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소비라 쓰고 가치를 우선으로 하는 소비습관이라 의미 부여해본다.
직장을 가진 게 25살이었으니 벌써 10년이 넘게 돈을 벌고 있다. 돌이켜보면 참 많이 썼던 기억이다. 학자금 대출을 갚은 뒤부터는 중고지만 작은 차를 샀고, 그 차를 가지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친구들이 적금통장에 백만 원 이백만 원 모아나갈 때 차를 유지하느라 지출이 컸지만, 그 덕분에 시도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았다. 작은 경차에 대여한 스노보드 신발을 싣고 친구들 7명을 태워 산 위로 오른 기억은 첫차와의 추억으로 기억된다. 집에 부모님의 차가 없었기에 우리 가족은 아토스 한 대로 여름과 겨울의 짧은 휴가를 즐겼다. 그 뒤로도 바다 수영을 다닐 때마다 차를 끌고 해운대로 갔으니 차를 가진 시점 이후부터 절약하는 습관은 나와 멀어진 게 아닐까.
가치 있는 곳에 아낌없이 돈을 쓰는 편이지만 그런 나라고 돈을 아끼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매년 조금 더 계획적으로 돈을 쓰려고 가계부를 사지만 반 권 이상 가득 채워졌던 적은 없었다. 큰마음 먹고 소비를 줄여보려 애썼지만, 무언가 갑작스럽게 사게 되어 큰돈을 할부로 지출하고 나면 가계부의 숫자가 쉽게 맞지 않아 그 길로 기록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월급통장 하나, 고정 지출용 통장 하나, 생활비 통장 하나. 책에서 시키는 대로 3개의 통장을 만들었지만, 월급통장과 고정 지출용 통장에 돈을 배분 할 뿐, 소비는 월급통장에서 무분별하게 이루어진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돈을 꾸준히 번다.
둘째. 하고 싶은 게 많다.
셋째. 가치 있다고 생각되는 것에 아낌없이 소비한다.
어쩌다보니 취업전선으로 뛰어든 뒤부터 꾸준히 일하고 있다. 두 번의 이직을 했지만 쉬지 않고 일해 왔기에 통장에 항상 돈이 있었다. 육아휴직 중에도 휴직 급여가 나라에서 지급되었기에 적으면 적은 대로 꾸준히 소비 활동을 해 왔다. 간혹 잔고가 부족할 땐 시기 맞춰 인센티브가 입금된다거나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돈이 입금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더욱더 부족함을 몰랐던 것 같다. 항상 있으니깐 소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왜 아껴 쓰지 않았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항상 하고 싶은 것이 많았다. 20대 직장인의 시기엔 수영에 빠져서 관련된 용품을 많이 사고 즐겼으며 틈만 나면 여행을 다녔다. 동호회 사람들과 1박 2일로 바다 수영만 하기 위해 제주도에 갔던 적도 있었다. 또한 나이가 들면 스스로 계획하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여행이 힘들 것 같아 일부러 먼 국가만 골라서 여행을 다녔다. 이런 모든 활동을 영위하느라 항상 지출이 컸다. 목돈이 조금 모이면 쓰고 또 모으는 일을 지속하였지만 결혼할 때 모아둔 돈이 고작 3600만 원 이었던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다른 친구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금액을 모아두었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똑같이 혹은 그 이상을 쓰고 싶을 만큼 나는 돈 모으는 행위 보다 지금의 즐거움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몇 년간 책에 빠져 아이의 책도, 내 책도 엄청나게 사들였다. 그걸로 모자라 눈에 예쁜 책꽂이를 사고 어쩌면 필요 없는 예쁜 북 커버를 산다. 내가 돈을 아끼는 사람이었다면 아마 계속 도서관을 이용하지 않았을까. 책꽂이에 안 읽는 책을 팔고 적당량의 책을 사 넣는 행위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되는데 왜 또 책꽂이를 사서 그 공간만큼의 책을 더 채워 넣는 것일까. 책을 읽고 사유하는 것만으로 충분한데 왜 굳이 북 커버를 씌워서 가지고 다니는 것일까. 지금의 이 행위가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터. 비록 남에게 중요하지 않은 행위지만 적어도 나에게만큼은 가치 있다 생각되는 무언가에 아낌없이 지출을 지속하기에 내 통장이 차올라 넘쳐흐르는 일은 없는 것이다. 가치가 높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 가족이 있다. 가족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는 편이고 돈을 써야 한다면 아낌없이 소비한다. 전역하는 동생에게 지금 당장 배낭여행을 떠나라며 500만 원을 건네는 누나였고, 할머니 댁의 티브이 화면이 흔들려 티브이를 사주겠노라 흔쾌히 얘기하는 손녀였다. 작은아버지께서 먼저 티브이를 사드렸기에 어쩔 수 없이 티브이 금액만큼 할머니께 용돈으로 드렸고 할머니는 이런 손녀가 어디 있냐며 여러 차례 감동하고 자랑하며 다녔다. 엄마가 드실 건강식품이 70만 원인데 엄마가 너무 좋았다고 얘기하면 시어머니가 생각난다. 그럼 또 기회를 잡아 70만 원을 더 쓰는 것이다. 그렇기에 계획에 없던 소비가 늘고 가계부 작성을 지속하지 못한다. 예상치 못한 돈이 너무 많이 나가버리니 뒤늦게 보면 속상하기만 할 뿐, 특별한 해결책이 없었다. 돈을 버는 한, 가치를 우선으로 한 소비가 지속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돈을 버는 의미이고 힘들어도 참고 견뎌 나가는 이유이지 않을까. 적당히 소비하면서 과소비를 자제하기 위해 올 연말도 가계부를 사고 있는 내가 지금부터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