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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아 Dec 12. 2023

시월드 탈출의 기회, 그녀의 결정

2020년 7월,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그날, 시댁 식구들이 모여 여름 휴가를 보내는 마지막 날이었다.

"올캐야, 나가서 살아"


 둘째 형님의 짧은 말씀.

그간 막혀왔던 숨이 후, 하고 쉬어지는 느낌이었다. 나가서 살란다. 이제 그만 나가서 살아도 되다는 말이다. 나는 정말 나가서 살아도 될까. 아니, 나는 나가서도 잘 살 수 있을까.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이럴 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누가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8년 낳은 째 딸을 안고 시댁으로 퇴원한 것으로 시작된 합가 생활이었다. 분가하라고 덤덤히 말하는 시누이 옆에는 시어머님이 계셨다. 못들은 첫, 아무 말씀도 그 어떤 표정의 변화도 없으셨다. 잠시 뒤 신랑이 들어왔지만 그 자리의 그 누구도 말이 없었다.


나는 이 잡안에 20년 만에 들어온 새 사람이고, 내 딸은 이 집안에 19년 만에 아기 울음 소리르  들려준 존재였다. 아이를 낳고 시댁으로 들어올 계획을 세우면서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출산 후 30일 만에 복직해야 하는 며느리의 딸아이를 시어머님이 봐주셨다. 당시로서는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어머님은 이른 아침 출근하는 며느리의 밥상을 차려주셨고, 저녁이면 퇴근하는 아들, 며느리의 밥상도 준비해놓으셨다. 그 어린 아이를 돌보시면서 단 하루도 거르시는 법이 없었다. 주 6일씩 근무하는 나는 일요일 아침 일찍 주방의 달그락 소리에 짜증을 내며 귀를 틀어막고 잠을 청하는 철부지 며느리였다. 주말에도 주방을 들어가지 않는 나 대신 신랑은 주말이면 점심과 저녁을 차려내었다. 곧이어 둘째가 태어났고, 82세의 시어머님에게는 돌봐야 할 어린 생명이 하나더 늘었다. 당신이 돌봄을 받아야 할 나이지마 그럴 수 없었다.


나는 철부지였찌만 천성이 나쁜 사람은 아닌지라 80대 노모가 어린 아이 들을 데리고 신랑이 하시는 모습이 늘  마음에 걸렸다. 싹싹하지 않는 내 성격도 썩 개운치 않았다.

"여보, 어머님이 많이 힘드신가봐"

"엄마가 왜?"

"우리 애들도 돌봐야 하고..."

"엄마가 우리 애들 때문에 힘들기만 할까봐? 우리 애들이 엄마나 아빠보다 할머니 할아버지를 더 찾느데, 애들이 주는 기쁨은 없을까봐? 쓸데 없는 소리 한다."

"나도 싹싹한 며느리가 아니고"

"당신이 엄마한테 친절하지는 않지. 그런데 형수나 누나들처럼 할 수는 없다. 어쩌다 한 번씩 다녀가는 사람들은 친절할 수 있지만, 우리는 일상을 살아야 하는데 매일 어떻게 잘 보여? 그냥 평소하던대로 해."

"......"


그러고는 얼마 후, 나는 직장을 그만 두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어린집을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아침밥을 차리지 않는 나의 일상은 유지되었다.

나에게 분가하라고 했던 작은 시누이도 그 날 이후 더이상 아무말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랑의 작은 형인 아주버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성득아, 너희는 다른 형제들이 할 수 없는 것을 해나가고 있어. 제수씨도 막내며느리로서 그 이상 해내고 있으니까 이제는 너희가 하고 싶은대로해"

신랑에게 그 말을 전해듣고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느라 애써야 했다.

얼핏 내 마음대로 하는 철부지 며느리처럼 보였지만,  또 늙은 시어머니께 육아를 맡겨버린 불효자 처럼 보이기도 했겠지만 나라고 그 생활아 편하고 좋기만 했을가. 친정 부모님과도 가까이 살아본적 없는 내가, 스무 살부터 결혼전까지 오롯이 혼자 생활을 했던 내가, 신혼 초 신랑 숨소리 때문에 잠못들정도 예민한 내가 시부모님과의 합가를 선택하고 지속했던 이유를 신랑이 아닌 다른 가족으로부터 인정 받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지금 그 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가와의 합가생활을 형제들에게 인정받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정리하고, 오롯이 우리 가족만의 일상을 시작해볼 절호의 기회이기도 한 것이다. 선택권은 내게 넘어왔다. 어떤 선택을 해도 잘했다, 수고했다, 라는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기회, 가족 모두들 막내 며느리가 이쯤하여 합가를 정리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녀의 생각은 좀 달랐다. 기회가 왔지만 탈출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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