 던지고 답이 돌아오기까지 꼬박 사흘이 걸리던 시절, 그 지루한 공백은 결코 무시가 아니었다. 그것은 상대를 위해 단어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는 정성스러운 '응답'의 기다림이 아니었던가. 문장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썼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우표를 붙여 빨간 우체통에 넣기까지의 망설임. 그리고 그 편지가 상대에게 가닿기까지 걸리는 필연적인 시차. 의문이 든다. 과연 요즘 같은 시대에 우리는 이런 기다림을 참고 인내할 수 있을까. 'ㅋㅋ'나 이모티콘 같은 반사적인 답장 속에 과연 우리가 기대하는 진심이 들어갈 자리가 있을 리가 만무하다.


사회는 빠른 속도를 추구하고, 우리는 그에 맞게 빠르게 반응해야만 한다. 비즈니스적으론 그렇다. 하지만 그러한 경향이 사적인 관계에까지 전이되면서 사람들은 피로와 불편을 겪게 되었고, 그로 인해 여유와 휴식을 위해 형성된 사회적 커뮤니티가 파괴되면서 되려 혼자를 고집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친구'도 '클라이언트'처럼 여겨지게 된 사회가 된 것이다.


그러니 대부분의 자발적 고립을 택한 사람들은, 그들이 유별나거나 사회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살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타인이 싫어서가 아니라, 사실은 타인과 연결될 때 요구되는 그 지독한 즉각성의 의무를 감당할 에너지가 없어서다. 비즈니스 로직이 지배하는 피로한 관계 속에서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역설적이게도 '단절'이 돼 버렸다. 외로워서 혼자가 된 것이 아니다. 괴로워서 혼자가 되기를 선택한 것이다.


나의 경우는 그렇다. 보통의 경우 바로바로 답장을 보내는 편이지만, 조금 생각할 필요가 있는 내용이면 잠깐 답장에 거리를 둔다. 상대방은 괴로울 수 있다. 아마 많은 고민을 할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이때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말한다. 그는 저서 <사랑의 단상>에서 기다리는 자의 고통을 이렇게 위로한다.


"사랑하는 사람의 숙명적 정체성은 바로 '기다리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기다림은 오히려 나의 사랑이 상대에게 가닿기 위해 필요한 절대적인 물리적 시간이다. 화살이 과녁에 꽂히기 위해선 날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듯, 내 마음이 상대방에게 닿기 위해서도 체공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니 숫자가 사라지지 않는 그 침묵의 시간을 섣부르게 '거절'이라 오해하지 말자. 그건 어쩌면 상대방이 나에게 가장 예쁜 답을 보내기 위해 마음을 고르고 있는, 우리 관계가 맛있게 익어가는 발효의 시간일 수 있다.


우리는 2026년을 살고 있다. 모든 것이 5G의 속도로 연결된 초연결 사회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의 마음은 광케이블을 타지 못한다. 마음은 여전히 아날로그의 속도로 아주 느리게 걷는다. 즉각적인 반응을 구걸하는 대신 진득한 응답을 기다릴 줄 아는 여유. 화면 속의 숫자가 아니라 화면 밖의 내 일상을 지키며 상대를 믿어주는 태도. 그 '여백'을 견디는 힘이야말로 이 조급한 세상에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짜 낭만일 것이다.


아직까지 내게 답장을 주지 않는 몇몇 사람들이 있다.


당신들에게 말한다.


나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내 할 일하며 기다릴 뿐이다.


고로, 나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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