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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ee Oct 20. 2021

마음을 작게 먹어볼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을 매일 같이 새기며 더위를 버티던 2018년 여름날,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로 피서를 갔을 때였다. 우연히 펼쳐본 어느 영어책 헌사 한 줄에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To all the late bloomers(뒤늦게 꽃을 피 우는 이들에게)'. 묵직하면서도 따뜻한 그 말이 좋아 사진 한 장으로 남겨두었다. 구입하고 싶어 찾아보니 번역본이 없는 책이라 한국에선 따로 구하기가 어려운 책이었다. 아쉽지만 사진 한 장 정도의 인연이겠거니 하며 돌아섰던 날이었다. 


그로부터 일 년 후, 동생을 통해 동생의 친한 교회 언니를 알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출판사를 다니는 그 녀는 자기 회사의 유일한 한국어 책이라며 책 한 권을 선물로 건넸다. <우리는 매일 새로워진다>라는 제목의 책. 맨 앞장을 펼쳤는데 왠지 낯설지 않은 헌사가 눈에 들어왔다. '모든 늦깎이에게 바칩니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작년 여름 디자인 라이브러리에서 스친 그 책이라는 걸. 


헌사 속 '늦깎이들'이라는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는 매일 새로워진다>는 마흔 살이 넘어서도 꾸준히 성장하는 여성들의 인터뷰와 에세이를 담은 책이다. 포인트는 성공이 아닌 성장이라는 점. 베라 왕처럼 뒤늦게 디자이너가 된 뒤 큰 부와 명예를 누리게 된 여성도 있지만 49세에 서핑을 배우기 시작한 캐롤라인부터 60세가 넘어 의대에 진학한 스테파니까지, 대개는 이렇듯 ‘내 나이에!’라는 말에 자신을 가두지 않고 도전한 여성들의 이야기였다.


그중에서도 책의 마지막 주인공인 베티 할머니의 이야기가 유독 진하게 남는다. 아흔다섯의 베티 할머니는 미국의 파크 레인저(국립공원 경비원)로 약 10년째 일하고 있다. 사무원으로 시작해 레코드 가게 사장, 인종차별과 살해 협박을 받으면서도 꾸준하게 정치 활동가로 살아온 끝에 현재는 가장 나이 많은 파크 레인저가 됐다. 그녀는 말한다. "내 삶의 처음 80년 동안 나는 점들을 하나하나 모았고, 이제 그 점들을 연결하고 있다." 아흔다섯의 나이에도 여전히 자신이 크면 뭐가 될지가 궁금하다는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조금 구부정했던 내 생각의 어깨를 한 번 쭉 펴본다. 



겁도 많고 뭐든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나는 원하는 바를 하나하나 이뤄나갈 수 있을 것 같다가도 결국 이렇게 다짐만 하다 끝날까 불안한 두 갈래의 마음이 공존한다. 이 두 마음은 매일 엎치락뒤치락 번갈아 가며 내 안에서 우위를 점한다. 내면의 긍정으로 바로 서기 힘든 날엔 애써 마음을 곧추세우려 하기보단 나와 비슷하면서도 긍정적인 버전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길 택한다.


아흔다섯의 나이에도 여전히 성장하길 꿈꾸는 베티 할머니와 같은 인생 선배의 이야기를 볼 때면 당장 이룬 게 없어 보이는 나의 고민을 조금 더 멀리서, 의연하게 바라보게 된다. 그리곤 시간이 지날수록 나 또한 더 큰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사람 일 거란 생각에 잠시 반짝인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는다. 애초부터 특출 난 사람은 아니어도 꾸준히 쌓아가는 사람인만큼 늦게라도 어떤 가능성이 실현되지 않을까 하며. 무슨 가능성이 있는지도, 그게 터질지도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만 한다면 정말 가능할 것도 같다.


'아주 작은 시도부터 익숙해질 것'


끊임없이 발전하고 싶으면서도 언제나 안정적이고 싶은 성향 덕에 부딪혀 나는 그렇게 속도가 느린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가고 싶다면 엄청난 도전이 아닐지라도 이 정도는 충분히 해볼 만하지! 싶은 작은 도전부터 꾸준히 이뤄내야 하지 않을까. 소위 새가슴인 나에게 크게 마음먹고 하는 도전하는 일이란 드물다. 내가 어떤 큰 도전을 이뤄내려면 작은 마음으로 끊임없이 하는 시도가 더 중요하다. 용기를 내는 일은 근력 운동처럼 꾸준히 하지 않으면 금세 잊고 예전으로 돌아가 버리고 만다. 그러니 중요한 건 작은 시도를 습 관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 작은 도전은 무엇이라도 괜찮다. 투박한 글, 누가 읽지 않는 글이라도 계속 쓰고 내어 보이는 것,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면서도 눈 딱 감고 물어보는 것, 불편한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등 다 좋다.


아주 작은 도전에 작은 도전이 더해져 조금 더 큰 도전이 될 수 있도록, 새가슴인 내가 놀라 먼저 나가떨어지지 않고 찬찬히 걸음을 내디뎌 나갈 수 있도록 작은 마음, 작은 걸음으로 꾸준히. 매일 같은 무게를 드는 일이 어느 순간 조금 더 수월해지는 것처럼 익숙해진다면 도전 근육도 그만큼 늘어날 거라 믿는다. 가랑비에 옷 젖듯, 차가운 물에 들어가기 전 발을 먼저 집어넣듯. 그게 내 방식이다. 늦게 피어도 괜찮으니, 베티 할머니처럼 95세에도 꿈을 꾸는 사람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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