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푸른 밤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으니까
제주여행은 꽤 자주 했었다.
올레길 탐방
한라산 등반
맛집 탐험
게스트하우스의 바베큐 파티
여러 차례 다니다 보니 흥미를 잃었고
제주를 찾는 나의 발걸음은 점차 줄었다.
그즈음 나의 제주여행에는 변화가 생겼다.
제주 = 休
흐린 날의 비행, 그리고 구름 위의 파아란 하늘.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이상하게 제주에 갈 때면 늘 비가 내렸다.
현 회사에서 예전에 워크샵 준비를 맡았었는데
그 때 추진한 제주 워크샵에서도 비가 엄청 내렸다고 한다.
제주의 비(Rain)는 늘 저와 함께군요.
50분이지만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설렌다.
하늘 위에서 바라보는 바깥 풍경은 매번 색다르고 늘 아름답다.
제주의 날씨는 신기하다.
공항에서는 그렇게 흐리던 하늘이
한라산을 넘어 서귀포로 넘어오면 파랗기 일쑤다.
숙소에 짐이랄 것도 없는 백팩 하나 던져두고 티비를 켠다.
휴가가 뭐 별 것 있나.
푹신푹신한 침대에 한 덩치 하는 몸을 누이고
평소 켜지도 않는 티비를 켜서
이리저리 채널을 돌리다 아무 프로그램이나 맞춰놓은 후
아무 생각 없이 멍~ 하니 있으면
그 곳은 천국이 됩니다.
뒹굴뒹굴
이리로 뒹굴
저리로 뒹구르르
. . .
그렇다.
혼자 쉰다는 것은 사실 별로 할 것이 없다.
그냥 조용히 아무 생각 없이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있는 것만으로
나는 매우 편안해진다.
여기서 만족감을 더 높이기 위해
맛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제일 중요한, 여행의 필수요소다.
요즘 제주의 맛집이라는 것이 한식 양식 안 가리고 다양하게 많다 보니
대충 추려서 하루 다섯 끼를 채워도 모자란다.
간식은 또 왜 그렇게 많은 건지.
천국이 따로 없다니까-
주변에 맛집이 많지만
이 날은 정말 엄청 귀찮고 움직이기 싫어서
숙소의 레스토랑을 이용하기로 했다.
부페가 있으니까!
(먹방계의) 일등 장학생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먹고, 또 먹는다.
혼자라고 위축되고 그러면 안된다.
늘 당당하게, 음식에 집중을 해본다.
미친 듯이 흡입하는 바람에
허리가 펴지지 않아 구부린 채로 객실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혼자서도 잘 먹어요♪
혼자서도 잘 놀아요♪
먹고 뒹굴 대기만 했는데
일상의 시간과는 다르게 훌쩍 지나가버려서
사람 참 아쉽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간이 더 소중하기도 하다.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생각보다 편하고
생각보다 무섭다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가는데
사람도 잘 안 다니는 외지였을 때
평소에 잘 못 느껴보던 감정, 공포심을 마주하게 됐다.
평일, 겨울로 넘어가던 11월의 끝자락,
강정천의 냇길이소 찾아가는 길에는
인적이 하나도 없었다.
남들은 다 렌터카로 올 텐데
무슨 패기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걸까.
물론 강정교까지는 택시를 이용했다.
지도 앱을 펼쳤다가 당황해서 꺼버렸다.
숨은 비경이라는 그 곳의 입구는 작은 철문으로 닫혀있었고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암벽등반을 해야 할 것 같은 절벽이 있었다.
인터넷 검색을 했을 때 절벽이 있다는 이야기는 봤으나 생각보다 무서웠다.
이 절벽에 내려갔는데 살인자라도 만나게 되면 어쩌나 싶은
어마무시한 상상을 펼쳐보기도 했다.
뭐 요즘 같은 흉흉한 세상에 그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짐이 되는 백팩은 내버려두고
몸만 절벽 아래로 내려왔다.
이 곳이 정말 천국이었다.
어떠한 수식어도 이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없겠지.
파아란 하늘도
투명한 물도
파릇파릇한 나뭇잎들도
이 아름다운 공간에 온전히 나 혼자만 존재한다는 것이 믿기질 않았다.
바위 하나에 걸터앉았다.
입을 열었다.
야~ 호~
왠지 해보고 싶었다.
바보 같지만ㅋㅋㅋ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한 커플이 절벽을 타고 내려오길래
나는 자리를 비켜주고
유유자적 신선놀음을 마쳤다.
평범하지만 안정된 일상이 있기 때문에
이런 휴가는 더욱 달콤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