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과 욕망
어릴 적 살던 동네 근처에 빵공장 하나가 있었다. 나는 그곳을 지나가기만 하면 빵냄새에 유혹되어 괜히 배가 고파지곤 했다. 평소엔 잘 찾지도 않던 음식이었는데도, 그 장소만 생각하면 나는 아직도 거기서 풍겨온 고소한 빵 냄새가 생각난다. 정확히 말하자면 빵을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던 내가, 빵이 먹고 싶어 진다는 그 순간의 매혹을 기억한다.
밖을 지나다니다 보면 간혹 어떤 향수를 뿌렸는지 좋은 향기를 내뿜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면 시선이 나도 모르게 향기로운 냄새를 향해 바라보게 된다. 이처럼 냄새는 인간의 뇌를 강하게 자극시킨다. 사람은 비물질적인 감각에 정말 쉽게 매료된다. 심지어 후각이 예민한 사람들은 타인의 향기에 반해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바로 그때 순간의 매혹은 욕망으로 변하고 만다.
욕망이 무조건 적으로 나쁜 뉘앙스를 띠는 단어는 절대 아니다. 애초에 욕망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동력 중 하나다. 다만 여기서 매혹과 욕망의 차이는 알 필요가 있다. 쉽게 말하자면 '매혹'은 '순간적인 감정'이다. 빵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내가 빵 냄새를 맡고서 순간적으로 드는 충동과 같다. 반면 '욕망'은 '지속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심리적 상태'이다. 이는 냄새에 반해 상대방에게 사랑에 빠져 연정을 품게 된 경위와 같다. 다시 말해 욕망은 지속적이며 '목표지향적'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여기서 생각해 볼 만한 점은 우리는 상상이상으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들을 위해, 그것을 향해 쫓아다니고 있다는 점이다.
꿈과 목표는 눈에 보이는 실질적인 것인가?
자유와 같은 사상과 이데올로기는?
부와 명예는?
심지어 사랑도.
본능적으로 끌리는 힘을 가진 매혹은 점차 구체적이게 되어 욕망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나로 하여금 지속적인 동기를 부여하고, 계획과 목표를 수립하도록 해주기도 한다. 다만 우리는 보이지도 않는 것들에게 너무나 강하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가득한데 말이다. 여기서 인간의 아이러니함은 계속된다. 과연 욕망은 끊임없는 갈증일까? 혹은 그 자체로 삶을 움직이도록 하는 강력한 힘일까? 향수를 뿌리는 것도 타인의 인정을 위함인가, 나 자신을 위함인가? 타인을 위한 배려인가, 나 자신의 결핍을 채우기 위함인가?
실은 인간이 타인의 인정을 바라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본능에 가까우며, 동시에 나 자신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다만 내가 쫒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선 정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순간의 매혹에 의한 판단인지, 아니면 정말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무언가를 위해서 인지 말이다. 나의 동기를 세심하게 바라보고 사색한다면, 매혹은 욕망이 되어 충분히 이성과 결합해 바람직한 목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막연하게 떠올리기만 했던 꿈이 점차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과정이다. 이상은 헛된 바람이 아닌, 무르익는 열매와 같다. 천진난만에서 시작된 허황된 꿈은 현실과 결합하여 충분히 세계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저 멀리 있는 것뿐이다. 이 둘의 차이는 확실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매혹은 때때론 우리가 다다를 수 없는 이상향을 지시한다. 그럴 때면 우리는 매혹을 좇지만, 그것을 완전히 붙잡진 못한다. 또한 욕망은 그 이상향에 다가가려는 노력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매혹을 소유하려는 이기적인 충동이 될 수도 있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인간은 항상 헤매기 마련이다. 한 송이 꽃이 피어나는 순간을 떠올려 보자. 그 꽃의 향기는 매혹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만일 당신이 매혹을 꽃을 꺾으려는 욕망으로 진전시킨다면, 매혹의 본질을 파괴하는 행위로 이어지게 된다. 감정의 발현 자체는 우리가 막아낼 수 없다. 다만 감정이성과 결합되어 삶을 이끄는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인간은 세상에 대한 부조리에 반하는, 삶을 추구하려는 강력한 감정을 들고 있으면서도 그 사이 조율을 위한 이성을 갖고 있다.
만약 당신의 방에도 향수가 놓여있다면,
당신의 냄새에 향수를 덧붙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