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멀어질까봐 두려웠던 적 있나요
장녀로 태어났기 때문인지 본래의 성격 때문인지 나는 감정 표현에 서툴렀다. 힘든 일이 있어도 상황 탓을 하기보다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묵묵히 하는 편이었다. 힘들다고 말해봤자 달라지는 게 없다는 생각에 힘듦을 잘 표현하지 않았는데 그 마음은 때론 어긋난 방식으로 표출되곤 했다.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한 마음은 곧잘 짜증과 화로 표현됐고 정리되지 못한 감정을 모른 척 내버려 두기도 했다. 나의 학창시절은 그런 날들의 집약체였다. 감정처리에 취약해 여러모로 힘들었던 시기.
쾌활하고 리더십이 있던 나는 고등학교 진학 후 아주 조용한 여고생이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만났던 친구들이 다들 작고 조용했으며 나도 그렇게 조용한 학생의 대열에 올랐다. 문제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다.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점이라 생각할 수 있는 고2~고3 때는 공부보다 친구가 중요했다. 그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게 내 단짝이라 생각했던 시기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나를 포함한 총 3명의 친구와 단짝이 되었다. 여고이다 보니 무리를 지어 편 가르기 하는 게 만연했던 그때. 나의 단짝 친구는 항상 다른 무리의 누군가와 친해지고 싶어 했다. 함께 있어도 시선은 멀리 있었던 친구 덕에 나는 매일 매일 속상했고 왜 나를 봐주지 않는 건지, 왜 꼭 저쪽 무리여야 하는 건지에 대해 매일 고민하고 이야기 나누었다. 숨기지 않고 서로에게 털어놓는 시절이었기에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했던 것 같다.
연인에 비유하면 삼각관계였던 것일까. 일과 시간에는 우리와 함께 놀던 친구는 하교할 때는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다는 이유로 저쪽 무리의 다른 친구와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친구의 이중생활이 친구에게는 별것 아니었을지언정 나에겐 너무 큰 상처로 돌아왔다. 그 사태가 심각해 교실 전체의 문제가 될 정도였다. 담임 선생님과 상담도 많이 했고 울기도 많이 울었지만 해결되는 부분이 없었다. 그렇게 중요한 고등학교 2학년을 흘려보내고 고3이 되었는데 내 단짝 친구와 또 같은 반이 된 것이다. 그렇게 또 1년의 세월을 친구라는 주제로 고민하느라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 나는 그때 왜 그 친구에게 그렇게도 집착했던 것일까. 다른 친구도 많았고 그저 공부만 해도 됐었고 기타 등등 집중할 거리가 많았던 고3 시절. 내 단짝 친구와 같은 반이 된 것이 내 인생 최대 불행이라 생각했다. 그 친구는 여전히 다른 친구와 어울리길 원했고 사실 그들은 상위 클래스 친구들이었다. 내가 공부 잘하는 친구를 동경하듯이, 내 친구도 본인보다 더 잘하는 친구를 동경했을 것이라고 지금에서야 문득 스쳐 가듯 생각이 든다. 그렇게 뚝 떨어진 성적으로 나는 대학에 진학했고, 친구는 재수했다.
이후 우리의 벌어진 거리는 좁혀질 기회가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 보란 듯이 밝고 쾌활한 나로 돌아갔다. 이게 진정한 나란 듯이.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비가 엄청나게 내리는 장마철에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 여행을 떠났다. 우비를 입고 자전거를 타는 행위 자체에 집중하느라 수십통의 전화가 와 있는 부재를 확인하지 못했다. 그때 친구의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친구는 내가 전화를 받을 때 까지 전화를 했지만 나는 받지 못했다. 그 일이 우리 사이를 더 멀어지게 했던 것 같다. 친구는 힘든 마음을 나누고 싶었겠지만 나는 그곳에 없었다. 그땐 너무 어려서 장례라는 무게감을 알지 못했다. 그 무게를 알았다면 뒤 늦게라도 친구를 찾아가지 않았을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때는 사회적인 내가 잘 기능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 마음을 100% 꺼내놓는 것에 두려움을 느낀다. 겉으로 하하 호호 웃지만 내면 깊숙한 곳의 힘든 점과 고민을 나누는 일이 많지 않았다. 장녀로 살아온 수많은 세월 동안 책임감을 느끼며, 내가 해야 할 것을 지키며 살아왔기도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 친구에게 상처받은 마음으로 인해 나는 속마음은 숨기고 더더욱 겉으로 웃는 사람이 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물론 친구에게 속내를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구구절절 다 말하지 않는 것이다. 말한다고 달라지겠어? 라는 마인드가 내면에 장착된 것 같다. 그래서 내면의 화가 쌓인다.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데 말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말할 사람이 많은데도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부터가 마음의 경계를 가지고 사람을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결혼하기 전에 어렵사리 단짝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문자 대화를 나누었다. 예전에 아버지 장례식에 못 가서 미안했고, 나는 그때의 기억으로 아주 힘들었단 내용의 대화를..
인생의 대전환점에 앞서 묵은 감정을 정리하고 결혼에 임하고 싶었다. 친구는 결혼식 부조금 받으려고 연락했냐고 내게 말했다. 물론 그 말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그녀도 나로 인해 힘든 점이 많았겠지만 4명이 함께한 대화방에서 우리는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친구가 가장 힘들었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녀는 내게 수많은 전화를 울렸지만 나는 그때 새로 사귄 친구들과 자전거 여행을 하느라 핸드폰을 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 일이 내게는 응어리로 남아 평생의 미안함으로 남겨졌고, 친구는 어쩌면 그 일로 내게 응어리가 생겼을지도. 직접 만나거나 전화통화를 거부하는 친구 덕에 아직도 우리는 냉전 중이다. 하지만 내 기억 속 내가 가장 아꼈던 친구였기에 언젠가는 만나고 싶다. 만나서 그때의 일이 아닌,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안부를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