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의 나날 5기 1화, 뒷이야기
(글의 특성상 존칭을 생략합니다.)
매번의 피드백마 다 진심 가득 조언이 담긴 질문을 많이 던져주는 밍블. 특히 이번 피드백에는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궁금한 것 같다.
나에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나는 왜 계속 읽고 쓰려 하는가?
어제오늘 곰곰이 생각해보니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지금 하는 “일” 이다.
재직 중인 회사에 입사한지도 8년 차가 되었고 급수도 직급도 그에 걸맞게 올라가고 있다. 하지만 뭐랄까, 일이 주는 기쁨. 만족감이 있긴 하지만 채워주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고, 요즘 들어 그 구멍이 나에겐 굉장히 크게 느껴진다.
성실하게 일하는 편이고 크게 뒤처지지 않게 사회생활을 했다. 출산 때문에 두 번의 휴직과 복직을 반복했지만, 그 시간을 제하고서는 크게 문제없이 일 해왔다. 재단에서 꾀나 중요한 일을 하는 부서에 입사했다. 그만큼 일이 많고 힘들었지만 다 같이 으쌰으쌰 하는 분위기와 젊음의 힘으로 힘들었던 시기를 극복해 나갔다. 또래도 많았고 틈틈이 함께하는 커피타임에 잡다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즐거웠다. 남편과는 같은 부서에서 만나 결혼했기에 결혼 후에는 내가 조금 더 일하기 편한 부서로 발령받아 이동했다.
사람 만나는 일을 좋아하고 중소기업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업무가 대부분인 기업지원단의 일이 즐거웠다. 상대적으로 업무의 강도가 조금 낮았지만, 여전히 일은 많았고 기꺼이 받아들이며 즐겁게 일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입사 8년 차. 복직 전부터 팀장직을 할 의사가 있냐고 묻는 말에 나는 언제나 NO를 외쳤다. 두 아이를 돌보면서 허덕이며 다니는 회사에서 팀장이라니. 지금은 할 수 없는 직책이라 생각했고 그저 편하게 회사 생활하는 게 목표였다. 그러다 보니 일을 하긴 하는데 그저 그런 사람이 된 것이다. 지금 나의 팀장은 입사했던 부서에서 잠시 스치듯 만났던 사람인데 나보다 나이가 많고 경력이 많았지만 나보다 뒤늦게 정규직의 직급을 달았다. 문제가 많았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래에 그는 비정규직이었고 나는 정규직으로 입사한 신입사원이었다. 그런 그가 나보다 먼저 팀장이 되었다. 물론 육아휴직으로 몇 년간 공백이 있었던 나는 진급도, 직책의 상향도 많은 것이 늦다. 이런 상황은 그뿐만이 아니다. 나보다 뒤에 줄지어 있던 대부분의 사람이 팀장이 되었다. 이 회사는 팀장이 워낙 많아 그 직급의 중요성을 아직도 알지 못하겠지만 어쨌거나 줄줄이 팀장이 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애들만 없었다면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 팀장이라는 직위를 달고 실제론 큰일 하지 않는 사람들이 수두룩한 이 집단에서 팀장이라고 깝죽대는 사람을 볼 때면 꼴불견에 치가 떨린다. 허구한 날 잡다한 일에 시달리는 지금의 자리에서 나는 점점 더 일에 회의를 느꼈다. 하면 할수록 내 것이 없는 상황. 그냥 대충 눈 가리고 아웅 하기만 행하는 공무원 집단에서 하루하루 값지게 살고 싶은 욕심 많은 나의 정신력으로 견뎌 나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가 사는 곳은 이름만 광역시지 아주 시골스러운 곳이라 학연지연이 엄청나게 심한 곳이라 그 시절 가장 유명했던 고등학교, 고작 하나 있는 대학교만 나왔다 하면 선후배가 쫙 깔린 곳이 이곳이다. 이 곳에서 부산 사람인 내가 인맥을 쌓으며 줄타기 하는 일이 쉽지 않다. 더군다나 함께 노닐며 수다 떨던 동료들은 이미 다 퇴사한 상태라 크게 손에 꼽을 친구가 없다.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편하게 일하고 적당히 돈 벌지만 오롯이 나를 위한 무언가가 없는 직장생활에 회의를 느낀다. 더 나아가 팀장이 되고 실장이 된들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허구한 날 동창회 모임 전화만 하는 실장을 보면서 이 조직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이 키우면서 일하기 편한 이곳의 생활을 내려놓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내가 찾은 돌파구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다. 오직 나만 할 수 있는, 나의 의지와 생각으로 창조된 세계를 키워가면서 책을 읽고 쓰는 행위가 재미있고 그 재미가 생활의 만족도를 높여준다. 직장생활에서 생긴 구멍을 다른 창작 행위로 메꾸고 있다고 할까. 나를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면서 즐거워하는 것도, 존경과 감사의 의미를 표하는 것도, 그 반대로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행위를 보면서 내가 즐거워지는 것도, 그 모든 것이 즐겁다. 그렇게 나만의 무언가가 하루하루 쌓여가기에 나는 오늘도 읽고 쓰는 행위를 놓지 않고 있다. 그렇게 내 시간의 기록을 쌓아가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