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몸운동의 묘미
때는 2022년, 당시 내가 군복무를 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제 막 상병을 달았던 나는 중대 내 헬스장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친한 친구가 된 선임 한 명이 나를 데리고 그곳으로 향했다. 마침 몸짱이 되고 싶었던 나는 헬스 운동을 배우고 싶었던 찰나였으니 잘됐다 싶었다.
보통 헬스라 하면, 벤치 프레스나 데드 리프트같이 주로 기구를 사용하며 효율적으로 근육을 키우는 데에 집중화된 액션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그 친구는 어딘가 달랐다. 가자마자 철봉 앞에 서서는 턱걸이를 시키는 것이 아닌가. 아, 물론 풀업도 등 근육을 키우는 데엔 매우 중요한 운동이니 처음엔 별 말없이 그냥 하라는 대로 했다. 풀업이야 고등학교 때 친구 따라 많이 해 봤기에 자신이 있었고, 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기도 했기에 오히려 환영이었다.
그런데 어찌하면 할수록 이상하다. 나는 벤치 프레스나 데드 리프트 같은 운동을 배우고 싶었는데 풀업-딥스-푸시업만 반복하는 게 아닌가. 몸풀기 운동인가 싶다가도 생각보다 힘이 들어 그제야 한 번 물어봤다.
"왜 이것만 반복하십니까?"
"어? 왜긴. 맨몸운동 해야지."
아하. 알고 보니 그 친구는 맨몸운동러였던 것이다.
사실 그전까진 맨몸운동의 세계를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재미없고, 쉽고, 따분한 종목인 줄만 알았으나 그것은 아주 큰 오산이었다. 나는 그 이후로 친구 덕분에 맨몸운동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고, 입문하고 보니 이 세계 안에서도 정말 다양한 퍼포먼스와 레벨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맨몸운동의 묘미는 꾸준함과 인내심 그리고 비효율이다.
헬스 운동과 비교해 보았을 때 확실히 시간 대비 효율이 나오는 종목은 아니다. 하나의 퍼포먼스를 구현해 내기 위해서 정말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근육을 키우는 데엔 더없이 많은 기간을 요구한다. 심지어 퍼포먼스가 올라갈수록 신체의 무리가 가는 모션이 많아 부상을 당하기도 정말 쉽다. 실제로 본인은 이번에 물구나무를 서다 왼쪽 손목을 다쳐 현재 눈물을 머금고 글을 쓰는 중이다.
어찌 됐든 내가 맨몸운동의 세계에 빠지게 된 계기를 떠올려 보니 어렸을 적 생각이 문득 났다. 한때 나의 롤모델 중 하나는 바로 이소룡이었다. 가끔씩 TV를 보다 그가 나올 때면 막 이리저리 거실을 돌아다니며 정신 사납게 흉내를 내곤 했었다. 날렵하게 조각진 그의 몸매와 절도 있게 칼 같은 움직임은 아마 전 세계 모든 사나이들의 동경의 대상이었을 테다.
그런 이소룡이 한 말 중 가장 유명한 명언 하나가 있다.
"천 가지 발차기를 한 번씩 연습한 사람은 두렵지 않다. 내가 두려운 것은 한 가지 발차기를 천 번 연습한 사람이다."
우린 무언가를 할 때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루트를 찾아간다. 어쩔 수 없다. 사회는 개인을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영역에 있어 장인으로 가는 길은 결코 효율과는 거리가 멀다. 무조건 많은 노력과 시간을 끈기 있게 지속해야만 도달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특정 지점에서 더 이상 실력이 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면 주저앉고 만다. 나는 이 분야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른 쉬운 길로 빠져나간다. 그렇지만 그 길조차도 쉽지 않다. 결국 포기하고 새고, 또 포기하고 다른 데로 새어버리는 악순환의 반복이 시작된다.
나 또한 그랬다. 맨몸운동을 처음 시작했을 당시엔 빠르게 퍼포먼스가 올라가면서 금방 재미를 붙였다. 3일 만에 머슬업에 성공하고, 그 뒤로 쭉쭉 개수가 올라가니 제 나름대로 재능이 있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그 속도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일정 구간에서 더는 퍼포먼스가 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자 금방 흥미를 잃고 방향을 헤맸다. 여기서 어떻게 해야 실력이 오르는지 감을 잡지 못해 욕심을 부리며 무리하게 개수를 늘렸고, 결국엔 부상을 입고서 한동안 운동을 강제로 쉬어야만 했다.
그때 깨달은 것은 바로 기본기에 충실하자였다. 운동은 절대 탑다운 방식이 통하지 않는다. 물론 모든 분야에 해당하는 것은 아닐 테다. 다만 적어도 운동은 그렇다. 인간을 구성하는 요소 중 가장 정직한 것은 다름 아닌 몸이기 때문이다. 몸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그러니 고수들의 모션을 아무리 흉내를 내려해 봤자 애초에 나는 아직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 이후 나는 오로지 3가지 운동에 집중하기로 했다. 바로 푸시업, 딥스, 풀업이다. 모든 운동은 밀고 당기는 것에 기반한다. 그래서 운동을 이제 막 시작하려는 남성들에겐 무조건 푸시업과 밴드를 이용한 풀업부터 시작하라고 말한다. 우리 몸을 얼마나 자유자재로 밀고 당길 수 있느냐가 맨몸운동의 퍼포먼스, 즉 몸의 기능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해 봐야 티도 잘 안 나는 맨몸운동을 왜 하냐고 물을 수 있다. 실제로 들은 말이기도 하다. 내가 체격이 큰 편이 아니기에 그럴만도 하다. 하지만 전혀 무의미한 물음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몸을 자랑하려고 운동을 하는 게 아니다. 이 과정이 정말로 재미있고,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어느덧 내 손바닥엔 꽤 그럴싸한 굳을살이 베겨있다. 그리고 몸도... 꽤 나쁘지 않다. 의식하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이렇게 되어 있었다. 세상은 여전히 빠르고 효율적인 것을 쫓으라며 등을 떠민다. 하지만 나는 내일도 기꺼이 철봉 앞에 설 것이다. 값비싼 헬스장 PT도, 값비싼 장비도 필요 없다. 그저 단단한 바닥과 내 몸뚱이, 그리고 어제보다 딱 한 개 더 당기겠다는 오기만 있으면 충분하다.
가장 원초적인 방식으로 가장 정직하게 나를 시험해 내는 일. 상상속으로 이소룡의 몸을 그리며, 내가 온몸으로 써 내려가는 땀의 낭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